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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일

"미해병 3만을 이달 크리스마스까지 모조리"..."나를 버리시나이까!"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 (6.25동란 70주년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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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일 대표ㅣ동서문화사

 

장진호전투(長津湖戰鬪, Battle of Chosin Reservoir)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스미스 장군의 미군 제1해병사단 3만 명이 펑더화이가 이끄는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감행한 대전투. 이 전투는 미군 제1해병사단이 서부전선에서 북상중인 미 제8군과의 접촉을 유지하려 장진호 계곡을 따라 강계방면으로 전진하던 중, 장진군(長津郡) 서한면 유담리·신흥리 일대에서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되면서 시작되었다. 높이 2000m 험준한 산들과 깊은 협곡 등 악조건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40km 난경지대를 돌파하여 성공리에 함흥으로 철수하였고, 이 작전으로 미군은 6532명, 중공군은 2만 8천 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 이 전투는 청천강(淸川江) 일대 수세에 빠져 있던 미 제8군 철수를, 중공군 함흥지역 진출을 2주간 지연시켜 국군과 미군이 흥남 철수를 할 수 있었다.

 
세찬 바람과 눈보라에 뒤덮인 흥남부두. 수십만의 피란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온 항구가 인파로 가득 넘실거렸다. 병사들이 배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범신 중위는 갑판에서 개마고원 너머 장진호 쪽 하늘을 바라본다. 푸르스름 날이 새어 온다. 검푸른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찬란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전투가 벌어진 이 얼어붙은 장진호 눈 덮인 골짜기를 그 어떤 글로도, 그림으로도 차마 그려 낼 수가 없습니다. 죄악과 악마의 화신만이 이 전쟁의 주인이었습니다. 신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날마다 시뻘건 해짐과 해뜸은 무례하게 인간을 비웃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이에 멍들고 부풀어 오른 구름에서 쏟아지는 커다란 눈덩이만이 이 땅과 묘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눈은 그치지 않았고, 어쩌다 신들이 비웃듯 해가 또다시 떠오르면 병사들이 썩어가는 악취를 풍기며, 으적대는 얼음덩이는 그들과 함께 끔찍한 비명을 질러댑니다. 포탄 구멍에는 시체와 흙이 한덩이가 되어 엉겨 붙었습니다. 길과 길은 꽁꽁 얼어 발을 내딛기도 힘들고 나무들은 온통 검게 썩어 들어갔습니다. 허공에서 으르렁대는 포탄 소리, 사철 얼음이 녹지 않아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개마고원 낭림산맥 황량한 계곡에 메아리 소리가 울려옵니다.

 

“흥남항으로 돌아가야 해! 이 죽음의 얼음지옥 장진호를 탈출해야 해! 나 살고 싶어! 나 살고 싶어!”

 

머리 위로 빗발치는 건 포탄뿐이었습니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가 박살나고, 부상자와 정신이 혼미한 병사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갔습니다. 포탄은 이곳을 무덤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 가엾은 주검들이 그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존재하지도 않았죠.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삽질이 계속되면서 참호는 점점 깊어졌습니다. 썩어가는 시체들. 목긴 전투화를 신고 허우적거리며 대오를 따라 기었지요. 몸뚱이와 얼굴은 아래로 향하고, 수렁 같은 눈덩이 속에서 헐겁게 채워 짓밟은 모래주머니처럼 몸부림쳤습니다. 흠뻑 젖은 엉덩이, 헝클어진 머리털, 불룩하게 뭉친 몸뚱이들이 더러운 구렁에서 잠을 청했지만, 고향 생각이 꿈결처럼 밀려왔습니다. 링게르는 그대로 얼어버리고 소변을 보면 그대로 잠지에서부터 고드름이 되어 주먹으로 쳐내 부셔버려야 했습니다. 병사들은 얼어서 넘어지고, 죽어 갔지요. 전진! 전진! 전진! 귀가 먹고, 감각이 마비되었습니다. 귀청을 찢을 듯한 포탄 폭풍과 핑! 핑! 탄환 소리, 눈밭 속을 비틀거리고, 달리고, 달리는 내 목소리는 소음 속에 묻혀 버립니다.

“‘제군들,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라!’ 고요한 빛, 그 기쁨, ‘중대장님! 조심하십시오!’ 하! 하! 하! 떼로 기다리고 있군. 권총 조준! 틱! 틱! 붉은 피. 중공군이다, 중공군이다! 좋아! 오, 좋았어! 냉철한 광기이다.”

 

 

우리는 개마고원의 얼어붙은 장진호 참호를 보았습니다. 되는 대로 그러모아 쌓아올린 시체더미들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메스꺼운 악취에 못 이겨 구토를 했습니다. 폐허가 된 지역을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모든 것은 탁한 갈색의 단조로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강렬한 것은 오직 붉은 피, 피, 피, 피뿐이었지요. 야간에 초병이 피격당하는 것도, 디딤판 위로 발을 올리고 힘차게 전진하던 동료 병사가 쓰러져가는 것도. 그 병사의 목이 참호의 뒤 경사면에 부딪히면서 그는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의 머리는 달걀껍데기처럼 으깨졌고, 따뜻한 회색의 뇌수가 얼어붙은 대지 위에 흘러내립니다 ……. 하얀 눈이 그의 얼굴에서 희번덕거렸습니다. 죄악으로 몸부림치는 악마처럼 그의 얼굴이 떨고 있었죠. 그대여! 맥박 소리가 들립니까? 포말로 오염된 허파를 씻어 내세요. 독약처럼 지긋지긋하고 쓰디쓴 맛. 오! 순결한 혀끝에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다니……. 그때 베이징 방송은 외쳤습니다. 세계여 들어라! 죽음의 지옥, 장진호에 들어온 무패를 자랑하는 미해병 3만 병사들은 이달 크리스마스까지 모조리 죽어버리리라! 온 세계는 공포에 떨었다.

