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최근에 원리주의 무슬림 집단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사태를 보면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한국인들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이슬람을 종교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종교라기보다는 문화라고 주장한다. 물론 문화 속에 종교가 포함되기는 하지만 이슬람은 특별히 종교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법률 외교 교육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이며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것이 옳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슬람문화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슬람권에 살고 있을 때 우연히 TV를 켰는데 청년들이 참여하는 퀴즈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푸짐한 상품을 테이블 위에 쌓아 놓고 정답을 맞추는 사람에게 즉석에서 상품을 수여하며 박수로 축하해주는 프로였다. 사회자가 “이슬람의 최대의 적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내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마귀’라고 하기도 하고 ‘여자’라는 답변도 나왔다. 어떤 청년은 ‘미국’이라고 답했다. 이란에서는 매스컴에서조차 미국을 ‘쉐이투네 보조르그(대 마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슬람의 최대의 적이 미국이라고 말한 청년에게 상품이 수여되지는 않았다. 사회자가 의도하는 정답은 ‘문화침략(tahajome fahang)’이었다. 그때는 정답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행자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근에 서양의 타락한 문화가 매스컴을 통해서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데, 저들의 문화침략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특히 청년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슬람을 지 켜내야 한다.”
이란 정부 부처 중 이슬람을 관장하는 부서는 문화부이다. 그런데 문화부의 공식명칭은 ‘베저라테 화르항고 에르셔데 이슬라미(Ministry of Culture and Islamic Guidance: 문화이슬람 지도부)’이다.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단속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문화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하지만 정작 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정의해 놓고 ‘문화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미디어 문화사전에도 ‘문화는 가장 난해한 단어이며 정의하기 어렵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를 ‘집단 습관’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어떤 집단에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나 통념이 바로 문화이다. 거기에는 음식이나 복장이나 인사하는 법이나 친구들끼리 줄넘기를 한다든지 자치기나 구슬치기를 하는 것, 세수하는 법, 목욕하는 법, 노래, 춤, 악기 등 모든 것이 문화에 속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슬람에서는 때로는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다. 이슬람의 음식 문화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려는 할랄 음식이 강조되고 있는데,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덩달아 무슬림들과 함께 할랄 음식은 위생적이라든지 건강식이라는 거짓된 논리로 그들의 홍보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슬람에서 복장 문제 때문에 목숨을 잃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히잡이나 차도르, 부르카를 유행이나 패션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재미 삼아 한 번 입어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슬람에서 복장문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본다.

모 신학교에서 이슬람을 가르치는 교수가 이슬람 세미나에서 강의를 시작할 때 먼저 여성 참석자에게 히잡을 입어보라고 권하는 것을 보았다. 왜 기독교인이 이슬람의 복장 문화를 흉내 내야 하는가? 부르카를 안 입었다고 길거리에서 채찍을 맞는 무슬림 여인들의 눈물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재미삼아 한 번 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이슬람에서 문화는 율법(샤리아)으로 통제한다. 즉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를 허락된 것(할랄)과 금지된 것(하람)으로 분류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처벌을 가함으로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이슬람 문화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말하고 행 동했던 것이 꾸란이나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기초로 이슬람의 율법(샤리아)이 제정되고 무슬림들은 이것을 의무적으로 지키고 따라야 한다. 7세기 때 무함마드가 그렇게 했다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한남동 모스크에서는 매주 발간하는 「주간무슬림」이라는 소책자를 통해서 이슬람의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인 무슬림들에게 예절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써서 이슬람 문화를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1236호(2015.7.3) 5쪽에 보면 “몸의 일부분은 햇빛 아래 있고 다른 부분은 그늘에 위치하는 자세로 앉아서는 안 됩니다.” 또는 “바닥에서 식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남녀가 무작위로 섞여있는 행사는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성탄절이나 신년, 어버이날, 노동절, 결혼기념일, 생일과 같은 날을 축하하는 것은 타 문화를 모방하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또한 “화가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은 분명 지옥에서 응벌을 받을 것입니다”(1110호 2013.2.1) 등의 우리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처럼 자유로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까? 무슬림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명예살인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설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에 ‘여인의 노래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알라께서 심판 날에 그 귀에 끓는 납을 부어 넣으신다’고 했다. 또한 ‘마지막 때에는 간음과 비단과 음악과 술을 즐기는 자들에게 알라의 진노가 임하여 산들이 무너져 죽을 것이며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돼지와 원숭이가 될 것’이라고 하는 등 음악과 악기 사용을 저주하는 수십 가지의 하디스가 있다. 하디스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기초가 된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알라의 진노를 격발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면 헌신된 무슬림들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증오하게 된다. 아래 사건들을 보면 무슬림들이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대형 참사가 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2017년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미국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 도중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관람 중이던 22명이 목숨을 잃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 2017년 10월 1일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렸던 루트 91 하비스트 축제 콘서트장에 모였던 2~3만 명의 관객들을 향해서 기관총을 난사하여 최소 59명이 사망하고 513명이 부상을 당했다.
◆ 2016년 6월 미국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49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을 입었다.
