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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김 양 건  목사

청주임마누엘감리교회

 

우리는 오늘날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때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슴을 치고 통곡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18세기 사회적 위기와 영적 위기 속에서 영국을 구원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을 고찰해 보는 것은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교회가 되며, 나아가 이 나라를 구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존 웨슬리는 18세기의 위대한 부흥운동가로서, 하나님은 그를 통해 감리교회를 세우셨다. 그는 온 세계를 자신의 교구로 삼고,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 당시 비탄과 슬픔, 부패와 빈곤, 갈등과 분열 속에서 절망에 허덕이던 영국 사회를 구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영국을 구원하셨듯이, 우리는 바로 웨슬리를 통해 오늘 우리 한국교회와 국가가 처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교회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일이다. 존 낙스(Jhon Knox)도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외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도 레위기 6장 13절에서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강력히 말씀하신다.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수년 전부터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배너를 붙여 놓고 ‘100 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라고 외치며 온 교회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기도운동을 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기도의 전통은 존 웨슬리로부터 나온 것이며 존 웨슬리의 기도 운동을 이해하려면, 모라비안 교도의 기도운동부터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0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라는 말은 알고 보니 모라비안 교도들의 100년 기도운동에서 유래된 것임을 후에 알게 되었다. 감리교회를 시작한 존 웨슬리는 이 모라비안 교도들의 100년 기도실에서 기도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 웨슬리 목사는 성령을 체험하기 이전에도 꾸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메소디스트(methodist : 규칙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것이 감리교회의 이름의 유래가 될 정도였다. 더구나 웨슬리가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를 본받아서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고,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성령 체험을 하게 됨으로써 후에 영국을 구원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감리교회의 산실은 모라비아 교회의 100년 기도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모라비안 교도가 뜨겁게 기도운동을 하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이 100년 기도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100년 동안 기도의 불을 꺼뜨리지 말자고 외쳤는데, 알고 보니 모라비안 교도의 100년 기도실을 통해서 웨슬리가 은혜 받고 감리교회를 시작하였고 사회를 구원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이 ‘100년 기도운동’을 통해서 교회를 새롭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구원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 확신한다.

 


‘100년 기도운동’은 독일의 헤른후트(Herrnhut)에서 시작되었는데, 헤른후트는 너무나 작은 마을이라 웬만한 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1700년 초 모라비아(Moravia)에서 전쟁이 있었다. 30년 동안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때 모라비아 난민들이 독일의 작은 마을 헤른후트로 피난을 하였고, 그곳에 살던 독일 귀족 니콜라스 폰 진젠돌프 백작 (Count Nicholas Von Zinzendorf)이 그들을 도와주고 그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모라비안들은 그때부터 한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헤른후트는 전 유럽에서 망명 그리스도인들이 몰려드는 피난처가 되었고, 각처에서 모이다보니 자연히 분파도 생기고 분쟁도 일어났다. 그 때 진젠돌프 백작이 그들 모두를 헤른후트에서 가까운 곳인 베르톨즈도르프(Bertholsdorf)에 있는 루터교회로 초청했다. 그리고 성찬 예배를 드렸는데 그날이 1727년 8월 13일이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 성전을 가득 메우고, 진젠돌프가 강단에 올라가 예배를 인도할 때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예배에서 기적과 표적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그들이 성전 문을 나갈 때는 그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다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목과 갈등 그리고 투쟁과 혼란이 사라졌고,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사랑, 그리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겁게 불타오르며 성전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들의 성령체험은 그 해에 곧바로 선교로 이어졌고, 진젠돌프 백작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2-30명의 독신 남자들이 해외 선교를 위해 떠났다. 1737년에는 이미 56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큰 선교단체가 되었다. 이렇게 선교사가 늘어나자 진젠돌프 백작은 중보기도 사역을 시작하였고, 전 세계에 기도 체인을 만들었다.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도 비우지 않고 교대로 기도하는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는 100년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 기도의 전통을 존 웨슬리가 받아들여서 18세기 영국과 세계를 변혁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룬 것이다. 감리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1739년부터 1791년 사이에 일어났던 영적 대각성운동을 ‘웨슬리 부흥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웨슬리 부흥운동을 학자나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성령운동’ 어떤 사람은 ‘사회개혁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웨슬리 부흥운동’은 ‘기도운동’이다.

