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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대세 문화상품'으로 뜬 시인 윤동주

영화 '동주' 이어 뮤지컬 '달을 쏘다'도 무대에
순수 짝사랑이 만들어낸 현상…편협함 경계해야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윤동주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표적 시인의 한 명이다.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 금지 그리고 징병제 등으로 상징되는 식민지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시인의 존재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위안이다.

프랜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시인의 이름을 부르다 자신이 끝내 그 반열에 오른 윤동주, 그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범한 재능과 시적 완성도는 물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맞은 비극적 죽음까지도 그는 순결한 젊음의 상징이 맞다. 내 경우 윤동주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새로운 길' 같은 소품도 좋아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전문)  
 

 

영화 '동주' 이후 국민시인 반열에

좋은 시인은 범작(凡作)에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법인데, 이 작품 역시 윤동주 맛이 물씬하다. 동네 시내와 숲을 가뿐하게 내딛는 젊은이의 숨결과 경쾌한 발걸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어로 채워졌으면서도 울림이 진부하지 않다. 그런 윤동주는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동주'(2016년 개봉) 이후 국민시인의 반열에 성큼 올랐다.

근현대의 어떤 시인이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과 만나던가? 그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제작된 6년 전인데, 그게 이 봄에 다시 돌아왔다. 서울예술단의 대표적 레파토리로 자리 잡은 '윤동주, 달을 쏘다'(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가 그것인데, 완성도 역시 이번이 가장 괜찮다는 중평이다.

윤동주 신화는 무대예술로 국한될 수 없다. 한 문구회사는 윤동주를 모티브로 한 문구류 세트를 내놓았는데, 앞으로 더 다양한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윤동주는 '대세 문화상품'이니까. 그 배경엔 항일 시인 윤동주가 갖고 있는 민족주의 코드를 무시 못한다. 거기에 무균질의 순수 그리고 훼손되지 않은 젊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는 빛난다.

약관 28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현대사 전개에 따른 오욕과 시비 따위로부터 그는 자유롭다. 단 몇 해만 더 살았더라도 좌우 갈등, 전쟁 속에서 그는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 현상이 모두 개운한 것만은 아니다.

그에 대한 문화 소비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일테면 근현대 문학에서 선 굵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청포도'와  '절정'의 이육사는 왜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가? 윤동주에겐 없는 고전적 품격을 선보였던 시인 조지훈도 그렇다. 윤동주 신화를 그보다 2년 전 태어나 2000년까지 살며 장수했던 미당 서정주에 대한 평가절하 풍토와 비교해보라.

미당은 작품 양과 질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지 않던가? 이게 과연 균형 잡힌 태도인가? 물론 이들은 각자가 서로 다른 별이다. 누가 높고 낮은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만 왜 우린 윤동주만을 국민 시인으로 소환하는가, 그건 문화소비의 편식이 아닌가 하는 지적일 뿐이다.
 

 

한국인 마음 깊고 커져야 할 때

왜 이런 상황일까? 윤동주 신화를 떠받치는 한국인 집단정서의 이중구조를 잘 살펴야 한다. 한국인 집단정서에는 외곬의 순수주의 지향이 똬리 틀고 있다. 일테면 조선시대 시조에서 가장 빈번한 시어가 "명월(明月)"이고, "청산(靑山)"이며, "고죽(孤竹)", "송림(松林)" 등이다. 온통 지조-절개의 상징어들인데, 한국인은 그만큼 못 말리도록 순수를 좋아한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때론 편협함으로 치닫는다. 조선조 당쟁도 그렇고, 양명학조차 사문난적으로 규정해 주자학만을 고집하는데서 보듯 우린 작은 차이나 현실에서 묻은 때를 참지 못한다. 그게 지나치게 명분에 매달리며 흑백논리에 대한 집착을 낳고 고질적인 근본주의를 키운다.

그렇다. 순수함이란 약이자 독인데, 그건 국민 심성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시시때때로 폭민(暴民)정치로 돌변하는 한국정치의 소용돌이, 지구촌 최악인 북한 전체주의의 광기도 결국엔 그 차원이다. 순수주의가 편협함으로 흐르고 그게 끝내 악성종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오해 마시라. 윤동주가 좋은 시인이 아니라는 게 내 말이 아니다.

얼굴 새하얀 소년의 이미지로는 21세기 한국인의 삶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건 다분히 문학 외적(外的)인 평가다. 오래되면 허위의식으로 발전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윤동주 현상이 2000년대 이후 두드려졌는데, 그건 그새 한국인의 마음이 협애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 저성장, 이념분쟁 격화 그리고 민족주의 성향 강화가 이때 깊숙하게 진행된 탓이다. 한국인의 마음이 이렇게 좁고 강팔라지면서 역설적으로 순수 시인 윤동주에 대한 소비를 요청한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21세기 한국인 마음이 커지고 넓어져야 할 때 왜 우린 퇴행을 하는가?

1년 전 타계한 철학자 김형효도 한국인은 보다 깊이 있는 마음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그건 고대 이후 우리문화의 숙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원효-의상-퇴계-율곡 등 한국철학 대가들의 철학이란 결국 우리의 절제되지 않은 집단정서를 큰 저수지에 모으고 이성화하는 작업"이란 것이다.

그게 맞다. 연못이 깊으면 더욱 고요해지고, 더러운 걸 자정(自淨)하는 힘도 훨씬 커지지 않을까? 좋다. 이 글은 윤동주론이면서 한국문화론이다. 한국문화가 깊고 커지면서 삶과 역사의 오욕까지 끌어안고 자정하는 힘, 역사 전체를 통찰하는 힘으로 자라나야 옳다. 그래야 한국인 마음 건강까지 담보할 수 있다는 명제를 오늘 재확인한다. /조우석 언론인
 
[본 글은 미디어펜(http://www.mediapen.com) 3월 7일자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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