◆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바타클랑 극장 공연 관람자들 1,500명 및 주변의 식당과 까페를 향한 무차별 총격으로 132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위 사건들은 모두 무슬림들에 의해 일어난 테러이다. 노래와 음악을 싫어하는 이슬람의 문화가 무슬림들의 삶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잠깐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벌써 흘러간 옛날 이야기처럼 잊혀져버렸으나,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하 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무슬림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든지 계속 일어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이해한다면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앞으로 무슨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탈레반은 어려서부터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합숙하면서 꾸란과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혹자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반도체 사업에 꼭 필요한 희토류가 약 3조 달러어치나 묻혀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정상 국가로 인정해 주고 외교관계를 맺어 문호를 개방하고 그곳의 지하자원을 선점해야 한다는 야심찬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때 사람 죽이기를 닭 목 자르듯 하던 탈레반에서 임명한 주요 공직자들이 외교관 여권을 들고 대한민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것을 생각한다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 밤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이슬람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필자가 이슬람권에 있을 때 가까운 친구 동역자들이 칼로 수십 군데를 찔려 살해되기도 하고, 총에 맞아 즉사하기도 하고, 무슬림들이 죽여서 나무에 매달아 놓고는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가족들이 자살을 인정하기 전에는 가택연금을 시켜 놓고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등 이슬람의 만행을 수없이 보았다.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가 들어오면 그런 일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날 것 같아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이슬람에도 재판이라는 절차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재판의 판결 기준이 이슬람의 율법이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무슬림들조차 억울하다고 부르짖으며 목이 터져라 통곡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탈레반 지도부가 성명을 통해서 여인들의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하면서도, 도둑질하 면 손목을 자르고 간음하면 투석형을 감행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며 판사들의 판결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것은 이슬람의 율법 즉 이슬람적 문화다. 이슬람의 문화는 대한민국의 미풍양속과는 심각한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보니 유튜브 동영상 사이트에서 이슬람을 강의하는 내용들이 인기를 얻는 것 같다. 그런데 올라오는 영상들을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이슬람에 대해 강의하는 분들이 ‘앗쌀라무 알라이쿰’이라는 아랍 무슬림들의 인사를 청강자(시청자)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강의 도입부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제스처 정도로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본의 아니게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슬람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앗쌀라무 알라이쿰’이라는 인사는 무슬림이 무슬림에게만 하는 인사다. 한남동 모스크에서 발간하는 주간무슬림 1222호(2015.3.27.) 6쪽에도 이렇게 단언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비무슬림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비이슬람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 ‘앗쌀라무 알레이쿰’은 무슬림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방송하는 수십 개의 TV 프로그램을 보아도 사회자나 초청된 강사가 ‘앗쌀라무 알레이쿰’이라고 인사하고 시작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단 이슬람 이맘이 설교를 할 때나 강성 무슬림이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시작할 때는 어김없이 이 인사로 시작한다. 비록 자신은 무슬림일지라도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방송에서도 ‘싸바할 카이르(좋은 아침입니다)’ 혹은 ‘마르하바(안녕하세요?)’ 등을 사용한다. 아랍사람이라도 기독교인들끼리는 ‘앗쌀라무 알라이쿰’이라는 인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할 때는 앗쌀라무 알레이쿰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기독교인인 줄 알면 무슬림들은 이 인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 아랍 기독교인들이 이 인사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지역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 따져 본다면 아랍어 쌀람(salam)이라는 단어는 평화라는 뜻보다는 ‘안전, 악으로부터 보호’라는 뜻이 더 강하다 고 한다(재외동포신문 2021.3.15.). 그래서 무슬림들끼리는 안전하게 보호되기를 바라지만 비무슬림들까지 보호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피지배계급이라서 누구를 보호해줄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게 무슬림들끼리만의 인사로 정착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쌀람(salam)에 정관사 알(al)자를 붙여 ‘알쌀람’이 되면 읽을 때는 ‘앗쌀람’이 되고, 이는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의 99개의 이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이 문장에 대입해서 의미상으로 해석하면 꾸란에서 말하는 “이슬람의 신 알라(Allah)께서 당신에게 임하시기를…” 이라는 표현이기에 아랍 기독교인들은 이 인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슬람에서 문화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무슬림들이 자유세계에 침투할 때는 노골적으로 이슬람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할랄 음식이나 복장, 인사법 등으로 문화의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결국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체득하고 익숙해지도록 하는 문화침략 작전을 쓰기 마련 이다. 평화로운 무슬림들은 문화로 점령하고 이슬람 전사들은 탈레반처럼 지하드로 점령하는 양동작전인 것이다. 이슬람식으로 인사하고 이슬람식으로 식사하고 이슬람 복장을 하다 보면 이슬람이 자연히 익숙해지고,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홍보해 놓으면 대한민국은 이미 반쯤 점령된 땅이 되는 것이다. 이슬람의 문화 침략에 대해서 사소한 것이라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 이만석
예장통합 총회 파송 선교사로 20년간 이란에서 사역하였고, 귀국 후에는 한국이란인교회를 설립하였다. 한장총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교연 이슬람대책연구원장, 예장통합 총회 이슬람대책위 전문위원, 무슬림선교훈련원장 등으로 일하며 한국교회에 이슬람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