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무슬림들도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있으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든가 “이슬람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든가 “이슬람은 모든 사람이 알라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는다”는 등의 주장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발생하는 테러의 대부분이 무슬림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테러를 저지를 때마다 “알라가 더 위대하다(알라후 아크바르)” 또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 일라 일랄라)”는 등의 이슬람 구호를 외치면서 폭탄을 던지든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한 때 세상을 요란하게 했던 IS가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에서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짐승들도 저렇게까지 잔인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할 만큼 끔찍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때도 이슬람 학자들이나 이맘들은 “IS는 이슬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는 그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저지르는 만행일 뿐이다. 정상적인 무슬림이라면 누구든지 테러를 반대한다.”면서 “사람들은 마치 이슬람이 테러의 종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요즈음 한국일보에서 이슬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 보인다. 한남동 이슬람 사원 이주화 이맘의 일방적인 글을 아무런 검열이나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나서서 사실 확인을 해 주어야 하겠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특정 종교를 폄하하거나 대항해서 싸우기 위함도 아니고, 글을 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신문이라는 영향력을 가진 공공의 매체를 통해서 일단 발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박이나 정정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신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를 볼 때 우리가 무작정 이슬람에 대한 미화된 정보에 속게 되면 그 결과로 우리 사회의 안녕과 우리 후손들의 행복이 공격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알고도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산다면 당장은 평안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잘못된 전제 : 이슬람=평화의 종교 먼저 편집자가 단언적으로 “‘이슬람교’ 하면 테러나 폭
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2020년 10월 16일 오후 5시 경, 프랑스 파리에서 24Km 떨어진 소도시 콩플랑 생토노린의 거리에서 중학교 교사가 길을 가다가 한 청년에 의해 목이 잘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서 알려지자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이 끓는 냄비처럼 앞 다투어 보도하며 분노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피살된 사뮈엘 파티는 중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무함마드 만평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혹시 학생들 중에 모욕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교실을 나가도 된다고 미리 알렸다. 그러나 무슬림 학부모들은 파티가 샤를리 에브도 사건1의 재판에 대해 논의하면서 무함마드 만평을 사용한 것에 대해 불평하며 학교에 민원을 제기했다. 범인은 러시아계 체첸 출신의 아불라크라는 18세 청소년이었으며, 미성년자 몇 명이 동조했다고 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목을 잘라서 시신과 몇 미터 거리에서 피가 떨어지는 머리를 들고 “알라후 아크바르(알라가 더 위대하다는 이슬람의 구호)”를 외쳤다. 범인은 또 범행 직후 트위터에 “알라신을 받들어 무함마
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중앙일보가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컬럼을 계속 게재하고 있다. 독자들이 이슬람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을 바로잡아 주겠다는 좋은 취지겠지만, 사실상 이슬람의 입장에서 이슬람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기사들의 타이틀이 “○○○기자의 현문우답”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글자 그대로 현명한 질문에 대한 ‘어리석은 답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슬람은 이미 여러 번 강조했듯이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어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이나 맹세까지도 교리적으로 허용된다(꾸란2:225, 꾸란3:28).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쓴 어떤 책이나 컬럼 등을 읽고 속아서 본의 아니게 이슬람 측에서 주장하는 거짓말을 대신 홍보해 주는 안타까운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율법의 기초가 되는 꾸란(Quran)과 하디스(Hadith)를 직접 연구해 보고 그런 꾸란 구절이나 하디스가 어떤 배경에서 무함마드의 입을 통해서 언급된 것인지를 공부하고 난 후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무슬림들은
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며칠 전 중앙일보 백모 종교전문기자가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와 관련된 칼럼을 쓴 것을 읽어보고 “이 양반도 속았구만”하고 대충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질문을 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까지 입 다물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속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쓴 기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위 대한민국의 유명 일간지의 종교전문기자라는 분조차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이슬람 학자들이 미화된 거짓 정보들을 책자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떤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해도 100권 정도의 책을 읽고 그 책들을 인용해 가면서 이론을 펼쳐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상반된 두 가지의 견해가 존재할 경우, 90% 정도의 책에서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10% 정도의 책이 부정적인 견해를 기술하고 있다면 논문의 결론은 당연히 90%가 지지하고 있는 긍정적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이슬람에 대한 책들이나 자료들은
