멀쩡한 사람이라면 2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재판 앞에 연민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이 대한민국의 명운(命運)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 채명성의 신간 <탄핵 인사이드 아웃>(기파랑)은 그런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채명성이 누구지? 탄핵 심판 대리인단 일원이고, 형사재판 변호인단으로도 활동했던 젊은 변호사다.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큰 이 책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로 떴는데, 우파 책으론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목마름이 컸다는 얘긴데, 출간 시점도 흥미롭다. 1년 전과 또 달리 이른바 촛불혁명 정부의 폭주와 민심 이반(離反)이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 책을 읽고 여운으로 남는 건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채 변호사가 2년 전 헌재에서 했던 탄핵심판 최후변론이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피청구인(박근혜)의 임기는 1년이 채 남지 않았으며…주된 임무는 연말 대선의 공정한 관리에 국한될 것입니다." 그게 맞는 백 번 맞는소리였다.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간 푸닥거리" 탄핵 기각 때 태극기와 촛불 세력 사이의 긴장이 치솟겠지만, 예정된 12월 대선 때문에 심각한 충돌은 피할 수 있다. 유감천
'마르크스님의 왼쪽에 앉은 교수들의 천국'이란 제목으로 내보냈던 벤 샤피로의 책 <세뇌>(기파랑) 서평에서 미처 못 다한 얘기가 하나 있다. 아니 별도의 글감이란 판단으로 제외시켜 놓았는데, 학생운동권을 보는 미국과 한국의 풍토 차이를 설명해줄만한 흥미로운 스토리다. 저번에 밝힌 대로 "미국 대학에서 허용되는 사상과 표현과 언론 자유는 좌에서 극좌까지다"라는 게 <세뇌>의 지적이다. 미 대학의 타락이 그 정도인데, 그런 배경으로 1960~70년대 반전평화를 외치던 극렬 운동권 웨더 언더그라운드 얘기가 책에 설핏 등장한다. 일리노이대 교수인 윌리엄 에이어스와 그의 부인도 거기 출신이란 얘기다. 그런데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왜 악명 높은가. 펜타곤-군사기지에서 은행을 타격 목표로 연쇄 테러를 자행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케 했던 최악의 테러 단체다. 그런데도 에이어스는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우린 행동했고 다시 행동할 것이다"고 뻔뻔하게도 자기 책에 썼다. 할리우드 영화 '컴퍼니 유 킵' 그런 테러범을 교수로 임용하는 대학이란 곳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라는 게 벤 샤피로의 개탄이었다. 그런 웨더 언더그라운드 얘기가 내게…
정초 이후 세상 화제는 단연 손남손녀다. 선남선녀가 아니고 손씨 성을 가진 두 남녀 즉 손혜원-손석희를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혜원이 한바탕 휘젓고 나니까 JTBC 앵커 손석희가 바통을 받았다. 손혜원 스캔들이 아직 여진(餘震)이 남았다면, 손석희 건은 활화산이다. 좌파 매체의 손석희 지키기 노력은 안쓰러울 정도이지만, 바닥 민심은 그야말로 후끈하다. 당장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손석희 스캔들이 불붙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JTBC인데, 29일 입장문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손석희 관련 소문은 모두 악의적인 가짜뉴스이고, 그걸 작성 유통하는 개인과 매체를 법적 대응하겠다”고 엄포부터 놓았다. 한마디로 가소롭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유포시켜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았던 매체가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손석희 불륜설을 덮으려고 대국민 협박에 나선 꼴인데, JTBC 전체의 위기로 번진 현상황의 엄중함을 저들만 모른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의 몰락 구체적으로 이 사안에 대한 대중의 관심 폭발은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를 14년 연속 차지한 손석희의 사생활만이 아니다. 그에게 멍석을 깔아준
