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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복음통일을 위한 탈북민 교회의 역할

목사

노원한나라은혜교회

 

지금까지 남한 교회들의 북한 선교의 주역은 남한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북한 선교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들과 어떻게 손잡고 어떤 들을 진행할 있는지 분명히 있습니다.

 

1.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위치

 탈북민 목회자들의 사역 배경

1990년대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탈북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면서 북한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한 많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지대한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반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유지하거나 성장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갈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한 교회는 탈북민들이 같은 민족이기에 그냥 다가가서 따뜻한 사랑과 함께 말씀을 전해주면 쉽게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이런 낭만적인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했고, 탈북민 선교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남한 교회 들이쉽지 않다.” “ 안된다라는 공통된 인식을 하는데까지 대략 10 걸렸습니다. 이것이 남한교회의 탈북민 선교에 대한 소중한처음 경험입니다.

 

이후부터 탈북민 선교에 대한 전략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다가가 가르치려는 태도보다는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 문화를 배우고 북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해서 배우려는 분위기가 나타났습니다. 북한 선교단체들과 교회들에서 북한의 역사와, 북한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체사상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저도 여러 곳에서 주체사상을 강의하였고 주체사 믿던 사람들이 기독교를 만날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강의하였습니다. 이런 노력들에 의해 탈북민들의 내면세계가 천천히 드러났습 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웃이기에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인보다 이질적인 탈북민들의 내면세계를 알게 것입니다. 그제서야 남한 교회들은 탈북민 선교가 쉬울 같았는데 그렇게 어려웠는지 알게 되었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후 교회들은 동족이지만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남한의 교회들과 북한 선교단체들이 북한 선교에 대해 경험하고 이해한 것이 대략 여기까지입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성숙했지만 아직 북한 선교는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대략 2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만약 북한과 남한이 동일 문화권이라고 한다면 남한 교회는 남한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신앙 성장 프로그램이나 전도 프로그램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적용해도 됩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과 전혀 다른 가치관, 세계관, 생활방식을 가진 사회였기에 외국보다 문화적 이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질감은 쉽고 빠르게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탈북민 성도들이 남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위치를 손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결국 중국에서 얻은 신앙이 식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북한에서부터 지하 교인으로 살다온 신실하고 검증된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남한 교회 안에서는 변두리에서 서성이듯 신앙생활을 하는 만족할 뿐이었습니다.

 

복음이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이전 때에는 반드시복음 토착화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토착화 상대의 전통 문화를 반영해서 문화권에 맞는 적절하고 의미 있는 언어와 전달 형태를 갖춘 것을 말합니다. 남한 목회자들은 남한사회와 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복음을 적용하고 해석합니다. 남한 문화권에 토착화된 복음이 다른 문화를 가진 탈북민들에게는 소화하기 힘듭니다. 마치 주식이 밥과 된장국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빵과 우유로 양식을 공급받는 것처럼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남한 교회들에서 북한 선교는 같은 문화권이라는 오해에서 출발하였기에복음의 토착화과정이 생략되었습니 . 때문에 탈북민들이 남한 교회 내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들은 당연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거기에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미전도 종족들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습니 . 북한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김일성 종교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기독교는 하나님으로 이름만 바뀐 김일성 교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북한 람들이 기독교를 매우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있습니다.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탈북자들은 자기들이 김일성 종교에 속았고 고통을 당했다고 기억합니다.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김일성 종교를 치를 떨면서 팽개쳤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교회에 와서 자기들의 버린 신앙을 이름만 바꾸어서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거짓말에 오랫동안 속고 고통당한 사람들이 다시 거짓말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매우 들지 않는 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미전도 종족들이 겪지 못한 탈북민들만이 겪는 독특한 상황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특징으로 인해 북한 문화권에 대한 선교는 복음의 토착화를 넘어서 반드 복음의 상황화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복음의 토착화는 전통 문화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이지만복음의 상황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참고해서 복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탈북민사역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역할