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신성모독법이 형법에 명시된 나라는 많지 않지만, 파키스탄은 특히 형법 295조 B항에 꾸란을 모독하는 자는 무기 징역에 처할 수 있고 C항에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그 법은 지금도 실행되고 있다. 이런 법이 실제로 존재하며 지금도 집행되고 있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파키스탄의 판잡 주의 페이살아바드의 고즈라 마을에 한 불우한 기독교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샤프갓 엠마누엘(Sahfqat Emmanuel)이고 아내의 이름은 샤구프타 카우사르(Sahgufta Kausar)다.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그들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2004년 남편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자인(15), 다니시(12), 조수아(10)라는 세 아들과 딸 사라(9)를 데리고 아내인 샤구프타가 교회에서 청소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한 달쯤 후에 갑자기 동네 이맘이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발신자가
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무슬림들은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이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나 이구동성으로 꾸란은 오류가 없는 완벽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까?”라는 호기심에서라도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질문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았다는 꾸란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질문을 하면 안 된다(꾸란 5:101). 왜냐하면 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불신자’가 되었다(꾸란5:102)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불신자를 카피르(Kafir) 혹은 쿠파르(Kufar)라고 하는데 이는 문자적으로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싸워야 할 이슬람의 적”,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지 못하는 자”, “배교자” 등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을 죽이는 것은 할랄(알라가 허락한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의심하고 질문하다가 불신자가 될까봐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꾸란은 오류가 많은 책이다. 그 의미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정직하게 번역해 놓으면 아무도 이슬람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충성된 무슬
이용희 교수 | 월간 JESUS ARMY 발행인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 지난 3월 7일부터 4월 15일까지 국가를 위한 40일 특별철야기도회를 가졌다. 보통 매일 밤 11시경 철야기도회가 시작되었고, 전국과 해외에 계신 성도님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매일 유튜브 생방송으로 진행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이제는 에스더기도운동도 유튜브 생방송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파격적이었고, 기도했던 분들조차도 본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다. 신앙인들은 본인이 기도했던 일들의 결과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우리의 기도에 가장 좋은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
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이슬람을 연구하다보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히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어서 뻔뻔스럽게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마저 거짓이었다니?”라고 놀라게 된다. 특히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보면 더욱 그렇다. 이제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통해서 꾸란의 허구를 밝히고자 한다. 꾸란에 대한 주장 이슬람학자들의 꾸란에 대한 주장을 보면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은말을 한다. *첫째 : 꾸란은 하늘에 원본이 있는 책이다. (꾸란 13:39) *둘째 : 꾸란은 무함마드에게 내려 보냈으며 오류가 없다. (꾸란 18:1) *셋째 : 계시된 꾸란은 알라께서 보호하신다. (꾸란 15:9) 이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거짓된 주장을 할지라도 그것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그 주장의 오류를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슬람에서는 꾸란을 검증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형법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이슬람학자들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언론의
이 용 희 교수 에스더기도운동 대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하셨고,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하셨다. 우리가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부르신 뜻을 정확하게 알고 그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무작정 가다가 산 정상에 올라서야 “여기가 아닌가봐” 하면서 다시 내려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에스더가 왕후의 위를 얻은 뜻은 성경 에스더서는 두 가지 단어로 압축이 될 수 있다. 하나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나는 “하만의 궤계”이다. 우리는 하만의 궤계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하고, 그런 후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왕의 치리가 나타나게 된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10대 후반쯤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 당시 근동지역에서 10대 후반이면 시집을 간다. 에스더는 아무런 백그라운드가 없었다. 전임자인 왕후는 왕 앞에서 거들먹거리다 폐위가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왕후인 에스더는 아무런 배경이 없는 시골 처녀나 마찬가지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