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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칼럼

여성 억압은 이슬람 교리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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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요즈음 한국일보에서 이슬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 보인다. 한남동 이슬람 사원 이주화 이맘의 일방적인 글을 아무런 검열이나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나서서 사실 확인을 해 주어야 하겠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특정 종교를 폄하하거나 대항해서 싸우기 위함도 아니고, 글을 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신문이라는 영향력을 가진 공공의 매체를 통해서 일단 발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박이나 정정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신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를 볼 때 우리가 무작정 이슬람에 대한 미화된 정보에 속게 되면 그 결과로 우리 사회의 안녕과 우리 후손들의 행복이 공격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알고도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산다면 당장은 평안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잘못된 전제 : 이슬람=평화의 종교

 

먼저 편집자가 단언적으로 “‘이슬람교’ 하면 테러나 폭력, 차별을 떠올리지만 실은 평화와 공존의 종교입니다.”라고 선언을 하고 글을 시작한다. 이는 자주 듣던 말이긴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이슬람( :Islam)과 평화(  :Salam)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랍어 글자의 모양은 비슷하게 생겼고, 맨 앞에 알레프()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뿐이지만,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고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매우 억지스런 주장이다. 이는 마치 한국어에서 ‘서게하다’라는 단어와 ‘세게하다’라는 단어가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고 의미상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슬람은 “복종”이라는 뜻이며 무슬림은 “복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슬람을 ‘평화와 공존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 혹은 알면서도 속이려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이슬람의 제2경전으로 잘 알려진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을 아내로 둘 수 없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우마르(Umar)는 자신과 함께 살던 아내들 중 두 명의 아내와 이혼했다.(Sahih al Bukhari 2733) 이 하디스를 보고도 이슬람을 평화와 공존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혼을 당한 우마르의 아내들은 결혼할 때는 이슬람과 상관이 없었고, 결혼한 후에는 이슬람 때문에 고향을 떠나 메디나로 이주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혼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여인들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슬람이 평화와 공존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슬람은 힘이 없을 때는 평화를 말하지만, 힘이 생기면 창시자 무함마드가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네 이웃이 알게하라(꾸란9:123)”는 꾸란 구절을 실천하려 할 것이다.

 

편집자는 이슬람 이맘의 글을 게재한 목적을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이슬람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주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라는 교리가 있어서 이슬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실과 다르게 미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관련된 주제를, 그것도 시리즈로 연재하는 것은 제발 사실 확인을 한 후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슬람이 오면서 변화된 여성의 지위? 진실은…

 

기사의 내용을 보면,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 반도와 그 주변국들의 사회상을 이야기 하면서 그 당시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를 가진 삶의 동반자이기 보다는 남성이 소유할 수 있는 쾌락의 도구로서의 의미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이지만, 7세기 초 이슬람이 오고 꾸란이 계시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인류 최초로 여성들에게도 유산을 상속할 수 있게 되었고, 남성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으며, 이는 인류역사를 통해서 볼 수 없었던 혁명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이슬람이 오고 나서 여성들의 인권이 더 열악해졌다는 것은 이슬람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 카디자(Khadija)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살았으며 무함마드가 25세의 젊은이였을 때 40세의 돈 많은 과부로서 무함마드와 결혼했다. 무함마드는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고 있을 때 결혼에 필요한 준비를 그녀가 할 것이라고 하자 결혼이 성사되었다. 카디자는 여러 번의 이혼 경험이 있었고 전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거대한 대상을 이끌며 국제 무역을 하는 재산가였다. 이슬람 이전에 이처럼 분명한 반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란의 계시 덕분에 인류 최초로 여성들이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유산 상속권] 성경에는 이미 주전 15세기경인 모세 시대 때 시집간 딸들에 대한 유산 상속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욥기에도 보면 욥의 딸들에게도 아들과 같은 몫의 재산을 상속했던 기록이 있다. 욥은 모세보다도 훨씬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슬람이 오면서 여성은 남성의 절반의 몫을 상속받도록 했다.(꾸란4:11) 마치 이전에는 여성이 전혀 상속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이슬람 덕분에 인류 최초로 상속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혼 결정권] 이슬람에서는 결혼 결정을 여성 자신이 하지 못한다. 부모나 보호자가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카디자와 무함마드의 결혼은 카디자가 결정하였으며,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을 관철시켰다.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슬람 이전에는 가능했던 일이 이슬람이 오면서 불가능해진 것이다. 과연 이슬람이 여성 인권을 향상시켰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여성의 사회활동] 또한 기사에서는 이슬람에서 마치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데, 꾸란의 어디에 남녀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이슬람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노래하는 재능이 있어도 가수가 될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어도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는 화가가 될 수 없고, 조각이나 무용이나 춤도 불가능하고, 아무리 스포츠에 재능이 있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당한다. 어디를 보고 이슬람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물론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는 여성에게도 직장을 허용하는 국가나 사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이슬람 율법에서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용하는 것이지, 원래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이슬람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1979년 이란에 이맘 호메이니가 들어와서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고 난 후, 팔레비 왕 때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던 이란의 여인들이 이슬람 율법에 의해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법제화되었다. 이슬람이 복장의 자유를 빼앗아 간 것이다. 여성들은 가족과 함께 바닷가의 해수욕장에 갈 수도 없고 수영장에 갈 수도 없다.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을 때 여성 판사들은 모두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했고, 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꿈에 부풀어 판사 취임을 준비하고 있던 여성들은 취임행사가 영원히 취소됨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이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슬람 덕분에 남성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인류 역사를 공부한 것이 맞는가 의심하게 한다.