[2019년 정초 필독서 3종 연속서평-마지막 회] "기차가 천안에 이르렀을 때다. '비서실장, 저것 봐. 나무가 없잖아. 저기가 어디야?' '천안 어디쯤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 저 뚝 좀 보십시오. 대한민국이 이래요. 저 플라타너스는 전지하면 안 되는데 가지를 쳐버렸네. 비서실장, 철도청장 불러서 전지를 누가 했는지 알아보라고 해'…" 김수환 추기경이 1970년대 초 열차로 함께 내려가며 지켜본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다. 그건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인데, 메모지에 4대 강을 그려가며 몇 십 년은 걸릴 개발계획도 그에게도 설명해줬다. 김 추기경은 그런 모습에서 1인 장기독재를 예견했고 그래서 돌아오는 다음날 내내 우울했다지만, 그거야말로 짧은 이해에 불과하다. 서울대 전상인(사회학) 교수의 신간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기파랑)를 읽으니 "대한민국 전체가 지붕 없는 박정희기념관"이란 말이 현대사의 과장 없는 진실로 다가온다. 장기 집권욕이라는 추기경의 표현도 심했다. 그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불퇴전의 집념이 아닐까? 서울을 만든 이도 박정희 그렇다고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란 책이 논쟁적인 저술
[2019년 정초 필독서 3종 연속서평 두 번째 회] 외국 기자가 쓴 한국 관련 저술 중 레퍼런스급으로 평가받는 건 두 종이다. 같은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 출신인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번역본 2002년 길산 펴냄)과,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아 엔드게임>(Korea Endgame, 번역본 2003년 삼인 펴냄)이 그것이다. 단 두 책의 시각은 다르다. <코리아 엔드게임>의 경우 한반도 탈(脫)개입을 미국의 전략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깔고 있어 남과 북의 좌파가 선호한다. <두 개의 한국>은 사실관계 확인에서 그야말로 치밀한 책이라서 객관적 현대정치사로 손색이 없다. 두 저자 모두 최근 작고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 잘못 없다" 영국 더 타임스 기자 출신인 마이클 브린이 펴낸 신간 <한국, 한국인>(실레북스 펴냄)을 읽으면서 <두 개의 한국>과 <코리아 엔드게임>과 자꾸 비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브린의 통찰 때문에 기대치는 더욱 컸다. 그는 <포린폴리시>에 '한국 민주주의에
[2019년 정초 필독서 3종 연속서평 첫 회] "세계적으로 마르크시즘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만큼은 펄떡펄떡 살아 움직인다."(75쪽) "엄청 많은 교수들이 마르크스님의 왼편에 앉아있는데…대학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교수만이 아니라 이미 세뇌된 학생들이 장악한 학보사와 동아리다."(21쪽, 184쪽) 어느 나라 얘기일까? 좌파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상황 같은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싶다. 그럼 1980년대 한국 얘기일까? 그것도 아니다. 미국 대학 얘기이고, 그것도 현재 상황에 대한 리포트다. 그래서 놀랍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방끈 긴 인간들이 벌이는 관념의 사치는 오십보백보인데, 예외 없이 좌빨의 늪에 빠진다는 점까지 꼭 같다. 신간 <세뇌>는 좌파 정서에 오염된 미국 대학문화 폭로다. 원서 제목도 'Brainwashed'인데, 우리 식 표현으론 '의식화'쯤이 안 될까? 문제는 좌익 이념으로 무장하고 평양의 지령을 받는 한국식 운동권의 농간이 없는데도 미국 대학의 풍토가 저 지경이란 점이다. 한국 얘기야, 미국 얘기야 헷갈려미국판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느 정도일까? 저자의 단언대로 "(미국) 대학에서
1년도 훨씬 전 시작된 방송장악 초기 국면에서 좌편향 KBS의 실체는 상대적으로 가려져있었다. 신임 사장 최승호가 이끄는 MBC가 몇 개월 앞서 출범한데다가, 시작부터 물불을 안 가리지 않으면서 양승동 체제의 KBS보다 먼저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연말 이후 시청자와 정치권 양쪽에서 지탄의 표적으로 떠오른 것은 KBS다.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인데, 며칠 전 시민단체 자유민주국민연합은 수신료 납부거부 운동에 동참한 1만 명의 서명을 KBS에 전달했다.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KBS에 시청료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자유한국당도 수신료 강제징수 금지와 수신료 거부 운동을 펼치는 중이다.KBS에 대한 이런 반응은 저들이 코미디언 김제동을 시사프로 '오늘밤 김제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바보짓을 한 끝에 끝내 사고까지 쳤기 때문이다. 그 프로에서 '평양 돼지' 김정은 찬양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내보냈으니 이적성(利敵性)과 고무찬양의 혐의를 받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코미디언에게 뉴스 맡길 것 자체가 패착이게 뭘 말해줄까? 좌파 확신범 최승호나, 좀 덜하다는 양승동은 결국 초록은 동색이란 얘기다. 그리고 공영방송을 이끌 수장으로
