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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44년 전 박정희·김수환의 청와대 논쟁

"착취다", "아니다" 70년대 노동현실 둘러싸고 설전, 역사는 박정희의 승리 증명…우상과 이성 구분할 때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오래 굳어진 신념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내 글은 신성불가침의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의식화의 스승 리영희는 <우상과 이성>(1977년) 서문에서 그런 요지로 말했는데, 이후 40여년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좌파가 문화권력-지식권력을 쥐었고, 그 바람에 옛 우상을 깨려했던 이성이 새로운 우상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군림하고 있다. 좌파의 정신적 대부 함석헌, 노동운동의 성자(聖者) 반열의 전태일, 그의 평전을 쓴 민변 창립자 조영래, 문화권력의 황제 백낙청 등은 그 일부다. 건강한 사회, 다양성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우상의 빛과 그늘은 구분해야 옳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함석헌 신화를 깨는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지만,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려 한다. 첫 논의가 미진했던 탓인데 차제에 지금까지 쟁점으로 남아있는 노동문제를 점검해보며, 그걸 둘러싼 박정희 대통령과 김 추기경 사이의 74년 청와대 논쟁도 조명해볼까 한다.

지난 주 밝혔듯 67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은 한국가톨릭에게 중요하다. 가톨릭이 대사회적 발언을 한 첫 계기이고, 당시 김 추기경이 가농(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 주교의 직함으로 노동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즉 심도직물이란 회사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 움직임을 부당한 방식으로 막지 말라고 주교단 성명을 통해 밝혔다.

당혹스러운 건 김 추기경의 현대사 인식이다. 그의 자서전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런 한계가 속속 드러난다. 60년대 당시 막 시작됐던 산업화가 "농촌 희생을 전제로 한 정책"이며, "상상할 수도 없는 노동 탄압"이 있었다고 단정하는 건 일례다. 한강의 기적이 "권력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란 식의 표현이 자서전을 관통한다.

약자를 품어주려는 종교 지도자의 태도이겠지만, 사안이 간단치 않다. 심도직물 사건은 3년 뒤에 발생한 전태일 분신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게 우선 궁금하다. 전태일 사건에 가톨릭이 개입한 증거는 없지만, 개신교 쪽에서 움직인 건 거의 분명하다. 그러 이유로 심도직물 사건은 평화시장 전태일의 귀에 즉각 들어왔을 것이고, 분신에도 일정한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런 추정은 60~70년대 노동운동에서 가농과 도산(도시산업선교회) 등 기독교 좌파의 입김이 막강했다는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꾸며진 얘기이며, 분신 사건 전후 전태일에겐 기독교 좌파 운동권이 깊숙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게 류석춘 교수의 책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기파랑) 곳곳에 등장한다. 어쨌거나 노동운동사에서 가톨릭의 입김은 무시 못하지만, 그래서 되물어야 한다. 심도직물 노동자나 전태일 등 60~70년대 노동자들이 김 추기경의 말대로 희생을 당했고 "상상 못할 노동 탄압"의 대상이었나? 이 질문은 가톨릭의 현실 개입이 정당했던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김 추기경의 행보가 올바른 것인지, 노동입국의 꿈을 향해 돌진했던 박정희가 옳았는지 여부도 판단할 수 있다. 다행이 우리 손엔 데이터가 있다. 그걸 근로자 전태일에 국한해 보자. 16살 나이학력도 없이 직장을 찾는 그에게 당시 사회는 일자리를 줬다.

평화시장 재단사 취직 뒤 분신자살 6년 동안 그의 월급은 무려 15배 올랐다. 그건 당시 평균소득(1인당 국내총생산)의 3.2배에 해당하는데, 그런 소득은 약간의 편차를 고려해도 다른 노동자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강화도 심도직물 사람들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이게 뭘 말해주는가?

"상상 못할 노동 탄압"의 박정희 시절이 외려 유토피아였다는 뜻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노동자 보호 장치가 허술한 건 당시 시대의 한계일 뿐, 그게 박정희 시절 매도의 근거가 될 순 없다. 외려 정반대다. 대졸 백수가 수두룩하고, 취업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 현 상황에 비춰보면 60~70년대는 가히 천국이었다. 민간 부문만이 아니라 공무원 봉급도 초고속 인상됐다.

