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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북한의 지상교회와 지하교회

- 지상교회인 가정교회와 봉수교회 등은 조그련 소속
- 조그련은 대남 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 산하...통일전선전술 차원 활용
- 김씨일가 우상화 반대하는 지하교인은 정치범으로... 처형 또는 정치범수용소 행

 

 

 

 

 

 

 

 

 

이 상 원 목사

예수사랑교회

 

1958년 김일성은 ‘북한에서 기독교가 사라졌다’고 공식 천명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하 조그련)과 많은 교류를 하면서 봉수교회, 칠곡교회 등을 재건해주었다. 말살되었다고 공언한 기독교가 어떻게 갑자기 생겨나게 된 것인지, 정말 북한 기독교와 교류해도 되는 것인지 한국교회 성도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해방 이후 북한기독교 역사를 통해 북한의 기독교 실태를 알아보고 그 가운데서 북한의 지상교회와 지하교회 중 누가 복음통일을 위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해방 후 북한기독교 역사

 

일제시기 기독교 교세가 가장 큰 지역은 평안도와 황해도였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에 기독교가 가장 장애가 되는 집단으로 규정하여 서북지역이라 불리는 이곳 교회들에 대해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1992년 발행된 『기독교대연감』에 따르면 1940년 북한에 26만 명 신자, 2800개 교회그리고 2000명 교직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자의 66%가 평안도, 22%는 황해도에 있었다.

 

A.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만남 (1945-53)

 

1945년 10월 소련과 김일성은 조만식 장로를 포섭하여 북조선만의 단독 정당을 만들려고 공작을 하지만 실패한다. 조만식은 김일성의 협력제안을 거절하고 다음 달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는 날에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비공산계 민족주의자들의 정당인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된다.

 

조선민주당은 반공노선과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치며 몇 개월 만에 50만 당원을 확보할 정도로 대중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해방 직후에 모든 고을의 자치회, 건국준비위원회 등이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한의 기독교 교세는 북한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김일성은 어떻게든 조만식이 친소련적 입장에 서도록 회유와 압박을 가하였다. 소련이 밀어붙이는 신탁통치에 대해 찬성하면 조선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하나 조만식은 끝까지 거절한다. 1946년 1월 마침내 조만식은 일본 첩자로 누명을 쓰고 소련군정에 체포된다.

 

 

김일성은 기독교 세력을 말살하면 북한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여 교회 탄압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다. 기독교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은 주일 총선거 실시와 ‘북조선기독교연맹 (북기련)’을 결성하면서 시작된다.

 

김일성의 외종조부인 강량욱목사는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있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서기장 직을 맡으면서 1946년 11월 ‘북기련’을 출범한다. 강량욱목사는 김익두목사, 김응순목사 등을 회유, 협박하여 북기련에 가입시키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민족진영의 목사들 조직인 ‘북조선 5도 연합노회’ 소속 목사들을 1947년 5월까지 가입하도록 강제하였고, 미가입자는 노회회원 자격을 박탈하고 강단에 설 수 없도록 한다. ‘5도 노회’ 소속 목사들과 신자들은 대부분 월남한다. 북한정권은 ‘북기련’ 초대위원장인 김익두목사를 ‘공화국의 배신자’로 몰아 감금하고 6.25때 처형한다. 그 후임에 강량욱목사가 위원장으로 선임된다.

 

 

북기련은 각 교회에 공문을 보내 예배당 정면에 김일성 초상화를 걸도록 하고 교회 현판 밑에는 ‘북조선기독교연맹’ 지회라는 간판을 걸도록 강요한다. 장로교 신학교와 감리교 성화신학교를 통합하여 ‘기독신학교’로 재편하고 두 신학교에 재학 중인 800명의 학생들을 사상 검증하여 120명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퇴학시켜 버린다.

 

 

1947년 2월 북한정권은 종교 실태조사를 하며 일정한 신자 수에 미달하는 교회는 폐쇄하여 다른 용도로 전용한다. 또한 휴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꾸고 오후 6시 이후로 통행금지를 실시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주일예배와 저녁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다.

