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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칼럼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의 일부다처 관련 칼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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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며칠 전 중앙일보 백모 종교전문기자가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와 관련된 칼럼을 쓴 것을 읽어보고 “이 양반도 속았구만”하고 대충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질문을 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까지 입 다물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속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쓴 기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위 대한민국의 유명 일간지의 종교전문기자라는 분조차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이슬람 학자들이 미화된 거짓 정보들을 책자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떤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해도 100권 정도의 책을 읽고 그 책들을 인용해 가면서 이론을 펼쳐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상반된 두 가지의 견해가 존재할 경우, 90% 정도의 책에서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10% 정도의 책이 부정적인 견해를 기술하고 있다면 논문의 결론은 당연히 90%가 지지하고 있는 긍정적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이슬람에 대한 책들이나 자료들은 대부분 무슬림들이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슬림은 아니지만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여러 자료들을 비교해 보고, 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서 금하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이라면 부정적인 표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있었던 예를 들어 보겠다.

 

필자가 이란에 있을 때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어떤 이란 무슬림이 아제르바이잔에 갔는데 그곳 신문에서 “서양의 문명이 이슬 의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글을 쓴 라픽 타기(Rafiq Tagi)라는 기자가 쓴 글을 읽고 분개하여, 감히 이슬람을 모독하고 있는 이 기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모함마드 랑카러니(Mohammad Fazel Lankarani)”라는 이란의 이슬람 학자에게 질문을 했다. 이 “랑카러니”라는 학자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에 대한 이슬람의 유권해석을 내리는 고위 성직자로서, 그의 답변은 소위 “파트와(Fatwa : 알라의 권위로 내리는 명령)”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공개적으로 선포하게 되고, 이는 모든 무슬림들이 지켜야 하는 새로운 율법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맘 호메이니가 죽은 뒤 이란에 7명밖에 없는 그랜드 아야톨라(Grand Ayatollah : 최고의 이슬람 학자)중의 한 명이었으며, 그의 개인 추종자들이 수백만 명이 되는데 그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이 매월 일천만 달러(한화 12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가 이 질문을 받고 신문을 통해서 아래와 같은 파트와를 게재한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기자가 무슬림이라면 그를 배교자로 취급하고 죽여야 한다. 만일 그가 무슬림이 아니라면 그는 이슬람을 모독했으므로 신성모독죄로 죽여야 한다.

 

결국 라픽 타기라는 기자는 길을 가다가 그 파트와를 실천하려는 헌신된 무슬림의 칼에 7번이나 찔려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Mohammad Fazel Lankarani)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 기사를 신문에서 오려서 책갈피에 꽂아 놓고 읽고 또 읽고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처벌이 두려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위의 중앙일보 기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백모 전문기자가 언급한 내용 중에서 무엇이 그리도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이 기사의 주제는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에 관한 것이다. 기자는 이슬람이 발생할 당시는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였는데 아랍 사회는 부족과의 전쟁이 빈번해서 모두 숫자에 관계없이 아내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이슬람이 4명까지로 아내를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슬람 발생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야지 현대의 윤리 기준으로 이슬람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삼국시대라면 흔히 원시인들처럼 도덕도 윤리도 없는 시대처럼 생각하는데, 그 때도 삼강오륜이 살아있었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고 해서 부부가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쳤다. 또한 아랍 사회에서도 기독교인 유대교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일부일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중히 지켰고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왔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도 신약성경에 대해서 모세의 지침서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와 유대인들에 대해서 많은 부분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함마드가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몰랐을까? 아랍 사람들이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의 일부일처 제도를 몰랐을까? 무함마드가 주변에 살고 있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과 같은 신을 섬긴다면 일부일처를 명하신 그 하나님이 갑자기 생각을 바꿔서 일부4처를 허락하시고(꾸란4:3), 이혼을 금하신 하나님이 이혼을 두 번까지 허락하셨을까?(꾸란 2:229) 전쟁 때문에 아내를 많이 얻으라고 했다면 유대인들은 전쟁이 없었을까? 이런 기본적인 배경이 제대로 정리되어야 상황이 정확히 파악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이것이 천지창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일관된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무함마드가 말하는 알라(Allah)가 아내를 4명까지 허락하고(꾸란 4:34) 이혼을 두 번까지 허락한다면(꾸란2:229), 그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약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인 차이다. 가정의 소중함과 생명의 소중함과 결혼생활의 소중함과 여성 인권의 소중함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남자가 언제든지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권리(꾸란4;20)로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이슬람을 만든 무함마드는 일부일처제도에 대한 정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성욕을 충족시켜 그들의 충성심에 대한 보상을 하려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무슬림 병사들은 전쟁 중에 아내들과 떨어 져 있어서 전쟁 포로들로 성욕을 채우곤 했는데 임신을 하면 노예로 팔아도 제값을 못 받으니 질외사정을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지를 물었더니 “심판의 날까지 알라께서 태어나게 하기로 예정된 자들은 다 태어날 것이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Sahih al Bukhari V.5 B.59 No.469)