북한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90년대 말에 있었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기점으로 앞과 뒤가 극단적으로 달라집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 북한 사회는 이념중심 사회였습니다. 주체사상을 정신적 지주로 하여 김일성을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던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 이념 앞에서 충실했던 사람들은 가난과 굶주림, 대량 아사로 인해 가족이 해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념을 일찍이 포기한 이웃 중국은 비교할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북한 사람들은 이념 중심적인 삶을 철저히 버리고 이익 중심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상 없이는 있어도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이 이들이 피눈물 흘리며 얻은 교훈입니다. 때문에 처음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들은 정신적인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들에만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 하지만 이익 중심의 삶은 북한 사람들에게 경험 없고 준비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삶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그렇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공통적인 부작용은 정신의 부재에 따른 마음의 공허와 허무, 삶의 무의미였습니다. 육체적 배고픔은 해결했지만 이보다 힘든 마음의 굶주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의 공백에서 오는 공허와 허무를 해결할 있는 양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방법에 대해서 탈북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돈을 마음의 기갈을 해결하려고 단시간 내에 엉뚱한 곳에 탕진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탈북민들에게 복음이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도 이미 속았다고 생각했던 김일성 종교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는 복음을 들고 접근해야만 합니다. 남한 출신 목회자들은 탈북민들의 이런 정서적인 면에 대해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때문에 계속해서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탈북민 목회자들은 이런 면에서 이미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들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겪었고 복음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굶주림을 벌써 해결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 . 어떻게 아파하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어떻게 주린 마음을 채워야 하는지 앞서 경험한 선구자들입니다.

 

저는 최근에 의미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간경화 말기라는 질병을 앓다가 치료를 통해서 회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의사가 아닌데도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찾아와 진지하게 조언을 구했고 필자가 하는 말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탈북민에게 있어서 탈북민 목회자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같은 질병을 가졌지만 먼저 치유 받은 사람들입니다. 탈북민 목회자들은 이들에게 옆에 있는, 믿을 있는 치유자들입니다. 어디로 가서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이미 경험했고 방법을 아는 사람들입 니다. 때문에 탈북민 교회를 찾아 온 탈북민들에게는 기대감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우리 말을 들어줄 있을 거야. 사람은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할 있을 거야. 사람은 나의 상처를 해결할 비법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탈북민 목회자의 사역 효과

저는 2002년에 한국에 입국하여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남한 교회에서 8년간의 목회 수련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2 전부터 서울시 노원지역에서 탈북민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노원구는 가구 이상의 탈북민들이 있습니다. 노원구는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에 자금력을 갖춘 중대형 교회들이 많고 교회들에서 오래 전부터 지역 탈북민들을 향한 다양한 선교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탈북민 교회를 개척하자 탈북민들이 남한의 궁전 같은 회들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작고 가난한 탈북민 개척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난 효과는 탈북민 성도들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남한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하겠다는 식이었고 손님 같은 태도였지만 탈북민 교회에 와서는 배워야 한다는 진지한 태도들이었습니다. 현재 저의 교회는 주일날 오전 오후 합해서 성경을 배우는 시간이 도합 4시간 정도입니다. 장시간의 성경공부는 목회자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탈북민 성도들의 참석률이 90% 이상입니다. 말씀이 살아나니 친교도 노력 들이지 않고 성공했습니다. 탈북민들에게 저희 교회는 행사가 있을 때만 나가는 장소가 아니라 심심하면 나가는 놀이터로 변했습니다. 주중에 서로 시간이 생기면 교회로 불러내서 고향 음식들을 해먹고 함께 자고 뒹굽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웃들이 생기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 시작하자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단한 삶의 상처들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울면서 속을 털어 놓기 시작했고 점점 밝아지고 명랑해졌습니다.

 