 

1948년 3월 김일성은 노동당 2차 당대회를 통해서 ‘일부 악질적인 장로들과 목사들’이라고 언급함으로 이들을 노동당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기독교를 반체제세력으로 규정한다.

 

6.25기간 특히 남한을 점거한 3개월 동안 북한정권은 470여 개의 종교 단체를 해체하고 800여 동의 종교건물을 파괴하였고, 파괴하지 않은 건물은 선전실, 회의장 또는 유아시설로 사용한다.

 

전쟁 이전과 전쟁 중에 대규모 월남으로 인해 북한 기독교인들은 사회적인 영향력 면에서 미미한 집단으로 전락한다. 친공산주의 기독교세력인 북기련마저 당면한 북한 사회변화에 대응할 만한 신학적 자원을 갖추지 못하여 북한교회는 전쟁 이후 반기독교적 정서를 극복할 역량을 상실하게 된다. 1950년 기독교 신자는 약 20만 명, 교직자는 목사 410명, 전도사 498명, 장로 2142명, 교회는 2000개였으나 전쟁 후 목사는 20명, 신자는 5만 명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B. 사회주의의 기독교 통제 (1954-71)

 

6.25전쟁 후 북한의 공식적인 교회는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반기독교적 사회분위기로 인해 ‘탈교회’ 분위기가 되었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와 타협하였다. 김일성은 “반동적 장로와 목사는 피땀 흘리지도 않고 돈을 많이 모아 부화방탕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이므로 ~ 우리는 그 일당을 1958년에 모조리 처단해 버렸다”고 발언했다. 북한정권은 6.25남침 전날인 1950년 6월 23, 24일 양일에 걸쳐 북한의 목회자 대다수를 학살하였고, 살아남은 기독교인들은 1958년에 대규모 지식인들을 학살하면서 다시 학살하였다. 1960년대 사회주의에 협력하는 기독교인은 1-2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숨어서 전도하고 신앙생활하는 그루터기 신자가 되었다. 이들이 지하교회의 형태로 남아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드러난 교회는 평안북도 용천군의 이만화 목사의 지하교회였다.

 

1957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용천군에서 2천 여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곧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당국에서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다. 용천군 협동 농장의 출근부를 살피는 가운데 주일에 결근자가 많다는 내용을 수상히 여겨 조사해 본 결과, 이만화목사의 인도로 세 사람 내지 다섯 사람씩 점 조직망을 만들어 5백조에 2천 여 명의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발각되었다. 이들이 이만화목사의 지시에 따라 투표를 거부한 것이다. 이만화목사 는 교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진 출두하여 처형되었으나, 나머지 교인 2000명도 결국 색출되어 처형된다.

 

C. 통일전선전술 시기 (1972-87)

 

김일성은 한국 종교단체들이 민주화투쟁에 적극 나서는 것을 보면서 이들을 적화통일전략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데 이용할 전술을 세운다. 북한정권은 북한에도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음을 내세워 한국의 반정부 종교단체들과 교류를 확대해 이들을 포섭하려는 속셈으로 관제교회를 만들기 시작한다.

 

1972년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북한정권은 기독교인 박멸을 지시하면서 6.25전쟁으로 해체된 ‘북조선기독교연맹’을 ‘조선기독교연맹{조기련)’으로 1974년에 재건한다. 조기련은 세계교회를 통하여 물질적 지원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WCC에 가입하려고 하나 거절당한다. 산하 교회가 없는 연맹은 있을 수 없다는 통지를 받고서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세우게 된다.

 

‘조선기독교연맹’은 1999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으로 개명된다. 조그련의 지역조직은 직할시·도연맹이고 거기에 가정 교회가 소속된다. 조그련은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산하 단체이므로 조그련과 접촉하는 모든 단체와 인사들은 통일전선부의 공작대상이고 외부 종교단체와 정부, 국제기구에 의해 기부되는 모든 자금과 물품은 최고 권력자의 외화벌이가 된다.