 

 

[여성차별]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들기 2천 년 전 구약시대 때 여성이 재판관(사사)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던 기록이 있다는 것을 성경을 읽어본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슬람의 율법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지금도 모스크에서 여성이 설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이슬람에서는 여자가 설교는커녕 남자들과 예배도 같이 드릴 수 없다. 성경에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1세기에 사도 바울에 의해서 기록된 성경 말씀이다.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7세기에 이슬람이 여성들에게 절반의 인권을 준 것을 말하면서 “혁명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기사에 보면 이슬람은 여성을 남성과 차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이슬람에서는 남자들이 예배하는 곳에 여자가 함께 예배할 수 없다. 여성들의 상속은 남성의 절반이다.(꾸란4:11) 법정에서 여성의 증언은 남성의 증언의 절반의 효력을 가진다.(꾸란2:282) 남성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으나 여성은 한 명의 남편만 둘 수 있다. 여성의 취업을 수치로 여기는 이슬람 문화를 칭송해야 할까? 이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인가?

 

 

[여성에 대한 폭력] 꾸란은 불순종할 우려가 있는 아내는 첫째는 말로 타이르고, 그래도 안 들으면 많은 아내 중에서 그 여자만 잠자리에서 제외시키고, 그래도 안 들으면 때리라고 명하고 있다.(꾸란4:34) 최영길 교수가 번역한 한글 꾸란에서는 이 부분을 ‘가볍게 때리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아랍어 원문에는 ‘가볍게’라는 단어가 없다. 왓드리부훈나 (wadribuhunna)라는 말은 ‘그녀들을 때리라’는 말이다. 꾸란을 번역자의 생각에 따라 좀 혐오스러운 내용이라고 여겨지면 표현을 완화시키거나 미화시켜 번역하는 것도 이슬람에 유익이 된다면 허용된다. 이것을 타끼야(Taqiya: 이슬람을 위한 거짓말은 허용됨) 번역이라고 부른다. 무함마드는 아내를 때릴 때는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말했다. 언젠가 유럽의 어느 잡지에 한 컷의 그림이 실린 적이 있다. 온 몸을 붕대로 감고 목발을 짚은 여인이 “제 남편은 참 좋은 무슬림이에요. 얼굴은 안 때리거든요.”라고 말하는 만평이었다. 그림 한 장으로 이슬람의 문화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하디스에 보면 무함마드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때릴 때는 왜 때리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Sunan Abi Dawud:2147) 언젠가 유튜브에서 아랍 TV를 보았는데, 어떤 용감한 아랍 여인이 방송에 나와서 아랍의 “케이블 문화”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랍에는 40~50Cm 정도 되는 전기 케이블 토막을 집집마다 준비 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그것은 무엇에 쓰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나뭇가지로 만든 몽둥이들은 쉽게 부러지는데 손가락만큼 두꺼운 전기 케이블은 아무리 세게 때려도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남편들이 아내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당황한 진행자가 여인의 말을 막아서는 장면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랍 여인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이 운명이려니 하면서 적응하면서 참고 산다. 맞을 짓을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랍 여인들은 그 방송을 보면서 “저 여자는 얼마나 맞으려고 저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할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착한 여자니까 공개적으로 남편을 흉보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사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라는데…

 

기자는 또한 “오늘날 세간에 알려진 무슬림 여성에 대한 억압과 무례는 이슬람의 교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문화적 악습과 무지로 인한 것임 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한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기사에서 말하는 대로 만일 여성 비하가 이슬람 이전의 풍습이나 문화일 뿐이라면 이슬람이 중동 지역을 1,400년 동안 점령하고 통치권을 행사했을 때 그것들을 바로 잡았어야 했다. 만일 이슬람이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그렇게 강력한 율법으로 통치를 하면서 바로잡고자 했다면 벌써 바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풍습을 답습하고 즐기면서 오히려 강화하면서 계속 이어나갔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자가 이런 글을 게재하는 목적은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것이 운명이려니 하고 참으며 살겠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서 이슬람의 실체를 모르고 거짓말에 속아 피해를 입는 억울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이만석

예장 통합 총회 파송 선교사로 20년간 이란에서 사역하다가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귀국하여 한국에서 이란인 교회를 설립하여 섬기고 있으며 한장총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교연 이슬람 대책연구원장, 예장통합 총회 이슬람대책위 전문위원, 무슬림선교훈련원장, 한국이란인교회 담임목사 등으로 섬기면서 한국교회에 이슬람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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