공무원 처우개선 5개년계획에 따라 1966년 30% 인상을 시작으로 67년 23%, 68년 30%, 69년 30%, 70년 20% 인상을 단행했다. 당시 한국사회 전체가 얼마나 활력 넘쳤던가를 보여준다. 이런 객관적 데이터 앞에 김 추기경의 노동관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정치-종교 갈등이 빚어졌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가농과 도산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게 대통령과 추기경 사이의 설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종교가 왜 노동문제에 개입합니까? 개신교의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개입하면 공장이 도산한다고 아우성입니다."(박정희)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김수환)

거의 반세기 전 가시 돋친 대화는 지금 보면 누가 옳았는지가 너무도 분명하다. 지난 글에서 나는 밝혔다. 박정희 시절은 연평균 9%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19배 증가했다. 성장속도만이 아니고 질과 양을 함께 달성했는데,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됐다.

그래서 진정 위대한 동반성장의 시대였다. 그걸 김 추기경은 몰랐으며 박정희의 드라이브를 방해했다. 그런데도 지금 평가는 완전 딴판이다. 한강의 기적이 "권력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라고 단정하던 김수환 추기경은 추앙 받고, 박정희 대통령은 노동자 착취는 물론 정경유착과 독재의 대명사로 취급 받는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김 추기경에 대한 호평은 명분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우상으로 발전하고, 현실인식을 막는 요인이 된다. 차제에 보다 냉정하게 말하자. 김 추기경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김영삼의 경우 민주화 대통령으로 일부 추앙 받지만, 실제론 좌파운동권 등장을 위한 숙주(宿主)였다. 민주화 세력으로 위장한 운동권이 청와대를 포함한 제도권에 대거 유입된 배경에 김영삼이 있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즉 그는 좌파에 레드 카펫을 깔아줬다. 그런 부류는 좌익에 관용적인 위선적 리버럴리스트로 분류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송구스러운 지적이지만, 김 추기경도 그런 혐의가 없지 않다. 그러니까 74년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됐을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지금 정의구현사제단 때문에 가톨릭이 몸살을 앓지만, 이런 사태의 원인제공자 중에 김 추기경 이름이 빠질 수 없다. 우상과 이성을 구분하는 분별지(分別智)를 지금이라도 발휘할 필요성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조우석 언론인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10월 30일자 글을 전재했습니다.]

한국교회, 왜 기독교 통일 교육이 필요한가?
임 창 호 교수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1. 들어가면서 철학자 칸트는 그의 교육학강의(1801) 첫 페이지에서 “인간은 교육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기대되는 인간상이 있다면 사람을 교육해야 하며, 기대되는 사회공동체상이 있다면 역시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이상과 목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육 없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시키거나 발전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동시에 교육은 미래를 향한 보험이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하신 사역은 12명의 제자를 모아 3년간 교육하신 일이다. 그들이 70명의 제자로 확장되었고, 3,000명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초석이 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선교명령이라기보다, 사실 교육명령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 가운데 주동사가 “제자 삼으라”라는 교육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 민족의 회복을 준비하자
강 철 호 목사 북한기독교총연합회장, 새터교회할렐루야! 2018년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이 땅에 평화의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온 남과 북이 진정한 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분단 속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통일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평화에 들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평화와 함께 복음통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외쳐온 평화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북민의 한사람으로 대한민국으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자유가 나를 평화롭게 함을 신앙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시편 126편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은혜를 받아 안고 얼마나 기뻤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아마도 오늘 이들의 이 고백을 저 같은 탈북민들이 제일 실감을 할 겁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인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복음통일을 위한 탈북민 교회의 역할
김 성 근 목사 노원한나라은혜교회지금까지 남한 교회들의 북한 선교의 주역은 남한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북한 선교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들과 어떻게 손잡고 어떤 일들을 진행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1.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위치탈북민 목회자들의 사역 배경 1990년대 말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탈북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면서 북한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한 많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지대한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반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유지하거나 성장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서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갈 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한 교회는 탈북민들이 같은 민족이기에 그

“한국 정부 언론 자유 중대 위반”
정부가 탈북민 출신 기자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국제적인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제언론인협회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 위반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고, 유엔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VOA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인협회(IPI) 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성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라비 프라사드 국제언론인협회 국장은 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북민 출신 기자를 지난 15일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북한이나 남북대화에 비판적인 언론들을 억누르려는 조치"라며 "민주사회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라비 프라사드 국장은 "이번 사태는 앞으로 다른 취재보도에도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내일부터 정부와 재계의 부패에 대한 취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또한 시나 폴슨 유엔 인권 서울사무소장도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시나 폴슨은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고 모든 사안에 대한 언론 취재는 허용되어야 한다. 모든 남북 간 정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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