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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디'라는 함석헌 다시 보기

반공주의자에서 70년대 이후 운동권의 대부로 변신, 낭만적 성향으로 현실 포착 실패…여자문제도 결함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11.12 22:15:52

함석헌(1901~89)은 대중적 인물은 아니지만, 좌파-좌익의 정신적 스승이다. 의식화의 스승 리영희가 이론적 대부라면, 함석헌은 정신적 어른인 셈이다. 지금 좌파-좌익의 뿌리는 70년대 재야세력인데, 함석헌은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와 함께 그 이전부터 그 그룹의 구심점이었다.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노장사상-인도철학 등에 두루 밝고 저술을 남겼으니 박람강기(博覽强記)가 대단했다. 개인잡지 '씨알의 소리' 발행에서 확인되듯 그의 씨알사상은 좌파 민중주의에 영감을 줬고, 평화 사상도 함석헌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런 그는 1979년과 85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차례 추천되면서 '한국의 간디',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통했다.

그런가 하면 장외(場外)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다. 5·16 직후 박정희의 권위에 첫 도전했던 게 그다. 그게 '5·16을 어떻게 볼까'란 글인데, 이전 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란 글로 이승만에 맞서기도 했다. 그 이전 신부 윤형중과의 '사상계' 논쟁으로 그는 이미 영웅이었다.

고(故)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도 함석헌 일화가 나온다. 자신이 신문 발행인이던 63년 한여름 땡볕에 편집국장 유건호와 서울 원효로 함석헌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 원고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글이 박정희를 맹비난한 '삼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였는데 장안에 화제였고 오랫동안 음미됐다. 

그런 인연 이후 같은 이북 출신인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와도 잘 어울린 건 당연했을까? 그러던 그가 80년 서울의 봄 때는 운동권과 함께 선우휘 화형식에 앞장서는 깜짝 표변을 했다. 하도 어이없어서 방우영이 항의했다. 함석헌 왈 "주변에서 하기에 따라갔을 뿐이다." 

너무도 무책임한 변명에 맥이 탁 풀렸다고 방우영은 회고했는데, 함석헌은 그런 두 얼굴도 가졌다. 본래 그는 반공주의자. 해방되던 해 12월 소련군정에 반기를 든 신의주 반공의거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탄압을 받았다. 그 일로 월남했던 함석헌은 반 박정희를 명분으로 이른바 재야세력의 구심점이 되고 끝내 운동권의 대부로 바뀌었는데, 이게 무얼 뜻할까?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이미 낡은 책

그게 한국 지식사회의 비극이다. 즉 사회변화에 따른 이념 분화만은 아니다. 본래 반공에 합의해 건국에 합류했던 지식인들이 반독재 운동을 한다며 70년대 후반 이후 좌파로 변신한다. 그게 80년대 운동권 시대로 연결되지만, 최근엔 그들을 한국우익의 기원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즉 이승만 박정희를 비정통으로 격하한 채 장중하 함석헌을 앞세우니 노골적인 대한민국사 도둑질인데, 그런 책이 <대한민국의 설계자들: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김건우 지음)이다. 그걸 조선일보까지 2017년의 좋은 책으로 선정해 부화뇌동했다. 직후 대한민국현대사박물관은 기관지 <현대사광장>을 통해 이 책을 띄웠다. 함석헌은 그만큼 좌파의 우상이다.

우파에서도 종종 함석헌의 지적 권위에 의지한다. 최근 함석헌이 대중 앞에 거론된 계기는 뜻밖에도 4년 전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 파문 당시였다.  KBS가 악마의 편집을 했던 게 문창극의 교회 강연 동영상인데, 강연 내용은 함석헌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문창극이 "일제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 KBS의 왜곡인데, 우리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규정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다고 본 건 본래 함석헌 역사관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재확인하지만 함석헌도 그렇고, 그 책 역시 과대평가됐다. 우선 함석헌. 그는 흰수염에 도포자락 휘날리고 다니던 종교사상가일뿐, 그 이상은 아니다.

때문에 역사인식도 낡고 낡았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경우 일제시대에 쓰여졌다. 32~33년 잡지 <성서조선>에 연재됐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가 모태다. 개정본은 65년 나왔는데, 제목 바꾸고 6.25 대목을 수록했을 뿐 큰 틀은 그대로다. 이게 무얼 뜻할까?

