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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대한민국이 아프지만, 기독교는 더 아프다

교회공동화 20년에 이념 오염 돌이키기 힘든 수준, 종교 탄압 논란도 점화…세상이 교회 걱정하는 시대

기독교가 위기다. 지난 5월 법무부 인권국장이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는 폭언이 심상찮다. 정부가 반기독교 선전에 나선 모양새 때문인데, 기독교 단체 '에스더기도모임'을 가짜뉴스 공장으로 몰아가는 한겨레의 공세도 사납다. 그런 까닭으로 기독교 탄압 얘기가 나오는 판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문제로 가톨릭이 출렁댄다. 김정은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자는 건가, 북한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인가? 실은 개신교-가톨릭 모두 좌익이념에 오염된 지 오래라서 문제다. 대한민국이 아픈데 기독교는 더 아픈 지금의  현주소를 두 차례 칼럼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지식사회 논쟁사에서 단연 전설이 1950년대 <사상계> 지면에서 이뤄진 함석헌-윤형중 신부 사이의 설전이다. 잡지 발행인 장준하의 증언대로 바로 그 논쟁 이후 비로소 <사상계>는 "우리나라 전 지식층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은 잡지로 자리를 잡게 됐다." 치솟는 대중적 인기 때문에 <사상계>는 당시 판매부수 4만 부를 육박했을 정도다.

함석헌-윤형중 신부 논쟁은 훗날 언론인 손세일이 엮은 <한국논쟁사>(전5권, 1978년)의 앞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하는데, 첫 글이 56년 1월 호에 실린 함석헌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당시 주류종교로 떠오른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내용인데, 첫 문장이 이렇다.

50년대 함석헌-윤형중 논쟁의 빛과 그늘

"여기 기독교라 하는 것은 천주교나 개신교의 여러 파를 구별할 것 없이 다 한데 넣은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은 무교회주의자 즉 퀘이커교도라는 걸 전제로 했다. 제도권 교회에 안 나가면서도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교인, 뭐 그런 뜻이다. 그때 첫 글에서 함석헌은 교회 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질타하는 걸로 포문을 연다.

고려시대에 절간이, 조선시대에 서원이 성하면서 나라가 망한 것만 봐도 그렇다며 기독교의 이상 번창을 비꼬았다. 실은 그 글은 이름을 가리면 누구의 글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 먹물의 글처럼 얌전하게 썼는데, 함석헌 특유의 구어체 스타일이 드러나고 대중 관심이 폭발한 게 그 직후다.

이듬해 쓴 '할 말이 있다'(3월 호)와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6월 호) 두 꼭지가 화제였다. 그 새 윤형중은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 등 반박을 두 번 했다. 논쟁 이후 60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 당시 글을 읽으면 무덤덤하고 별 내용이 없다. 해방 10여년인데 사회가 이 지경인 건 교회 탓이라는 함석헌의 비판은 우선 너무 포괄적이다.

세상 구원의 책임이 있고, 그래도 말이 통할 법한 집단이 교회라서 거길 향한 꾸짖음인데, 너무 도덕주의적 접근이다. 그리고 가톨릭 입장을 변호한 윤형중은 글 솜씨와 논리에서 함석헌에 밀렸으니 요란했던 논쟁에 비해 한국사회가 공유할 생산적인 그 무엇은 신통한 게 없었다.   

인정할만한 건 그 글로 <사상계> 중심의 함석헌-장준하 등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 태동됐다는 시대사적 의미 정도다. 그걸 좌빨 지식인들은 거품을 물겠지만 건국-부국의 대한민국사를 소중히 생각하는 우리로선 심드렁한 얘기다. 사실 함석헌-장준하는 50년대 반 이승만 그룹을 형성했다가 60~70년대 반 박정희 구호 속에서 이른바 재야세력을 형성한 구심점이다.

그들이 오늘의 운동권-좌파로 이어졌다는 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그리고 함석헌 자체가 도덕적으로 마냥 떳떳했나? 훗날 얘기이지만 여자 스캔들 때문에 그가 스승 류영모로부터 징계 받은 건 세상이 다 안다. 결정적으로 함석헌은 기독교 성장의 정치문화사적 배경을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몰랐다.

그가 교회 수 증가를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질타했지만, 그것부터 헛소리였다. 당시 기독교 인구(개신교+가톨릭)는 100만 명대였다. 이승만이 집권했던 50년대 10년 동안에 기독교 인구는 두 배(85만 명에서 160만 명으로)로 증가했다. 표면적으로 어지러웠을지는 몰라도 그게 새나라 건설의 동력이었다. 그런 흐름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근현대사의 뼈대

박정희가 통치했던 60년대 기독교 인구는 다시 두 배(160만 명이 304만 명으로)가 됐고, 70년대에 또 다시 두 배에 도달했다. 70년대 말엔 신자 600만 명에 육박했던 것인데, 교회 성장과 대한민국 빅뱅은 함께 이뤄졌다. 즉 한국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근현대사의 뼈대다. 그게 포인트다.