탈북민들은 오랫동안 독재사회에 억눌려 살아왔기에 자존심들이 강하고 지시받고 억압받는 분위기에 민감합니다. 때문에 저는 교회 유지에 필요한 봉사들을 스스로 자원해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분위기가 성숙해지자 원했던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제일 먼저 찬양 봉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찬양반주기로 하던 찬양이 사라지고 스스로 엉터리 찬양 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서툴지만 그대로 예배에 사용했고 점점 성숙해져 갑니다. 뒤이어 교회 청소에도 자원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자원해서 하는 일이다 보니 굴곡이 심했지만 되면 내버려 두었습니다. 시간 지나면서 점차 교회의 틀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십일조에 동참했고 헌금 액수는 느리지만 증가했습니다. 목회자에 대한 신뢰는 곧바로 상담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탈북민 성도들이 마음의 상처들과 애로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고 목회자의 조언에 진지하게 반응하더니 곧바 목회자의 치유 경험을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유의 성과는 명했습니다. 우울하고 어두웠던 얼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밝아지 수동적인 자세들이 점점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자세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 분위기, 말씀 이해하기, 찬양하기, 성경배우기, 헌금하기, 봉사하기와 같은 각종 열매들이 남한 교회에서는 매우 지대한 노력을 들여야만 이루어지는 성과들입니다. 그러나 탈북민 교회는 매우 빨리, 쉽게 형성되고 익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저도 교회를 시작하면서 4~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던 열매들이 너무 빨리 나오는 것에 내심 놀랄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성경공부가 익숙해지고 계속 진행되자 성도들의 삶이 변하는 것도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증거로 서로 다툼이 매우 잦았던 신혼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기 시작했고 신앙이 주는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신혼부부를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그것에 감명을 받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목회자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인 변화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뒤이어 놀랄만한 열매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배우던 탈북민들 중에서 결단하고 신학교를 가기로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올해 5명의 탈북민들이 장로회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2명의 탈북민들이 내년에 장신대학교에 입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대할 없었던 결과들이 나온 것입니다. 이는 탈북민 목회자의 탈북민 사역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이고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문화권에 대한토착화”, “상황화 대한 수련을 거치지 못한 목회자의 사역에서도 이렇게 빨리 긍정적인 열매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극복해야 문제

탈북민들은 생존을 위한 거의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의 현장에 떠밀려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정신세계가 붕괴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물질적인 문제들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무서운 가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대다수의 탈북민들이 정신의 빈곤과 물질의 빈곤의 방향에서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시달리다 삶이 붕괴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기에다 자기 생존도 버거운 상태이지만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자식 가족들의 생계도 도와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시달리다 정상적인 삶이 이미 붕괴되었거나 붕괴 직전에 목회자를 찾아와 구원을 호소할 , 탈북민 목회자는 무기력해집니다. 마치 내과 전문의사가 심각한 내상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끔찍한 외상을 당한 환자를 혼자서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이런 경우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고 해도 그는 속수무책이 것입니다. 절대로 혼자 해결할 없는 상황들을 외롭게 묵묵히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탈북민 목회자들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들의 유능한 보다는 무능한 점만이 드러납니다. 때문에 여태껏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들이 자기 가치들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2.통일 선교 사역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역할

저의 교회에는 탈북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룹은 문화적으로 동질감도 있지만 이질감도 있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에 오래되었고 모범적으로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들에게도 이질감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와 고양이처럼 비슷한데 뚜렷하게 달랐습니다. 이런 현상이 비단 교회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지적하면서 심층적인 이유를 연구한 많은 학술 자료들이 공개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현상이 작은 교회 안에 국한된 현상이겠지만 앞으로 통일 선교 시대에는 범위에서 일어난다고 보여집니다.

 

교회만은 순수한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어 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인위적인 장치들을 만들었습니다.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의 관계를 육수준과 경제력을 무시하고 무조건 수평관계로 설정했고 교회운영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는 같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질감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단시간 내에 쉽게 해소될 있다는 확신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계기가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들의 특징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이민사회가 차별과 이질감은 심한 경우에는 3대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탈북민들의 경우 이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비슷한 면도 많이 있었습니다. 문에 3대까지 간다는 비극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시일 내에 빠르게 해결된다고는 생각할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무적인 현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직장이나 일반적인 삶의 자리에서는 서로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앙 안에서는 이런 이질감이 빠르게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너와 나의 본질적인 문제들이 동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일한 문제들이 동일한 말씀과 방법으로 소가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분명하게 살아났습니다.

 

탈북민 목회자는 북한 문화에만 익숙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남한 문화에도 익숙해진 사람들입니다. 남북한 양측 문화에 동시적으로 복음 토착화와 상황화를 이룬 독특한 상태입니다. 때문에 탈북민 목회자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북한 문화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남한 문화를 가진 사람도 동시에 흡수하기에 부담 없는 아주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탈북민 교회이지만 사람들도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우리가 새롭게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하나 되는 다른 힘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에서 나오는 힘이었습니다. 탈북민이 남한사람처럼 변화되어 하나 되는 것도 좋고, 반대로 남한사람이 탈북민처럼 변화되어 하나 되는 방법도 좋지만, 3 영역인 신앙 안에서 하나 되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 . 내가 너로 바뀌는 것보다, 네가 나로 바뀌는 것보다, 새로운 영역인 예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보다 빠르고 효과적이었고 오래간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다른 방식의 하나 , 신앙 안에서의 하나 있어서 탈북민 목회자의 역할은 분명히 소중합니다.

