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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을 바꾼 기도들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응답으로 일어난 기적들

뉴스윈코리아 기자2017.04.16 23:43:24

1. 스탈린 시대의 종식

 

1953,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러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탄압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위한 금식 기도를 시작하였다. 특별 기도를 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스탈린의 사망이라는 형태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셨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나는(데릭 프린스 목사 역사를 움직이는 기도와 금식저자) 영국 런던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다루심에 특별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1953년 초에 신뢰할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러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탄압하려 한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내가 이 상황을 놓고 묵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1:30~31)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님께서 내 앞에 러시아의 유대인을 향한 책임감을 부어주시고 계신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느낌을 유대인을 향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영국 여러 지역에 있는 기도모임 리더들에게 나누었다. 마침내 우리는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위해 하루를 정해서 금식과 특별기도를 하기로 했다. 우리 그룹의 모든 지체들은 자원해서 금식하며 러시아의 유대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그날 저녁 그 기도 제목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 그날 저녁기도모임에서 두드러진 영적인 역사도 없었고, 특별한 축복을 받거나, 감정적으로 충만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2주도 채 안되어 러시아 역사의 흐름이 스탈린 사망이라는 한 결정적 사건으로 인해 뒤바뀌었다.

 

스탈린은 당시 73세였는데, 질병의 징후도 없었고, 죽음에 임박했다는 그 어떤 조짐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열여섯 명의 의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스탈린을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사인은 뇌출혈이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 그룹의 그 어떤 지체도 스탈린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순전히 러시아 내부의 상황을 주님께 의탁하고, 필요한 부분에 응답하시는 그분의 지혜를 신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탈린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 12장에는 이와 유사한 초대교회의 기도 응답이 기록되어 있다. 헤롯왕은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처형했다. 그 후에 베드로도 체포하여 유월절 후에 처형하려고 옥에 가두었다. 바로 이때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는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베드로는 감옥에서 구출되었다. 이렇게 베드로를 향한 교회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그러나 헤롯왕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의 손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도행전 12장 끝 부분에서, 누가는 왕복을 차려 입고 두로와 시돈 백성에게 연설하는 헤롯왕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헤롯왕의 연설이 끝나자, 백성들은 박수치며 크게 외친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12:22)

 

헤롯왕은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해서 백성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러나 헤롯왕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끝맺는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12:23)

 

이처럼 인류 역사에 있어서 기도는 때로는 신속하고도 무섭게 역사하는 권능이 있다.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축출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대신에 러시아 내부 정책의 변혁기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정책 수정이 워낙 광범위해서 나중에 그 때를 탈 스탈린 시대로 부르게 되었다. 스탈린의 동료로서 후계자가 된 후르시초프는 스탈린을 러시아 국민을 부당하게 박해한 잔인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무신론적 공산주의 이념의 가르침 아래 성장한 스탈린의 딸은 고국 땅을 탈출해 자신의 아버지가 그토록 끈질기게 매도했던 나라로 망명했다. 그 후 스탈린의 딸은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유대인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유대인을 따르는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박해했지만.

 

- 역사를 움직이는 기도와 금식중에서

 

2. 케냐의 산통

 

오직 내 백성이 하는 기도의 초자연적인 능력만이 케냐를 향해 엄습해오는 환난으로부터 케냐를 돌이킬 수 있다!”

 

케냐의 주변 국가들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산화, 이슬람화 되어 갔지만, 케냐를 위한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기에 이 모든 혼란의 와중에서도 케냐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발전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일은 믿는 이들이 자기 나라의 정부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우리(데릭 프린스 목사와 사모) 부부는 동아프리카의 케냐에서 교육 선교사로 섬겼다. 나는 케냐 서부에 있는 교육대학 학장이었다.

 

그 당시 케냐는 마우마우(Mau Mau:폭력으로 백인 이주자를 추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케냐의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운동의 피비린내 나는 고통에서부터 힘겹게 벗어나는 중이었다. 마무마우 운동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뿐 아니라 수많은 아프리카의 부족들 간에도 더 깊은 불신과 증오를 가중시켰다. 이와 동시에 케냐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가 되기 위해 서둘러 준비하고 있었다. 케냐의 독립은 1963년에 마침내 성취되었다.