 

조그련은 1990년에 신구합본 성경전서와 찬송가를 발행한다. 이는 1977년판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에 맞추어 교정한 것이다. 조그련은 목사를 양성할 기관인 평양 신학원을 개교한다. 신학교는 매년 신학생을 뽑지 않고 졸업생이 있는 해에만 선발한다. 지금까지 100여명이 넘는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북한정권은 1972년 헌법54조를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로 개정한다. 그 해에 조그련 위원장인 강량욱목사를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한다. 1973년 김일성은 “기독교가 민중의 해방을 위한 자원을 갖고 있다”고 발언함으로 기독교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발언을 한다. 1987년 김일성 종합대학에 비밀리에 종교학과가 신설되어 재미교포인 홍동근목사가 기독교학을 강의하게 된다.

 

D. 인식 전환 시기 (1988-현재)

 

80년대 중반부터 ‘주체사상의 종교론’의 등장과 함께 ‘반종교선전’의 최소화 정책으로 한국의 종교 단체와의 통일전선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이런 정책 변화로 남한의 많은 종교인들이 방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봉수교회와 칠골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북한정권은 서방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남한 기독교인들의 통일 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집단을 넘어서, 북한당국의 정치적·경제적 협력과 교류의 파트너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다. 북한이 교회를 통한 경제적 협력과 통일전선 전술의 일환으로 기독교를 역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1년 8월 김일성은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우리는 남조선 종교인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하며 그들과 단결해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다.

 

북한의 신종교정책이 등장하면서 주체사상과 종교사상간의 ‘세계관 차원의 접근 가능성’이 모색되었다. 1992년 김일성은 80회 생일에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를 출간하여 자신의 종교관과 기독교적 배경을 상세히 서술한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1992년 헌법 69조의 ‘반 종교선전의 자유’란 문구를 삭제하고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제시한다. 1998년 헌법 68조 ‘누구든지’라는 말을 삭제하여 종교 탄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대외에 심어줌으로 종교를 대외 경제지원 획득 창구로 이용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주목해야 할 북한교회의 변화는 보이는 지상교회는 외화벌이의 전선에서 지원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 반면 북·중 접경지대로 탈북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새로운 지하교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상교회와 조그련을 통해 지하교회에 대한 핍박과 탄압이 강화되었다.

 

 

북한의 지상 교회

 

북한의 지상교회는 북한정권에 의한 탄압이 없는 교회를 말한다. 다시 말해 노동당과 북한정권에 잘 협력하여 합법적으로 공인받은 교회이다. 2016년 조그련은 북한 공인교회의 신자가 15000명을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예배당이 있는 교회와 예배당이 없는 교회가 있다. 전자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말하고 후자는 가정교회를 말한다. 이들의 전도 대상은 해방 전에 믿었던 신자들이나 전쟁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을 잊은 자들이라고 한다. 또한 가정교회의 존재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독교를 전하거나 조그련을 선전하는 것이 조그련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이것은 지하교인을 색출하기 위한 공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그련의 위원장은 국가 부주석이었던 강량욱, 최고재판소 부소장이었던 강영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인 강명철로 이어진 3대가 세습하고 있다. 이들은 목사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고 당에서 목사자격을 준 것이다. 북한은 정치가들이 종교책임자로 있다. 북한은 ‘정치는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종교가 거룩한 영역이라고 한다면 종교는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북한 기독교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아주 정치적이다. 북한인권운동가나 북한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북 한정권과 교섭하려고 하지 말고 그 밑에서 핍박당하고 있는 북한백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라고 권고한다.