그 책 개정본 발간 직후 빅뱅했던 대한민국 현대사는 몽땅 배제돼 있다는 얘기다. 식민지 체험, 분단-전쟁을 뚫고 박정희의 대한민국이 20세기 신데렐라 국가로 성큼 떠올랐던 과정을 그 책이 알 리 없다. 이런 역사의 대반전을 함석헌은 개정본을 펴낼 때 채 맛도 못 봤지만, 이후 34년을 더 살았어도 그 기적의 역사를 가슴에 받아들인 바 없다. 

그게 진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이 낡은 책에 공감할까. 함석헌 글의 매력이 그만큼 크다.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실패한 역사로 보는 좌파의 반(反)대한민국 심리와 통한다. 분단의 고난을  극복하자는 함석헌 식 통일지상주의 주술(呪術)도 큰 요인이다.

박정희 기적의 역사가 현실 속의 승리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이라면, 함석헌 식 고난의 역사관은 한 책상물림의 종교적 몽환(夢幻)이 전부다. 하늘과 땅 차이가 분명한데도 여전히 함석헌에 매달리고 그를 우상으로 섬기는 게 한국의 기이한 풍토다. 그게 이성으로 바라본 함석헌의 한계인데, 그것 말고 또 있다. 그의 사생활에 결함이 있다.

중년 이후 지속된 여자 문제다. 그 문제로 스승인 다석 류영모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자초지종을 밝힌 외조카 조순명의 책 <거짓예언자>(82년 초판, 86년 개정본)도 있다. 함석헌이 당시 독일 유학 중인 신학자 안병무에게 "여성문제에서 잘못했다"는 고백까지 했으니 대부분 사실이다.

  

박정희가 역사 승리자, 함석헌은 몽유병자

김용준(91, 전 고려대 교수, 도올 김용옥의 큰형)도 평전 <내가 본 함석헌>(2006년)에서 생전의 함석헌이 그 일을 오래 자책했다고 밝히지만, 희한한 게 있다. 함석헌 추종자들은 여자 스캔들 축소-은폐에 급급한 점이다. 김용준도 <거짓예언자>가 나왔을 때 젊은이 추종자들이 불매운동으로 그 책을 서점에서 축출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레 밝힐 정도다.

필자의 경우 90년대 말 기자 시절 조순명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우연찮게 함석헌을 다룬 기사를 썼더니 그가 "내 책을 주기 위해 찾아왔다"며 신문사로 찾아왔다. 그럼 뭐가 진실인가? 분명한 건 도덕을 잣대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변명 따윈 함석헌에겐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50년대 '사상계' 논쟁 이후 함석헌은 교회를 비판하고 세상을 질타했는데, 윤리 도덕이 그의 잣대였다. 그렇다. 좌파 특유의 위선자의 모습을 나는 함석헌에게서 본다. 그런 함석헌을 겨레의 예언자, 평화의 사도로 과대평가하는 추종자 무리 역시 내 눈엔 초록은 동색으로 보인다. 함석헌을 다룬 무수한 책들이 등장했지만, 온전한 건 없거나 드물다고 나는 단정한다.

그럼 함석헌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용준의 표현은 함석헌을 정신적 낭만주의자라고 규정하지만, 그것도 과대포장이다. 그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몰랐다. 역사관도 기독교 사상을 변용해 옛 한국역사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현대사에서의 역할은 비판적 지식인의 한 명이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치적 지향점은 반 이승만의 4.19에 빙의된 채 거기에서 딱 멈췄다. 반독재에 매몰돼 현대사의 큰 흐름을 보는데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권과도 넘나들었다. 글을 다 쓸 무렵 시인 고은이 함석헌을 찬양한 70년대 옛글을 발견했다. 그 느끼한 장광설을 발췌한다. 여전히 함석헌이 흰수염의 예언자로 보이는가를 오늘 당신에게 묻는다.

"(일제하) 오산학교 시절 이미 선생님은 우리 겨레의 예언자로 나섰습니다. …(50년대) '사상계'에서 선생님은 높은 영혼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세상을 천년 묵은 가죽 채찍으로, 의인(義人)되어 깨워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머리 좋고 말 좋고 인물 좋으신 선생님. 선생님은 울라 하십니다. 그러다가 노래하라 하십니다. 분노하라 하십니다. 그러다가 그것 다 했으면 사랑하라 하십니다. 동체대비로 사랑하라 하십니다…"('흰머리, 흰수염의 예언자') /조우석 언론인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11월 4일자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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