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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탈북 여성에게 간 이식해준 탈북민 김태희 씨

죽음을 생명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랑의 힘

양연희 기자2015.11.17 20:27:28


 

지난 13()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김태희(43) 씨는 밝은 모습으로 퇴원수속을 밟고 있었다. 간경화를 앓고 있던 탈북민 진희(27, 가명) 씨에게 자신의 간의 70%를 이식해주는 큰 수술을 한 뒤였는데도 웃을 때마다 깊이 패는 보조개는 여전했다.

 

-간 기증 결정을 어떻게 내리게 되셨나요?

어느 날 진희가 말했어요.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 ‘아직 젊은데 억울하다고도 했어요. 병원에서 6개월 안에 간을 이식받지 못하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우는 진희를 보면서 어떻게든 간을 이식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진희에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탈북민 김태희 씨는 2007년 남한에 온 뒤 경남 김해시에 정착했다.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자연대 대표와 탈북난민북송반대 시민연대 대표, 그리고 전국통일광장기도회 부산 섬김이로 활동을 하던 김태희 씨에게 작년 1월 경남 김해의 탈북자 신변 보호 담당 경찰관이 연락을 해왔다. 탈북 여성 진희 씨가 간경화와 생활고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스무 살에 두만강을 넘어 홀로 탈북했던 진희 씨는 젊은 나이였지만 남한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였다. 골수염과 간염 치료를 위해 탈북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임대아파트를 팔고 난 후 기초생활수급비로 받는 4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김태희 씨는 진희 씨를 돕기로 했다. 간 이식 여부를 묻기 위해 장기기증센터를 방문했지만 뇌사자 간이식은 시한부 환자들에게만 가능하다고 했다. 자신의 간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목회자들은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불가능했다. 결국 김 씨는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나섰다.        

    

-남편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남편은 많이 서운해 했습니다. ‘당신 눈에 나는 보이지 않느냐고 했죠. 전 천국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 큰 것을 바라보며 지금 이곳에서 작은 일이지만 주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당신은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편도 제 결정을 이해하고 동의해 주었습니다.”

 

김태희 씨는 남편 김용택 씨와 지난 5월 부산 광안대교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중국에서 인터넷 채팅으로 서로를 알게 된 지 8년 만이었다. 결혼식을 올린 후 사흘 뒤, 김 씨는 간 이식을 위한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7월 간이식 적합 판정을 받았다장기매매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찰관들이 보증을 서는 등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김 씨는 지난 113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진희 씨에게 간의 70%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자살을 생각하던 소녀가장,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두만강을 넘다

 

-북한에서 생활은 어떠셨나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으신 후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오빠가 정신분열증을 앓았기 때문에 제가 집안을 책임져야만 했어요.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다니면서 차라리 곰에 먹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절망적이었죠. 가족 때문에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해 억지로 살았습니다.”

 

-탈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96년 고난의 행군 시절 오빠가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장천공을 앓던 아버지는 북한의 낙후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오히려 병세가 더욱 나빠졌습니다. 저는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오빠를 잃은 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실까봐 겁이 났어요. 당시 26세였던 저는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살고 있던 친척들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김태의 씨는 인터뷰 도중 자주 물을 마셨다. “많이 힘드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좀 힘들다고 했다. “아무래도 간이 30%만 남았으니까....”라면서.

 

-중국에서의 삶은 어떠셨습니까?

처음 중국 땅을 밟았을 때는 별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24시간 전기가 있고, 시골에도 버스가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친척들이 차라리 이곳(중국)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습니다. 인민폐 1만원에 5년마다 2000원씩 북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3일 만에 보상금을 노린 이웃들의 밀고로 중국 공안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탈북한지 사년이 지난 어느 날, 중국 공안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한번 자유를 맛보고 나면 다시는 속박되고 싶지 않은 법이죠...”

 

-북송되었을 때 고생이 많으셨지요?

북한의 안전원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잡혀온 저를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했죠. 그들은 저를 죄인취급하며 부모와 형제, 조국을 버린 변절자라고 욕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국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중국에 살면서도 저는 항상 조국을 떠나왔다는 죄책감을 느꼈죠. 안전원들에게 발길질로 얻어맞으면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저는 조국의 사생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세 번의 탈북과 북송 과정을 거쳐 10년 만에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3번이나 탈북을 감행하시다니 무섭지 않으셨나요?

인간은 한번 자유를 맛보고 나면 다시는 속박되고 싶지 않은 법이죠.”

 

하나님을 만나다

 

-예수님을 어떻게 구주로 영접하게 되셨나요?

첫 번째 북송되었을 때였습니다. 보위부 감방에서 갇힌 채 저는 하나님, 저 살려주세요!’하고 기도 아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저절로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두 번째 탈북 후 저는 중국의 한 도시에서 숨어 살며 한국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때 위성 TV를 통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보았습니다. 화면에 비친 커다란 예배당과 번듯한 차림새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다 미친 것은 아닐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KBS의 '아침마당'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당시 남한에 있던 남편은 신앙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당신이 무사히 남한으로 온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겠다며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제가 정말로 순탄하게 몇 개월만에 남한에 도착하자 남편은 저의 손을 붙들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김해의 한 교회에서 말씀과 양육,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는데 나는 스스로는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탈북민으로서 같은 탈북민들을 섬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복지가 무너진 북한에 살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어본 사람이잖아요.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밑바닥 삶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12년 창신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진희를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지금 남자친구가 아주 괜찮거든요. 앞으로 1년 동안 진희의 생활을 돌봐줄 생각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남 지역의 탈북민들을 중심으로 탈북민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또한 제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탈북민들과 북한주민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힘들겠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자기 자신을 잃지 말라고요.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탈북민들에게는 '천국소망을 가지고 살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통일은 대한민국의 사명... 탈북민들에게는 진심만 통해 


-남한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은요?

통일은 대한민국의 사명입니다. 탈북민들에게는 진심만이 통합니다. 결코 동정심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김태희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 의식을 잃은 한 노년의 남자가 앰뷸런스에 실려 어딘가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그녀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다. 간경화로 죽어가던 젊은 탈북 여성에게 자신의 장기를 떼어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탈북민 김태희 씨. 김 씨는 지금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내 간밖에 없다는 상황이 매우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후원계좌: 농협 351-0797-4869-73 (자유와 인권을 위한 탈북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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