 

웨슬리는 성직자 사무엘 웨슬리와 청교도인 수산나 사이에서 19명의 형제 중 15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국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따라 사람은 믿음과 선행에 의해서 의로워진다고 믿었고, 어머니는 청교도 교육대로 자녀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법을 훈련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부터 이미 신성클럽(Holy Club)을 구성하여 규칙적인 기도와 성경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웨슬리는 조지아 선교 실패 후 만난 모라비안 목사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 합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등의 질문을 받고 그 전에 느끼지 못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룩한 고민을 안고 살던 중 1738년 5월 24일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하게 된다. 그날 밤 그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며 변화를 일으키신다”라는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다가 갑자기 마음이 뜨 거워졌고, 구원을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것이 다 자기 중심적인 것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의 평생의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주제에서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변화되었다.

 

그는 이런 믿음을 꾸준히 유지하고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조직적으로 훈련시켜 선교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평신도를 중심으로 속회(the class meeting)와 조(band)와 특별신도회를 조직하였다. 속회는 12명의 신자로 구성하였고, 조는 6명 정도의 믿음이 확실한 신자들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특별신도회를 통해서 사유재산까지 다 하나님께 맡기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워서 사회를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 세 가지 조직은 경건 운동이며, 기도운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속회와 조는 기도의 점 조직이라 할 수 있다. 가정과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기도하는 운동이 감리교회의 속회 운동이라 볼 수 있다. 웨슬리는 타락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심과 교회 갱신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두 가지 측면에서 영성운동을 일으켰다. 첫째는 경건의 훈련이요, 둘째는 사랑의 실천이었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 같이 됨(Christlikeness)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웨슬리는 진정한 기독교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n of Christ)’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메소디스트(methodist)를 설명하는 글에서 “메소디스트란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모방하는 사람들이며, 특별히 그리스도의 정의와 자비와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고 삶을 다스려 나가는 사람”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려면, “지속적으로 영혼을 조종하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서 의와 성결과 정의와 자비와 진리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갱신하는 것이요, 모든 거룩한 기질과 하늘나라 성품을 소유하고 우리의 거룩하신 구주의 모범에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서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의 모방인 것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고 불 렀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메소디스트란 자기의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쉼 없이 기도하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바로 이러한 웨슬리의 기도 전통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에드워드 맥 켄드리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 1835-1913)는 “내가 마지막 때에 믿는 사람을 찾아보겠느냐?”는 주의 음성을 듣고 기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는 성경을 많이 읽고, 존 웨슬리 설교집을 탐독하며 매일 새벽 4시에 규칙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다. 바운즈는 “매일의 빵이 필요한 것처럼 매일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는 내일의 기도를 대신할 수 없다” 고 했는데, 이는 웨슬리로부터 받은 영향력 때문이다. 매일의 기도 습관은 기도하는 사람을 더욱 더 예수를 닮은 사람이 되게 한다. 또 매일의 기도 습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의 시간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시간의 절약이며,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아끼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영적 비밀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감리교회에서는 “기도하지 않는 자는 감리교인이 아니며,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라는 말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쉼 없이 기도하는 사람’으로서의 ‘메소디스트’,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하여 경건의 훈련(works of piety)을 하게 했 다. 웨슬리는 경건의 훈련은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이루는 일에, 즉 그리스도인 형성(Christian Formation)에 필수적이라고 하며, 신자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방편으로 기도, 자기성찰, 성경 탐구, 가족 기도회, 공중예배, 성만찬, 금식, 성도의 교제, 새벽기도회, 철야 기도회, 애찬회, 편지의 날, 영적 독서, 언약예배 등의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를 실행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실천했다.

 

웨슬리의 경건의 훈련 중 기도에 관한 훈련은 아래와 같다.

 

1. 매일 규칙적인 기도와 자기성찰

 

웨슬리는 매일 하루 여섯 번 기도와 자기성찰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기도 시간을 지키게 했다. 물론 그날그날의 일과에 따라 6회 기도는 못 할 수도 있었고, 시간이 변경되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그가 정한 규칙이 기준이 되었다. 6회의 기도는 아침 4-5시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6시, 저녁 9-10시였다. 웨슬리는 모든 메소디스트들이 이처럼 아침저녁에 규칙적인 기도와 자기성찰을 하도록 훈련시켰다. 특별히 그는 목회자들에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촉구했고, 매일의 규칙적인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의 출발이요 기본이라 했으며, 이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초기 메소디스트 영성생활의 특성은 기도와 자기성찰을 함께 실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생활에서 모든 죄악을 소멸하고 완전 성화를 이루려는 열망에서 나온 것이다. 규칙적인 기도와 자기성찰은 죄가 틈타는 시간을 주지 않고, 신자들에게도 죄 지을 틈을 주지 않을 뿐 아 니라 성화의 길을 가는데 필수적이다. 바울 사도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한 이유도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때 그리스도를 닮게 되어 죄 지을 틈과 시간을 주지 않고 거룩한 삶을 이루어 나가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