 

케냐 서쪽에 있는 벨기에령 콩고는 1960년에 독립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적절한 준비 없이 수립된 자치정부의 무능력과 복잡한 민족 구성으로 인하여 콩고는 곧 길고 긴 유혈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소름끼치는 투쟁과 혼란 상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케냐의 미래는 정말 어두워 보였다. 케냐가 콩고의 불행한 과정을 답습하게 될 것이며, 마우마우단이 남긴 내부의 반목으로 인해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19608월에 나는 케냐 서부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 아프리카 청년 집회에서 사역한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00명의 아프리카 청년이 참석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교사이거나 학생이었다. 그 집회의 마지막 날 저녁 예배 때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17)

 

예배 중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으며,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확신이 내게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을 향해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케냐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라!” 강단에 오른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도전을 말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에게 나라와 정부를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케냐는 지금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케냐의 미래를 위해 기도합시다.” 내가 기도 인도를 할 때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다. 내 곁에 서서 스와힐리어로 통역했던 윌슨 맘보레오는 기도하는 시간 내내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었는데, 기도 소리가 멎자 윌슨은 기도 중에 자기가 본 환상을 전했다.

 

저는 붉은 말 한 마리가 동쪽으로부터 케냐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우 사나운 그 말 위에는 새까만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말 뒤에는 또 다른 붉고 사나운 말 몇 마리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그 모든 말들이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윌슨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본 것의 의미를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내 백성이 하는 기도의 초자연적인 능력만이 케냐를 향해 엄습해오는 환난으로부터 케냐를 돌이킬 수 있다!’”

 

그 이후 여러 날 동안 나는 윌슨이 우리에게 한 말을 계속 묵상했다. 그러던 중 윌슨이 본 환상이 [스가랴 1:7~11]에 기록된 것과 어느 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윌슨에게 스가랴의 그 구절에 대해 아는지 물어 보았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차츰 하나님께서 케냐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당신이 케냐를 위해 분명히 개입할 것임을 윌슨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에 케냐 역사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이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케냐는 19631212일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다. 초대 대통령으로 조모 켄야타(Jomo Kenyatta)가 선출되었다. 19641, 케냐의 역사에서 윌슨이 본 환상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케냐의 동쪽 해안에 있는 잔지바르 섬에서 유혈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쿠바의 카스트로 아래에서 혁명 전술을 배운 우간다 출신의 한 아프리카인이 이끈 혁명으로, 잔지바르의 무슬림지도자를 내쫓는데 성공했다. 같은 달에 공산주의 혁명 운동이 케냐 남쪽의 탄자니아의 국방군을 장악했고, 그 영향은 또 케냐의 군대까지 퍼져 나갔다. 혁명의 목표는 케냐의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공산주의자가 조종하는 군부 독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 중대한 시기에 케냐 대통령 조모 케냐타는 지혜와 단호함으로 대처했다. 영국군의 지원을 요청하여, 케냐군 내부의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고 국가 전체의 법과 질서를 재확립했다. 그리하여 정당하게 선출된 케냐 정부의 권위는 회복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의 군사적 정권 탈취 기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윌슨의 환상에서 케냐로부터 방향을 돌린 붉은 말들은 북쪽으로 향했다. 케냐에서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북쪽 방향에는 소말리아가 있다. 케냐에서 실패한 공산주의자들의 군사 쿠데타는 소말리아에서 성공했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소말리아를 공산주의자 군사 캠프장이라고 묘사했다.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 역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남쪽에 있는 탄자니아는 공산주의자들의 강력한 영향으로 정치적 자유가 여러가지로 제한되었다. 서쪽에 있는 우간다는 이슬람 교도들이 나라를 장악하였고. 부족 간 내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의 와중에서도 케냐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발전하는데 성공했다.

 



기독교에 대한 케냐 정부의 태도는 계속해서 우호적이고 협력적이었다. 케냐타 대통령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모든 공립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의 메시지를 가르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독교 단체들을 초청하였다. 케냐는 주변 국가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전략적 중심지가 되었다.

 

196610월의 어느 날, 나는 신문 안에서 케냐 관련 특별 부록을 접하게 되었다. 요지는 케냐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프리카 대륙의 50개 신생 국가 중 가장 안정되고 성공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부록의 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영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러했다. “이러한 일은 믿는 이들이 자기 나라의 정부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역사를 움직이는 기도와 금식중에서

 

3. 기도의 기적이 낳은 대한민국 유엔 승인

 

3개월 내내 효과적으로 회의를 막았던 비신스키는 왜 갑자기 마지막날 목을 움켜쥐고 퇴장했을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작스런 치통과 성대결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응답임을 안다.

 

그날, 기도의 응답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있다. 유엔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었다. 유엔이 승인한 합법적인 정부를 불법 세력이 침략한 전쟁에 유엔 16개국이 군대를 보내어서 응징했기 때문이다.

 

원로 외교가 박실은 벼랑끝 외교의 승리 - 이승만 외교의 힘에서 건국 이후 최초의 외교전을 소개한다. 1948815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99일에는 평양에서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이름을 붙인 괴뢰 집단이 태동했다. 한반도에 자리잡은 두 세력이 국제무대에서 최초로 맞붙은 외교전이 유엔 총회이다.