 

평양신학원은 졸업생들을 배출하면 자신들의 고향이나 새로 발령받은 사역지로 파견되어 가정교회 목회를 담당한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가정교회 출신들이다. 어떤 북한선교 전문가는 ‘중국의 삼자교회도 어용교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은혜로운 교회로 변화되고 있다”며 “북한의 봉수교회, 칠골교회 등도 어용 교회지만 외부에서 들어가 전하는 말씀은 진짜 복음이기 때문에 더디긴 해도 하 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통일뉴스의 시리즈에 실린 최재영목사의 방북기에 따르면, 북한의 또 다른 지상교회는 가정교회이다. 처소교회, 가정예배소 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주일에 출석하는 가정교회 교인 수는 평균 10~15명 정도이다. 가정교회는 주로 전도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책임자로 세워지거나 목회자 한 명이 여러 개의 가정교회를 순회하며 관할하기도 한다.

 

예배순서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예배와 거의 동일하며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반주한다. 가정교회 신자들은 김일성 숭배사상인 주체문화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가정교회를 이끈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평양시의 가정교회의 신자들로 채워진다. 예배당이 있는 교회는 주일예배가 끝나면 신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지만 가정교회의 경우는 달랐다. 주로 신자들이 거주하는 주택의 응접실이나 안방에서 드려지는 가정교회는 주일예배가 끝나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귀가하지 않고 계속 남아 간단한 식사와 친교 시간을 갖는다.

 

1960년대 이후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 노선에 적극 협력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소위 ‘풀어주는 사업’의 일환으로 가정예배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해방 전 기독교가 부흥했던 지역에 200여 개의 가정교회가 허용되었다.

 

평남 남포에는 안창호의 누이동생인 안신호가 주도하는 가정교회, 강원도에는 김원봉의 모친 김모 씨가 운영하는 가정교회, 평양 만경대지역은 김일성 주석의 외가 친척인 칠골 강선녀 권사가 주도하는 가정교회 등 모두 200여 곳이 운영되었으며 이 가정교회들이 모체가 되어 2018년 현재는 520개의 가정교회가 있다.

 

가정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고령화되어 연령층이 50대-70대이고 주일학교가 운영되지 않고 청년 대학생들도 없다. 북한은 만 18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종교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그들은 전도를 하려면 부흥회 같은 것을 해야 하는데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할 수가 없어서 개별전도나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전도 사업을 한다.

 

북한의 지하 교회

 

북한의 지하교회는 북한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는 교회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성경말씀과 기독교 교리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로, 김일성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북한정권에 협력하지 않는 신자들이다. 지하교회 성도는 신앙을 숨긴 사람들의 자녀들로 ‘그루터기’로 불리는 신자와 90년대 이후 중국에서 신앙을 갖고 복귀한 신자로 구성되며, 전자는 소수이고 후자가 대부분으로 모두 20~40만 명으로 추정된다.

 

올해 8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첫 번째 ‘국제 종교폭력 희생자의 날’이었다. 전 세계에서 다른 종교를 믿거나 신앙을 부인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온갖 폭력을 당하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유엔이 올해 처음 제정한 날이다. 북한은 특히 기독교 신자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조그련 위원장인 강명철목사는 지하교회의 존재를 부정한다.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왜 지하교회가 존재하는가”라고 하면서 “지하교회는 우리 국가와 사회질서를 해치는 단체이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존재할 수도 없다”라고 한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이들을 체제 전복세력, 반통일세력으로 간주하여 간첩죄나 국가반역죄로 처벌한다.

 

미국 펜스부통령도 지난 7월 ‘종교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 “북한 정권이 관리들에게 반동적인 기독교 신자들을 전부 제거할 것을 공식적으로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오픈도어선교회가 발표한 기독교 박해순위에서 북한은 18년째 불변의 1위 국가이다. 그것도 폭력지수가 높아서 1위 국가이다. 지난 10월 로마 교황청 산하단체인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 전체 정치범의 절반 규모인 5만~7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감금되어있고 그들의 75%가 가혹행위로 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사회에 북한의 지하교회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탈북자가 많아지고 한국선교사들이 중국과 북한의 경계지역에서 사역하면서부터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전국에서 아사사태가 나면서 대량 탈북이 이루어진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은 중국의 조선족 교회 목회자들과 한국교회 선교사들이었다. 이때 양식을 구하고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는 탈북민들을 통해서 북한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몇몇 북한선교단체는 중국에서 탈북민들을 2년 이상 집중적인 말씀훈련을 시켜 목사안수 후 북한선교사로 다시 보내기도 한다.