 

기자는 꾸란 4장 3절을 인용하면서, 이슬람에서는 4명까지 아내를 허용하지만 그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한 명의 아내를 권한다고 소개했다. 이슬람에서는 아내를 공평하게 대할 수 있는 자에게만 일부4처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대부분 한 아내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도 사실상 첩도 두고 매춘도 하니까 일부다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아내로서의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4명 모두 정식 아내의 자격을 인정한다’면서 서양보다 이슬람의 율법이 우월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이 구절에 등장하는 중요한 부분을 건너뛰고 설명을 생략했다. 즉 “여러 아내를 공평하게 대할 자신이 없으면 한 여자로 하든지 또는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으로 하라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니라”(꾸란4:3)는 부분이다.

 

여기서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은 전쟁 포로들이나 노예 소녀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한 여자는 아내로 삼고, 전쟁 포로나 노예 소녀들에 대해서는 의식주를 해결해 줘야 할 의무도 없고 공평하게 대할 필요도 없 고 숫자에 제한도 없이 언제든지 성관계를 해도 좋다는 말이다. 이것은 불법이 아니고 부정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 본 절의 의미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노예 소녀들이나 전쟁포로들과 성관계를 자유롭게 했으며 무슬림 병사들에게도 이를 허락했다. 꾸란에 보면 전쟁 포로나 노예 소녀들이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여자일지라도 그들과의 성관계를 허용하고 있다(꾸란4:24). 무함마드도 자기 아내 하프사 (Hafsa)의 몸종인 마리얌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들키고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 때 알라의 계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알라는 무함마드에게 ‘왜 내가 허락한 것을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금하느냐’면서 그 맹세를 취소하고 ‘알라는 잘 용서하는 자비로운 분’이라고 선언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꾸란66:1-2)

 

이슬람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99%의 남자들이 한 명의 아내와 결혼했다고 해도 그것이 이슬람에서도 일부일처를 권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이 생기면 아내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으나 지금은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한 명으로 참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권리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 하려면 여성 에게도 4명의 남편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기자에게 이슬람의 “트리플 딸락(Tripple Talaq)”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묻고 싶다. 남편이 아내에게 딸락(Talaq:이혼)이라고 세 번만 선언하면 이혼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설마 요즘 같이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굳이 구두로 대면해서 선언하는 것이 불편하면 심지어는 문자 메시지로 ‘딸락(Talaq)’이라고 세 번 보내면 이혼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 창에 “tripple talaq”이라고 쓰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제발 트리플 딸락 제도를 없애 달라’고 시위하고 있는 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직 파키스탄 총리 임란 칸(Imran Khan) 역시 문자 메시지를 세 번 보내 그 아내 레함(Reham)과 이혼한 일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무슬림들이 1억7천만이 넘는 인도에서도 구두로 세 번만 통보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무슬림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트리플 딸락은 위헌이다”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물론 이 법은 대법원에서 위헌으로 판결되었다. 그러나 인도의 무슬림들은 트리플 딸락이라는 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판결이 났을 때 인도 이슬람 성직자들은 “인간이 만든 법은 언젠가는 변할 것이지만 알라(Allah)의 법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계속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 사람들은, 무슬림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쓸데 없이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자면서 보고도 못 본 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는 무함마드가 많은 아내를 얻은 것과 어린 아내를 얻은 것에 대해서 정치적 동맹, 아랍의 풍습 및 우리나라에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 첩을 얻었던 것에 비유하여 일반화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이슬람학자들의 물 타기 수법이다. 이슬람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철학 교육 외교 법률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스템이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의 모든 행동은 신의 계시를 받아 실천하는 것이므로 “인류가 따라야 할 최선의 모델(Uswa Hassana)이며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의 과거의 옳지 않은 풍습이나 사대부들의 객기 등과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기자는 무슬림들이 아내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면서 “알라는 심판의 날에 아내들을 불공평하게 대한 남편을 반신불수로 만들 것이다”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꾸란에는 그런 구절이 없다. 만일 꾸란 어느 장 몇 절인지 대답한다면 본 칼럼의 내용을 모두 취소하겠다.

 

무슬림 학자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거짓 자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자료들을 인용할 때는 최소한 확인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꾸란에 없는 것도 있다고 하고, 있는 것도 없다고 하기도 하며, 그 일부만 인용함으로 전체의 뜻을 바꿔버리기도 하기에, 이슬람에 대한 견해를 말할 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료가 정말 맞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슬람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지 절대로 특정 기사를 쓴 기자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 이만석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Grace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D.Miss). 이슬람권 현지 선교사(86.4~2004.11),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운동 대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국교회연합 이슬람대책연구원장 [저서] 『무함마드의 계시는 왜 자꾸 바뀔까』 『베일 벗긴 이슬람』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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