 

문화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충돌이 교회 안에 종종 있었습니다. 대개 이런 충돌이 일어날 때면 탈북민 목회자는 가운데 끼어 있었습 니다. 직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탈북민 목회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문화 정서적인 위치 때문이었습니 . 탈북민 목회자는 다년간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한인들 속에 섞여 사역 하다 보니 남한의 문화를 많이 접해 보았고 익숙합니다. 이로부터 오는 이해력은 그렇지 못한 탈북민들 보다는 분명히 큽니다. 이러한 문화 정서적인 이유로 인해 탈북민 목회자는 양측 모두를 심도 있게 들여다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탈북민 목회자가 중간자 역할에 더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겹쳐질 놀라운 능력들이 일어남을 종종 경험합니다. 절대로 해결될 없어 보이던 문제들이 은혜롭게 해결되었습니다. 이런 위치와 경험들은 앞으로 민족의 거국적인 화합을 이루어 나갈 분명히 촉매제와 같은 역할을 있으며 안에서 많은 지혜들이 나올 있을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옆에 조용히 나타나 그저 한쪽 모퉁이에 조심히 서서 말없이 자기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는 탈북민 목회자들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상 무능력하고 무식한 소외된 일꾼들, 없어도 되는 일꾼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나라의 복음화와 통일 우리 민족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준비된 부류의 일꾼들입니다. 이제 이들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려 새로운 연합과 협력으로 사역들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국교회, 왜 기독교 통일 교육이 필요한가?
임 창 호 교수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1. 들어가면서 철학자 칸트는 그의 교육학강의(1801) 첫 페이지에서 “인간은 교육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기대되는 인간상이 있다면 사람을 교육해야 하며, 기대되는 사회공동체상이 있다면 역시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이상과 목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육 없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시키거나 발전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동시에 교육은 미래를 향한 보험이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하신 사역은 12명의 제자를 모아 3년간 교육하신 일이다. 그들이 70명의 제자로 확장되었고, 3,000명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초석이 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선교명령이라기보다, 사실 교육명령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 가운데 주동사가 “제자 삼으라”라는 교육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 민족의 회복을 준비하자
강 철 호 목사 북한기독교총연합회장, 새터교회할렐루야! 2018년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이 땅에 평화의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온 남과 북이 진정한 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분단 속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통일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평화에 들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평화와 함께 복음통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외쳐온 평화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북민의 한사람으로 대한민국으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자유가 나를 평화롭게 함을 신앙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시편 126편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은혜를 받아 안고 얼마나 기뻤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아마도 오늘 이들의 이 고백을 저 같은 탈북민들이 제일 실감을 할 겁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인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복음통일을 위한 탈북민 교회의 역할
김 성 근 목사 노원한나라은혜교회지금까지 남한 교회들의 북한 선교의 주역은 남한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북한 선교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들과 어떻게 손잡고 어떤 일들을 진행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1.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위치탈북민 목회자들의 사역 배경 1990년대 말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탈북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면서 북한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한 많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지대한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반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유지하거나 성장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서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갈 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한 교회는 탈북민들이 같은 민족이기에 그

“한국 정부 언론 자유 중대 위반”
정부가 탈북민 출신 기자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국제적인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제언론인협회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 위반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고, 유엔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VOA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인협회(IPI) 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성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라비 프라사드 국제언론인협회 국장은 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북민 출신 기자를 지난 15일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북한이나 남북대화에 비판적인 언론들을 억누르려는 조치"라며 "민주사회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라비 프라사드 국장은 "이번 사태는 앞으로 다른 취재보도에도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내일부터 정부와 재계의 부패에 대한 취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또한 시나 폴슨 유엔 인권 서울사무소장도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시나 폴슨은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고 모든 사안에 대한 언론 취재는 허용되어야 한다. 모든 남북 간 정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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