현재로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訪北) 일정은 무산된 걸로 보인다. 그게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포함한 많은 소식통들의 일치된 판단이다. VOA 최근 보도는 "현재로서는 북한 방문이 예정돼 있지 않다"는 게 교황청 공보실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처음의 일이 아니다. 교황청은 지난달 초에도 "2019년 방북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여기서 묻자. 교황 방북을 지난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외교의 성과로 과대 포장했던 게 누구였던가? 그거야 당국자로선 의례히 하는 법이만, 문제는 한국 가톨릭 내부다. 지금도 교황 방북을 촉구하면서 막상 북한주민 인권엔 함구하는 외눈박이 정치사제들이 수두룩하다. 명백한 탈선 사제인 그들은 내란범 이석기를 양심범이라며 석방을 요구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들의 명단까지 발표해 압박해도 저들은 꿈쩍도 않는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에서 182명의 정치신부 명단을 발표하며 공개 압박을 병행한 게 최근의 일이다. 182명 정치신부 명단 공개 파문 바로 당신들 때문에 '가톨릭=빨갱이 종교'라는 오명을 쓰게 됐고, 500만 평신도 중 400만이 교회를 떠났으니 책임을 통감하라고 호소
2019년 새해 이 나라 언론들은 빤한 덕담과 시시한 처방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재도약을 위해 다시 뛰는 한 해"를 다짐하거나 "집권 3년 차 문재인 정부가 이념 착오에서 실질로 돌아오라"는 훈수가 그러하다. 한 경제신문의 신년기획 '다시 뛰는 J노믹스' 같은 것에도 국민의 기대치가 낮다. 나라에 비전이 없고 저널리즘이 무책임하니 모두가 이 지경인데, 마침 원로 언론인 류근일의 전망에 나는 동조한다. 올해가 한반도의 명운에 중대한 변곡점의 한 해가 될 것이란 예측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합법을 가장한 민중혁명 세력이 대한민국 허물기를 빠른 속도로 진척시킬 것이란 지적과 함께 "혁명의 끝은 자유의 실종"이라고 경고했다. 너무 거창하다고? 아니다. 그 발언이 실감나는 건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에 대한 공매(公賣) 처분에서도 확인된다. 검찰은 보름 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의뢰해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이미 내놨다. 2월 공매가 성사되면 집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전직 대통령 넷 중 셋이 유고(有故) 이 경우 전직 대통령 내외분이 요즘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는 비극적 상황도 배제 못한다. 그렇다면 이게 왜 문제인가? 전직 대통령 중 생존한 분
울울적적한 세밑이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이 나라에 없으니 심란한 마음 벗을 수 없는데, 이 정부의 최저임금 시행령 수정안부터 걱정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법정 최저임금은 사실상 시간당 1만 원을 넘고, 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모두가 기겁하니 경제에 드리울 파장이 벌써부터 두렵다.주휴 시간(법정 유급휴일) 8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시간에 포함시키니 그런 상황이 빚어지는데,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게 연말에 불어 닥친 동시다발의 안보환경 돌발 변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대일-대미-대북 문제가 한꺼번에 파열음을 내는 전에 없던 상황이 지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존립을 허무는 환경 변화를 채 인지 못하는 게 지금 우리 상황이다.냉정하게 말하자. 이 상황에 원인제공한 것은 이 정부의 아마추어적 외교안보 관리 탓이고, 구체적으로 '민족 공조', '자주 외교', '반외세' 우선주의의 깃발이 초래한 구조적 문제다. 이게 집권 3년 차로 접어드는 내년 이후에 어떤 대형 위기로 확산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유사시 미군이라면 공격했을 것"우선 한일 갈등은 돌발변수의 등장이다. 단 그동안의 외교 갈등을 넘어 군사 문제로까지 번졌다는 점에서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