 

중공군은 너무 말라 몸이 앙상했다. 작달막한 키에 등은 구부정하고, 물기 밴 눈은 쉴 새 없이 껌벅거렸다. 코는 납작하고 이마와 턱은 빈약했으며, 얼빠진 듯 무표정한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맥카렌은 비틀거리는 그의 걸음걸이를 찬찬히 바라보다 보통 사람보다 발이 무척이나 작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발에 맞는 신발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사해 보니 그는 국부군 출신이었다. 공산주의에는 관심이 없는 그가 중화인민공화국 병사로 이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이범신 중위가 와서 그에게 물었다.

“왜 미군과 싸우는가?”

그는 흐릿한 눈길로 잠시 바라보더니 힘없이 말했다.

“썬뿌요우지아, 워예뿌시환짠쩡(身不由己啊, 我也不喜歡戰爭).”

‘내가 세상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나도 전쟁이 싫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모든 것을 체념한 듯했다.

 

그 겨울 젊은 병사들이 죽어 갔을 때 전우들은 그들을 땅에 묻었다. 세월이 흘러 풀꽃들이 피어나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다니며, 그들은 땅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점점 가벼워졌다. 이처럼 가볍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그들은 눈물을 흘렸을까.

 

  

▲ 장진호 전투에서 걸린 동상으로 현재까지 고통 가운데 있는 참전 병사 (아리랑TV 영상)

 

전쟁, 지금도 전쟁 중이고, 사실 언제나 전쟁이 있어 왔습니다. 웅얼웅얼 병사들은 미쳐가면서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죠. 병사들은 스스로를 죽음, 아니, 죽음보다 더한 상황으로 내몹니다. 불구가 되고, 장님이 되고, 인간 대 기계, 육체와 강철, 콘크리트, 불꽃, 지저분한 참호에 병사들의 영혼이 질식당합니다. 병사들은 너저분한 얼음 밭을 거칠게 달려가야 합니다. 포격으로 병사들의 피가 엉긴 내장이 쏟아지고, 생의 마지막에 신을 저주하는 병사들. 하느님께서 그분의 형상에 따라 그들을 인간으로 만드셨지만……. 우리는 조국을 위해 죽었습니다. 그 죽음은 달콤하지도 않았습니다. 품위도 없었습니다. 선배들의 거짓말을 믿고 얼어붙은 지옥의 장진호로 걸어 들어갔던 겁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우리는 이제 그 거짓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 많은 기만행위들을, 낡은 거짓말들과 새로운 오명을. 그러나 우리는 담담하고 즐겁습니다. 크게 웃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우리는 사랑합니다. 지하의 불길이 땅속에서 내달리며 용솟음칩니다. 용암이 분출하면 개마고원 낭림산맥 모든 들풀과 큰 나무를 모두 불태워 버릴 것입니다. 더는 썩을 것도 없어지게 되겠지요.

“하늘과 땅이여, 우리는 담담하고 즐거우리라. 우리는 크게 웃으리라. 우리는 즐겁게 노래하리라.”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이렇게 적막하니, 우리는 크게 웃을 수도 노래 부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한 다발의 들풀을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곳에서 벗들과 적들, 사람과 짐승,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앞에 바쳐 징표로 삼으려 합니다. 이 눈얼음산 개마고원 얼어붙은 장진호에서의 죽음과 썩음, 그것이 빨리 닥쳐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일찍이 살아 있지 않았던 것이 되니, 이는 죽거나 썩는 것보다 훨씬 불행할 테니까요. 오, 오, 감미로운 전쟁이여! 달빛이 반사되는 얼어붙은 장진호로 들어간, 지옥의 흉터를 간직하고 눈물을 흘리는 미군 병사들이여! 중공군 병사들이여! 돌아오지 않는 청년의 군대, 고통 속에서 티끌로 사라져 버린 군단이여! 행군하는 병사들이여. 노래와 함께 죽음의 문에 이르나니, 비옥한 대지의 수확을 위해 그대의 기쁨을 뿌리나니, 영면 속에서도 그대들은 기뻐하리라. 장진호 얼음화단에 그대들의 기쁨을 흩뿌리다니, 즐겁게, 그렇게 죽어 가노라. 내 심장에서는 명랑한 장송곡뿐. 참호에서 내게 필요한 건 3미터의 땅, 그리고 평범한 나무 십자가. 나머지는 신께 맡기리.

 

고산 고정일

성균관대대학원 비교문화학전공 졸업, 소설「청계천」<자유문학> 등단. 동서문화사 발행인,

<얼어붙은 장진호>, <애국작법>, <매혹된 혼 최승희>, <춘원 이광수 민족정신 찾아서>,

<파파 이중섭>, <불굴혼 박정희> <한국전쟁>한국출판학술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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