 

작년 8월 선교단체인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북한 지하교인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룬 북한정권의 ‘선전용 영상’을 공개하였다. 간첩으로 묘사된 차덕순은 참으로 담대한 복음 전도자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북한정권이 지하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픈도어즈 영국지부는 지난 8월, 북한의 노동교화소에 3년 동안 갇혔던 여성 기독교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성은 교화소 내 위험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하고, 심지어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전도할 용기를 냈다. 비밀 지하교회를 시작하였고 이들 5명은 간수의 눈을 피해 지독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서 모였다. 그 곳에서 이 여성은 동료들에게 성경 구절을 가르쳤고, 모두 함께 모여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마무리하며

 

얼마 전 자유아시아방송에서 탈북자 김충성씨는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북한 성도들은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 때문에 북한 땅에서 데려 가실 목숨이 더 있다면 예수 먼저 믿은 우리를 데려 가십시오. 대신에 예수, ‘예’ 자 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하’자도 듣지 못한 우리 부모형제들, 북한인민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저들이 다 예수 믿고, 복음 듣고, 그리고 천국 갈 기회를 주십시오.” 이 기도야말로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해야 할 기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북한선교가 이제는 복음통일을 이룰 북한의 파트너인 지하 교회 성도들을 도와서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북한 전역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 땅에 예수군대들이 세워지고, 그들이 한국교회와 함께 복음통일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사 ‘남방 시내들 같이’ 복음통일을 이루시고, 북한동포들을 모든 멍에와 압제에서 풀어주시고 속히 해방시켜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덤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적인 위기들도 돌파되도록 하실 것이다.

 

(위 글은 월간 JESUS ARMY 2019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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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경 란 목사 (예수사랑교회/탈북민) <노동착취를 당하는 줄도 모르는 북한 주민들과 생계를 위해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탈북민 여성들을 포함한 북한 여성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가로 불리고 있는 북한은 주민들을 노예로 취급하면서 강제노동에 동원시키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국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국가이며 성매매·인신매매가 횡행하는 최악의 불법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철저한 쇄국정치로 국제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존재였던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아사(大餓死) 시기에 수많은 주민들이 탈북하면서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로 불리고 있으며, 최악의 노예노동과 성매매로 미국과 유엔을 비롯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유엔의 지속적인 대북제재가 결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 특히 주민들의 강제노역과 여성들의 성적 착취 등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조사와

북한 선거공작의 위법성과 한국의 대응방향
Ⅰ. 문제의 제기 그동안 북한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대선)와 국회의원 선거(총선) 등 권력 교체기나 주요 정치일정 때마다 각종의 선거공작 혹은 선거투쟁전술을 정교하게 구사해 왔다. 선거공작은 남조선 혁명의 여건 조성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적 지평을 북한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북한이 전개하는 ‘대남 정치공작’의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이다. 이 같은 행태는 이번 제21대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대남 선거공작은 통일전선부, 정찰총국, 225국(대외연락부), 대남혁명 전위대인 반제민전, 대남선동 인터넷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등을 통해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선거공작 내지 선거투쟁전술은 합법투쟁전술인 민주연합전술, 반(半)합법투쟁전술인 친북프락션전술, 비합법투쟁전술인 선거방해전술 등으로 대별된다. 이러한 전술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직접 대남 (적대적) 선전선동을 하거나 또는 남한 내 친북세력을 사주하여 특정 정파를 비방·부정·배제 또는 특정 정파의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말도록 유도·권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선거공작은 오프라인에서의 선전선동 문건뿐만 아니라 인터넷,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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