 

 

2. 매일 중보기도

 

메소디스트의 기도는 성화를 위한 기도와 중보기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엄밀히 분리해서 따질 수는 없지만, 매일 규칙적인 기도와 자기성찰은 성화를 위한 기도라고 한다면, 중보기도는 그와 별도로 혹은 함께 시행되었다. 이것은 메소디스트들이 속회나 조 같은 작은 영성모임 훈련으로 충실하게 시행하였다. 메소디스트 생활은 “중보기도를 통하여 서로를 돌보고 지원하며 서로 지켜주는(watch over)” 영적인 협력이다. 그리고 속회나 조를 통해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중 보기도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가깝게는 가정과 다음 세대, 그리고 멀리는 나라와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메소디스트 기도집

 

웨슬리는 기도의 부흥, 기도의 활성화를 위해 개인 기도집, 가족 기도집, 어린이 기도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메소디스트 기도집에는 주일 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동안의 매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가 들어있고, 개인 기도집에는 매일 자기성찰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기도집들은 웨슬리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메소디스트의 영성 훈련을 위한 실천자료로 사용되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기도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기도집의 기도문 속에 그 영성이 결정되도록 모범적인 기도문들을 실어 놓았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웨슬리가 어려서부터 자주 접한 영국국교회의 ‘공동기도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기도서에 나오는 기도문을 가지고 틀에 박힌 기도만 한 것이 아니고 기도문이 없는 자유로운 기도, 성령의 인도하심 을 따르는 기도도 적극 권장하였다. 성령체험 이후 웨슬리는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다스리심이 100% 일어나도록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살았다.

 

4. 가족 기도회

 

청교도의 강력한 전통에 영향을 받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의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웨슬리는 그러한 전통을 엡윗에서 적극 실천하였고, 엡 웟1에서 목회할 때 이것을 메소디스트의 경건생활에 적극 모방하여 적용을 했다. 당시 영국 국교회는 가족기도회를 하는 성직자가 거의 없었는데, 메소디스트는 매일 가족 기도회를 열어서 온 가정과 지역에 기도의 열기를 뜨겁게 불러일으켰다. 가족 기도회는 가족의 영성이 성화를 이루는 중대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오늘날 다음 세대와 나라를 위해서 도 중보하며 기도할 수 있는 좋은 은혜의 수단이라 생각한다. 가족기도회는 메소디스트의 좋은 신앙적 전통으로 내려왔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기도의 불이 꺼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외에도 웨슬리는 기도와 함께 성경을 탐구하고, 영적인 독서를 하며, 매주 두 번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며 기도하게 했고,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전통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한 기도를 통해 먼저는 자신을 성찰하고 성결하게 하여 날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고, 가정에 평화와 축복을, 사회를 성화시키고, 더 나아가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고 또 그것을 가르쳐왔다. 그러한 기도가 바로 웨슬리 부흥운동의 원동력이자 부흥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원인이었다. 웨슬리가 이토록 기도를 강조한 것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개인의 성화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웨슬리는 ‘성결이 행복이다(Holiness is happiness)’라고 가르쳤다.

 

둘째는 가정의 성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 당시 영국 사회가 부패하고 멸망의 위기까지 간 것은 가정의 타락과 파괴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웨슬리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정의 성화를 이루기 위해 매우 애를 썼다. 웨슬리는 가정의 파괴와 불행이 곧 사회의 파괴와 붕괴로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려는 음모들(동성애 동성혼 합법화, 젠더 이슈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이 득실한 이 시대에 기도만이 하나님이 세운 창조질서인 가정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의 성화를 위해 웨슬리의 기도 전통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회의 갱신 혹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웨슬리의 기도 운동은 영국교회를 변화시켰고,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게 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기도의 불이 다시 타오르는 제단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기도가 식었다. 기도의 불이 꺼져 있다. 우리가 기도를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아무 소용없는 바벨론 포로기를 맞게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교회가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넷째는 민족과 나라의 개혁(reform of the nation)에 기도의 목표가 있었다.

웨슬리의 기도운동은 영국인의 습관과 가치관과 생활과 도덕을 개혁하고 바른 사상과 영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영국인의 성품과 가치관이 성경적인 가치관, 하나님의 사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웨슬리 당시 영국인의 80%가 가난하고 병들어 있었으며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웨슬리의 기도운동이 그들을 바꾸어 놓았다. 기도를 통해 희망의 사람으로, 생명의 사람으로 성품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난 것 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메소디스트들에게 맡기신 위대한 사명이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나라와 이 땅은 심각한 영적 위기 가운데 있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기도의 불을 다시 붙이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의 심령의 제단마다, 가정마다. 교회의 제단마다 그 불을 다시 붙여 활활 타오르게 할 때, 하나님은 이 나라와 교회를 지켜주시고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다섯째, 웨슬리의 기도 운동을 통한 경건의 목표는 세계 복음화에 있었다.