필자는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점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 포괄적으로 말해 조선조의 유교질서를 기독교 문명으로 깨는 위대한 실험에 성공했던 이승만,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박정희의 노력도 기독교의 정신혁명 속에서 가능했다. 대한민국 건국은 정치체제-이념을 떠나 문명의 계절 변화를 알렸다. 그게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의 전환이다.

이 문명사적 흐름이 50년대 그 시절에 잘 보일 리 없었다. 함석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아니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게 이승만이다. 그는 명저 <한국교회핍박> (1913년 저술)에서 "성경 안에 자유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걸로 한국혁명의 기초를 잡자"는 담대한 비전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그 비전이 구현된 과정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당대 사람들에겐 교회 증가에 따르는 부작용만이 눈에 들어오고 그게 도덕적 타락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50년대 <사상계> 논쟁은 그런 지엽말단을 둘러싼 시비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함석헌의 한계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위대한 역설을 상징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바뀌었다.

기독교가 위기다. 세계선교사에 유례없던 성장세의 한국교회는 지금 망가졌다. 성장은커녕 교회공동화에 허덕인다. '1000만 성도'를 호언하는 개신교의 경우 절반 이상이 냉담자다. 가톨릭은 등록 신자 574만 명 중 80% 전후한 463만 명이 냉담자인데 좌익 사제들의 언동에 등 돌린 게 큰 이유다.

목회자만 그런 게 아니고 개신교-가톨릭 내부의 신자들까지 좌익 이념에 오염된 지 오래다.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회가 먼저 망가졌고, 세상 걱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대형교회 목사는 사회 이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가톨릭은 '거대한 빨갱이 양성소'로 지목 받는다. 정말 문제는 그게 손쓸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무능력에 허수아비 신세이고, 이틈에 주교들은 좌파 정부에 동조해 날뛴다. 이런 와중에 나온 지난 5월 법무부 인권국장의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는 폭언은 또 뭔가. 망가진 교회에 정부가 반기독교 자세를 취하는 게 무얼 뜻할까? 다음 회엔 망가진 교회의 구조 전체와 치유법을 드러낼 구상이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언론인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10월 15일자 글을 전재했습니다.]

한국교회, 왜 기독교 통일 교육이 필요한가?
임 창 호 교수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1. 들어가면서 철학자 칸트는 그의 교육학강의(1801) 첫 페이지에서 “인간은 교육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기대되는 인간상이 있다면 사람을 교육해야 하며, 기대되는 사회공동체상이 있다면 역시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이상과 목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육 없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시키거나 발전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동시에 교육은 미래를 향한 보험이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하신 사역은 12명의 제자를 모아 3년간 교육하신 일이다. 그들이 70명의 제자로 확장되었고, 3,000명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초석이 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선교명령이라기보다, 사실 교육명령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 가운데 주동사가 “제자 삼으라”라는 교육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 민족의 회복을 준비하자
강 철 호 목사 북한기독교총연합회장, 새터교회할렐루야! 2018년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이 땅에 평화의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온 남과 북이 진정한 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분단 속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통일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평화에 들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평화와 함께 복음통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외쳐온 평화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북민의 한사람으로 대한민국으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자유가 나를 평화롭게 함을 신앙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시편 126편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은혜를 받아 안고 얼마나 기뻤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아마도 오늘 이들의 이 고백을 저 같은 탈북민들이 제일 실감을 할 겁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인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복음통일을 위한 탈북민 교회의 역할
김 성 근 목사 노원한나라은혜교회지금까지 남한 교회들의 북한 선교의 주역은 남한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북한 선교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들과 어떻게 손잡고 어떤 일들을 진행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1.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위치탈북민 목회자들의 사역 배경 1990년대 말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탈북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면서 북한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한 많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지대한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반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유지하거나 성장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서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갈 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한 교회는 탈북민들이 같은 민족이기에 그

“한국 정부 언론 자유 중대 위반”
정부가 탈북민 출신 기자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국제적인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제언론인협회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 위반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고, 유엔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VOA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인협회(IPI) 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성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라비 프라사드 국제언론인협회 국장은 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북민 출신 기자를 지난 15일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에서 배제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북한이나 남북대화에 비판적인 언론들을 억누르려는 조치"라며 "민주사회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라비 프라사드 국장은 "이번 사태는 앞으로 다른 취재보도에도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내일부터 정부와 재계의 부패에 대한 취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또한 시나 폴슨 유엔 인권 서울사무소장도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시나 폴슨은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고 모든 사안에 대한 언론 취재는 허용되어야 한다. 모든 남북 간 정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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