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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칼럼

다시 주목받고 있는 파키스탄의 신성모독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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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목사 | 무슬림선교훈련원장

 

신성모독법이 형법에 명시된 나라는 많지 않지만, 파키스탄은 특히 형법 295조 B항에 꾸란을 모독하는 자는 무기 징역에 처할 수 있고 C항에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그 법은 지금도 실행되고 있다. 이런 법이 실제로 존재하며 지금도 집행되고 있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파키스탄의 판잡 주의 페이살아바드의 고즈라 마을에 한 불우한 기독교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샤프갓 엠마누엘(Sahfqat Emmanuel)이고 아내의 이름은 샤구프타 카우사르(Sahgufta Kausar)다.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그들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2004년 남편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자인(15), 다니시(12), 조수아(10)라는 세 아들과 딸 사라(9)를 데리고 아내인 샤구프타가 교회에서 청소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한 달쯤 후에 갑자기 동네 이맘이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발신자가 샤구프타 카우사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증언에 의하면 사건 발생 8개월 전에 이맘의 자녀들과 자신의 자녀들이 서로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샤구프타 측은 모스크의 이맘이 얼마든지 샤구프타의 이름으로 신분증 사본을 구해 핸드폰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문자를 보낸 핸드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부는 자신들이 신성모독법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이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는데, 이맘에게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이들은 영어는 커녕 파키스탄 국어인 우르드어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의 메시지는 영어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 7월 이맘은 결국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고, 2014년 4월 4일 재판에서 토바 덱 씽(Toba Tek Singh) 판사는 이 부부에게 신성모독 혐의로 교수형을 판결했다. 판사는 물론 무슬림이고 이슬람 율 법을 기준으로 판결함으로 공정한 판결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같은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집행을 기다리던 아시아비비가 국제 사회의 탄원으로 석방되어 캐나다로 망명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아시아 비비를 도왔던 변호사 싸이플 물룩(Saiful Mulook) 씨가 이 부부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2020년 6월 3일에 예정되어 있던 상고심이 코로나로 인하여 6월 25일로 연기된 가운데, 그 판결은 또 한 번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성모독죄라면 아시아 비비 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2009년 6월 아시아 비비라는 기독교 여인이 체리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무슬림들이 마시는 컵으로 물을 마셨다. 그러자 한 무슬림 여인이 “왜 기독교인이 무슬림들이 마시는 컵으로 물을 마시느냐”고 훈계를 했다. 이슬람에는 나지스(Najis:불결하 다)라는 율법이 있어서 비 무슬림들은 불결하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한 물건이나 식기류도 불결한 것으로 여긴다. 기독교인인 아시아 비비가 마신 컵은 불결해져서 무슬림들이 사용할 수 없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아시아 비비는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는데 무함마드는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느냐?”고 질 문했다. 그러자 무슬림 여인은 아시아 비비가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 했다고 주장하며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결국 아시아 비비는 2010년 신성모독 죄로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다. 하지만 많은 국제인권단체들과 심지어 천주교 교황까지 석방을 탄원한 결과 그녀는 8년 만인 2018년 10월 31일 대법원 판결로 석방되었다. 그러자 무슬림 폭도들이 일어나 그녀의 처형을 요구하였고, 석방 판결을 내린 대법관 세 명을 살해하라고 선동했다. 대법관들의 운전사, 요리사, 경호원들이 진정 무슬림이라면 이 법관들을 살려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수천 명이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아시아 비비를 교수형에 처할 때까지 봉쇄를 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석방 1주일 만에 2018년 11월 7일 아시아 비비는 다시 수감되었고 대법원에 재심이 청구 되었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그녀를 난민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여 2019년 1월 29일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를 죽이려는 무슬림 폭도들이 그녀의 집 대문에 불을 지르는 등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다섯 차례나 이사를 하면서 도피 생활을 하였다. 2019년 5월 7일 드디어 파키스탄을 떠나 이튿날 캐나다에 도착함으로 마침내 이슬람 율법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아시아 비비가 석방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만일 국제사회의 관심이 없었다면 파키스탄 대법원에서 그녀를 석방했을까? 이슬람에는 과연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가? 이런 사건들을 뒤돌아보는 것은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는지를 미리 짚어보는 의미가 있다.