 

남한과 북한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3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두고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유엔 총회에 파견된 소련 대표 비신스키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그는 한번 발언을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비신스키가 지휘하는 공산권의 전략은 필리버스터, 곧 끊임없는 발언으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공산권 나라들이 서로 짜고 순서를 정했다. 한 대표가 발언을 끝내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른 대표가 발언한다.

 



계속된 발언의 내용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이었다. 한번은 연설하던 비신스키가 조병옥(趙炳玉)을 보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기, 이승만의 개가 앉아있다.” 조병옥도 만만치 않았다. 즉시 비신스키를 가리키며 받아쳤다. “저기, 스탈린의 개가 짖고 있다.” 국제회의가 개판이 되어 버린 셈이다. 공산권의 지연 전술은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느니, 당장 미군이 철수해야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오늘날에도 친북파(親北派)들이 떠드는 소리는 벌써 50년 전부터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얘기다.

 

몇 시간이고 반복되는 똑같은 소리에 지친 다른 나라 대표들은 회의 도중에 밖으로 나가버렸다. 차도 마시고 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막상 표결에 들어가려고 하면 참가 인원이 정족수에 미달이었다. 우리 대표들은 출입문을 지키며 제발 나가지 말고 표결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지친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월에 시작된 총회는 어느덧 12월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의 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의 마지막 날을 남겨놓고 있었다. 모두들 기진맥진해 있는데, 단장인 장면 박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고들 많았소. 내일 새벽 3시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러 가려는데, 누구 동반할 사람 없겠소?”하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지쳐 버린 일행 중에서는 누구 한 사람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장면은 그럼 내가 3시에 전화를 걸 테니 같이 갈 사람은 따라 나오도록 하시오.”하고 말문을 닫았다.

 

새벽 3시에 단잠을 깨운 장 박사의 전화를 받고 동행 길에 나선 것은 시인으로도 유명한 모윤숙이었다. 때마침 비가 온 뒤끝이라 새벽 거리는 몹시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렇게 동반해 주시니 참 고맙소. 새벽에 기도드리는 습관을 가지게 되니 마음도 시원해지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오.” 장면은 기도하러 가는 길에 모윤숙에게 그렇게 말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도 장 박사는 기도를 계속하였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모 여사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면의 기도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모 여사가 아픈 다리를 추스르며 겨우 일어섰는데, 장면이 또 다시 말했다. “이 근처의 다른 교회에 가서 더 기도합시다모윤숙은 전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장면이 말했다. “그래, 큰일을 눈앞에 두고 그것도 못 참아 어떻게 하오.” 나라를 위한 큰일을 앞두고 다리 아픈 것을 사정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기도를 마치고 회의에 참석했다.

 

1212일 오후 330분이 넘어서 속개된 총회에서 비신스키가 기세좋게 등단했다. 우리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유엔 한국 위원회 활동을 서울에서 밤마다 술에 젖고 노래에 흥청거리는 생활이라고 표현하면서 수십 개월간 유엔 예산을 20~30만 달러나 낭비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을 번득거리고 팔을 들어 휘두르려는 자세를 보이던 비신스키가 별안간 목이 메는 동작을 하더니, 15분 만에 내려가 버렸다. 몇 시간씩 끄덕없이 방해 연설을 해 온 그가 갑자기 퇴장한 것이다. 비신스키의 예상치 못한 퇴장으로 총회는 즉각 투표에 들어갔다. 마침내 한국은 찬성 48, 반대 6, 기권 1표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았다.

 

3개월 내내 효과적으로 회의를 막았던 비신스키는 왜 갑자기 마지막 날 목을 움켜쥐고 퇴장했을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작스런 치통과 성대 결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응답임을 안다.

 

그날, 기도의 응답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있다. 유엔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었다. 유엔이 승인한 합법적인 정부를 불법 세력이 침략한 전쟁에 유엔 16개국이 군대를 보내어서 응징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보낸 나라가 16개국이다. 그 외에 병원을 보내고 먹을 것을 보내고 입을 옷을 보낸 나라가 68개국이다. 이 수치가 기네스북에 있는 세계 신기록이다. 한 나라가 위험해졌을 때 주변에 다섯 나라, 많으면 열 나라가 도와준 사례는 있다. 하지만 무려 68개국이나 되는 나라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 사례는 대한민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누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문맹율이 80%가 넘는 무지한 나라, 평균 수명이 40세 밖에 안 되는 비참한 대한민국을 돕도록 68개국의 최고 지도자들과 국회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잿더미 시체더미 폐허더미에 나앉은 백성들이 눈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를 지켜주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 이호 목사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중에서)

 

[월간 JESUS ARMY20174월호 특집-국가금식기도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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