그것을 웨슬리는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라고 불렀다. 1744년 감리교 설교자 총회에서 웨슬리는 메소디즘(감리교회)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회를 갱신하고 민족을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였다.


그렇다. 오늘 수많은 영적 도전과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과의 전쟁으로부터 한국교회와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기도에 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존 낙스가 외치지 않았던가? 지금은 제단에 무릎을 꿇을 때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주일에 오락을 금하고 사사로이 행하지 않으며 거룩한 날로 지키는 예배를 회복하는 일(사 58:13-14)과 제단에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신앙(레 6:13)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 나라와 민족은 희망이 없다.

 

나라가 망한 뒤에 가정과 교회와 무엇이 필요하던가? 지금은 자다가 깨어 기도할 때이다. 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며,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구하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불이 꺼진 예루살렘의 제단을 보고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결국은 한 나라(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던가? 우리 믿는 자들이 지금 편안하게 발을 뻗고 잘 때가 아니다. 주일에 자신을 즐겁게 하려고 놀러 다닐 때가 아니다. 예배와 기도의 불을 다시 붙여 타오르게 해야 할 때이다. 모라비안처럼 100년의 기도실을 복구하고, 웨슬리처럼 쉼 없는 기도의 불을 피워 오르게 해야 할 때이다.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레 6:12-13)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고 기도의 제단으로 돌아가자! 웨슬리의 기도운동을 본받아 다시 기도하자! 어린 시절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집에서 살 때, 아버지는 새벽마다 나가셔서 아궁이에 다시 장작을 집어넣으셨다. 새벽이 따뜻해야 하루가 따뜻하다고 하여 가족들을 위해 나무를 집어넣으시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을 치우며 새벽기도를 하러 예배당으로 가셨다. 어쩌다 부모님이 먼 곳에 출타하실 때면, 반드시 일어나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으라고 당부하셨는데, 잠에 취해 나무를 집어 넣지 못한 날에는 하루 종일 추위에 떨며 지내야 했다. 그러나 새벽이 따뜻한 날은 아무리 추위가 강해도 거뜬히 견디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웨슬리처럼 하루 여섯 번 기도하지 않더라도 아침마다 나무를 제단 위에서 태우고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에 따라 적어도 새벽에는 기도하는 전통을 다시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웨슬리도 매일 아침 그의 첫 시간을 하나님에게 드린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도 매일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나머지 시간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10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게” 할 때, 그 100년이 1000 년이 되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로 타오르게 하셔서, 그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보호해주시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웨슬리를 통해 영국을 구원하고 세계를 변화시켰던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교회마다 다시 기도 운동이 일어나 영적 부흥을 가져오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다시 깨어나 이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이다.

 

 

웨슬리가 목표한 대로 기도운동은 영혼구원 운동이며,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운동이다. 우리가 다시 제단으로 돌아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나라를 위기 속에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는 국가(민족)로 세우실 것을 믿는다.

“10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2-14)


아멘!

 

[이 글은 월간 JESUS ARMY 2019년 7월호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통일은 하나님의 주권 영역 ...22차 북한구원기도성회 셋째 날
제22차 북한구원기도성회 셋째 날 집회가 에스더기도운동(대표 이용희 교수) 주최로 11일(목)에 수원 흰돌산수양관에서 열렸다. 셋째 날은 특별히 북한구원을 위해 금식기도회로 진행되었다. 이날 첫 시간은 어제에 이어 김재동목사(하늘교회)가 ‘거룩한 대한민국(Ⅱ)’ 시간에 ‘해방.건국.호국 투쟁의 교훈’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였다. 김목사는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민족 가운데 역사하신 크신 일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서 특별히 6.25전쟁에 대해서 가르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자유’를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들이 그 ‘자유’의 소중함을 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가 초래되었다며 교회는 6.25전쟁의 역사를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두 번째 강사로 김북한목사(탈북민)가 ‘북한 선교’를 주제로 특강을 하였다. 김목사는 북한주민들이 김일성 동상 앞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했었는데 90년대 이후부터 김일성을 신처럼 믿지 않기 시작했다며 김일성 숭배가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김일성 우상을 허무는 ‘하나님의 선교’를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김목사는 북한에서 복음이 가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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