 

샤프갓 엠마누엘과 샤구프타 카우사르 부부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항소심 재판을 맡은 판사들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든지 혐의가 없다든지 등의 이유로 그들을 소신대로 재판하고 석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만일 석방한다면 일름 웃딘(Ilm-ud-din)이나 뭄타즈 가드리 (Mumtaz Qadri)의 경우처럼 그 사형을 자기들이 집행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무슬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름 웃딘은 누구인가?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에 살았던 인도의 젊은 무슬림 목수였다. 그가 어느 날 마하쉐 라즈팔 (Mahashe Rajpal)이라는 사람이 <랑길라 라술(Rangila Rasul)>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내용이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경멸하는 내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분노한 그는 칼을 사서 마하쉐 라즈팔의 집에 잠입해 있다가 라즈팔이 나타나자 칼로 찔러 현장에서 숨지게 하였다.

 

 

이 사건은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너무 유명한 사건이라서 나이 많은 분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일름 웃딘은 20세의 나이로 인도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지만, 원리주의 무슬림들에게는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로 계속 교육되고 있다.

 

뭄타즈 가드리(Mumtaz Qadri) 사건도 신성모독 법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 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뭄타즈 가드리는 파키스탄의 모범적인 경찰로서 특수훈련을 받고 대 테러 요원이 되어 일반경찰이 못하는 일들을 담당했다. 그는 요인을 경호하는 특수 경찰의 임무를 맡고 판잡 주의 주지사 살만 타시르(Sarman Taseer)의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에 서 자신이 경호하는 주지사가 신성모독 죄로 사형언도를 받은 ‘아시아 비비’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더구나 ‘신성모독 법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수정 완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자 방송마다 유명한 이슬람 성직자들이 나와서 “신성모독한 아시아 비비를 두둔하는 판잡 주의 주지사는 국가 공직자의 자격이 없는 자이며 이런 자는 알라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설교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이러한 설교에 용기를 얻은 뭄타즈 가드리는 2011년 1월 4일 이슬라마바드 자신의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주지사에게 28발의 총을 발사하여 27발을 명중시켰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주지사를 자기 손으로 사살한 것이다. 물론 그는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고 2011년 10월 11일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의 상소는 ‘제복을 입고 경호하는 자가 자신이 경호해야 할 대상을 살해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기각됐고, 2016년 2월 29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뭄타즈 가드리가 재판을 받는 5년 동안 무료로 그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사들이 300명이나 자원하였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10만 명의 무슬림들이 모여 장사진을 이뤘고, 40일간의 애도 기간이 마치는 날 2만5천 명이 운집하여 행사를 치렀다. 그리고 1만 명의 시위대가 라왈핀디 시를 행진하며 국회를 에워싸고 ‘이슬람 율법이 온전히 파키스탄에 실행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파키스탄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해산을 명하자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언론보도 차량들을 불태우며 소동을 피웠다.

 

 

신성모독죄를 완화시키려던 살만 타시르 주지사를 살해한 죄로 그의 경호원이던 뭄타즈 가드리가 교수형을 당하자 수 만 명의 무슬림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했다.

 

뭄타즈 가드리가 감옥에 갇혀 있던 2014년에 그를 기념하는 모스크가 세워졌고, 그가 처형된 후에 그 모스크는 두 배로 증축되어 파키스탄의 순례코스가 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모스크인 그라스고우 중앙사원(Glasgow Central Mosque)의 이맘인 모울라나 하비볼 레흐만은 뭄타즈 가드리를 가리켜 “진정한 무슬림”이라며, “그의 죽음은 가장 큰 고통이고 슬픔이었으며 나는 오늘 나의 슬픔을 감추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Premier Christian News 2016.3.25.)

 

이슬람의 생명 경시현상은 신성모독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배교자를 죽이라는 법도 그렇고 자신의 가족들을 죽여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명예 살인 현상도 그렇다. 명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5천 명에서 2만 명까지 이른다고 한다.

 

이 정도 이야기를 읽으면 이런 사회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미화되어 소개되고 있다. 유럽은 이미 무슬림들이 5% 이상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슬람을 비판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는 차별금지법을 강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제 이슬람의 영향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무슬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지만, 그들을 옥죄고 파괴하며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행복을 빼앗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바르게 알려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혐오를 조장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아무쪼록 샤프갓 엠마누엘과 그의 아내 샤구프타 카우사르의 신성모독죄 판결이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정상적으로 판결되기를 바라며, 이를 계기로 이슬람의 신성모독법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슬람 율법 상 그것이 어렵다면 그 법이 누구에게도 적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만석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 선교문학석사(MA) 선교학석사 (Th.M), 미국 Grace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박사(D.Miss).

오랫동안 이슬람권현지 선교사(86.4~2004.11)로 활동, 현재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운동 대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국교회연합 이슬람대책연구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무함마드의 계시는 왜 자꾸 바뀔까> <베일 벗긴 이슬람>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인가>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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