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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박정희?…알려면 제대로 알고 말하라

소탈한 인간미가 그의 진면목…과묵-진중한 성격을 권위주의로 오해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8.30 23:03:46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는 부국 대통령 박정희를  '원조 적폐'로 낙인찍었고, 세상은 그를 자꾸 지우려만 든다. 지난 8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정희 시대의 남북대화' 포럼(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개최)은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 지도자의 잊혀진 진면목을 되새겨보기에 좋은 계기였다. 무엇이 박정희 18년을 특별한 시대로 만들었나의 요인 분석을 상 하 두 차례 칼럼으로 점검한다. [편집자]


[연속칼럼]-다시 보는 박정희 정치와 그의 스타일(下)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놀라운 전략적 사고를 했나를 보여준 첫 칼럼에서 미처 못 다한 얘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1970)과 7.4남북공동선언(1972)의 배경이다. 세상이 다 알 듯 두 제안은 6.25 이후 대화의 물꼬를 틀고, 대북정책을 공세로 전환한 계기였다. 지난 회 예고대로 그런 담대한 승부수의 배경엔 실무자 강인덕이 있었다.

당시 중정 북한국장이던 그가 1969년을 기점으로 남북경제력이 역전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박 대통령에게 올린 것이다. 김일성과의 대결에서 승기를 잡는다는 차원만이 아니다. 북한이 경제-군사 병진노선으로 골병들지만, 우린 경제제일주의로 벌떡 일어섰다는 현대사의 대역전극이다.

"보고 드린 게 1969년 여름인데, 박 대통령께서 그토록 환하고 밝은 표정을 지으시던 걸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만족감으로 담배까지 한 대 피워 무셨다. 그 순간에도 그는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바꿀 파격적 대북 제안의 첫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걸 며칠 뒤 실무라인에 지시했다."

13일 포럼에서 강 전 장관의 언급대로 보고를 받던 그 날은 박정희 생애 최고의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력이 북한의 50배 이상으로 커진 첫 계기이기도 했다. 좋다. 오늘 얘기는 박정희의 소탈한 인간미를 파악보자는 것인데, 대북 제안을 이듬해 8.15 경축사에서 하기로 일정을 잡고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드디어 대북제안 일주일 앞.

청와대 비서실-관계부처 최종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했다. 그 이전 각계 의견 수렴과 차관급 실무회의 등을 거쳤으니 추인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반대 견해가 법무당국자 입에서 쏟아졌다. "반공법-국가보안법은 물론 헌법상 통치권 행사를 초월하는 제안"이란 신중론이었다.

난감했다. 이런 국면에서 대통령이 화를 벌컥 낼 수도 있었다. 남북관계 이니셔티브를 쥐자는 발상전환인데, 당신들 왜 그렇게 정무감각도 없냐? 그렇게 꽝꽝 큰소리친 뒤 "나를 따르라"고 엄포를 놓는 게 우리가 아는 박정희 스타일인데,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박정희는 난상토론을 경청하고 일일이 메모했다. 그리곤 자신이 손수 연설문 수정에 매달렸다.

1년 공들인 초안을 다시 손댄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대목에서 강 전 장관이 포럼에서 한마디 했는데, 그게 정곡을 찔렀다. "박 대통령은 강한 사람이라는 게 세상 통념인데, 전혀 안 그렇습니다. 과묵하게 주변 견해를 경청하고, 하나하나 체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게 박정희 스타일이다.

  

독선으로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고집불통이란 고정관념은 수정돼야 옳다. 외려 박정희는 귀가 큰 사람, 굿 리스너(good listener) 쪽이다. 과묵하고 진중했을 뿐 마음은 여렸다. 78년 말 신현확을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다. 경제안정화론자인 그가 긴축재정을 위해 박 대통령이 애착을 가졌던 농촌 취락구조 개선사업 예산 삭감을 감히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그냥 놔 둡시다"고 한마디 했다. 깐깐한 신현확이 다른 보고 때 그걸 다시 제기했다. 그때도 대통령은 "내 숙원사업인데…"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삼세판이라고 신현확이 다음번 그 얘길 또 꺼냈다. 놀랍게도 이번엔 대통령이 항복했다. 신현확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다.

실무자가 확신에 찬 주장을 해오니까 자신이 양보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박정희는 그런 사람이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에서 "박정희는 카리스마형 지도자라서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말이 나왔다.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자기 확신과 결단이 더 없이 강한 지도자였지만, 그와 별도로 평생토록 간직했던 소탈한 인간미야말로 그의 본질이다.

그걸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일테면 그는 차관 이하 인사엔 간여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70년대말 박 대통령은 심의환 총무처 장관에게 이례적으로 군 출신 최택원을 차관으로 추천했다. 그렇게 한 뒤 심  장관에게 그렇게 미안해하더라는 소문이 당시 관가에 쫙 펴졌다.

소탈한 인간미란 무얼 말할까? 그건 유약함과 다르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까 권력을 가졌다고 함부로 휘두르는 일도 없었다. 일테면 아들 지만 군이 다니던 학교 교장에게 편지 쓸 땐 대통령이란 직함을 빼고 이름 석 자만 썼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며 마치 동네 이웃처럼  "나 정희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꽤 유명하다.

64년 어느 날 박정희가 한 잔하다가 그토록 신뢰했던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 김학렬이 생각났다. 새벽 한 시, 그의 혜화동 집까지 진출해 대문을 두드렸다. 부인이 "누구세요?"라고 물으니 "나 정희요!"라고 답했다. "정희가 누구죠?"라고 물으니 그제서야 "나, 청와대 박정희요"라고 하더란다.

5.16혁명 당일 새벽에 보였던 풍모도 음미해볼만하다. 당시 남산 KBS를 접수한 혁명군은 아나운서 박종세부터 찾았다. 군인들과 함께 로비를 내려가니 별 두 개를 단 키 작은 남자가 "나 박정희요"하며 악수를 청했다. 놀라운 건 직후인데, 뜻밖에 그는 거사 배경을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황했던 건 박종세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렇게까지?"

직후 생각을 바꿨다. "아, 이 분은 혁명공약을 낭독할 아나운서라면 뜻을 납득해야 한다고 믿는구나." 여기엔 숨은 얘기가 있다. 본래는 군 방송요원에게 혁명공약을 낭독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걸 물리친 게 박정희였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로 방송해야 국민이 혁명군을 신뢰한다는 논리였다.

그만큼 섬세했다. 총검을 들이댄 채 "당신, 잔말 말고 이거 읽어!" 하는 건은 박정희 스타일이 아니다. 얘길 한 걸음 더 내딛자. 박정희 통치 18년도 그렇게 재해석해야 맞다고 나는 믿는다. 그걸 그동안 우리가 오해하고 곡해해왔던 건 아닐까? 오버가 아니다. 박정희는 특유의 인간미로 우리 경제도 일으켰다. 현대 정주영이 70년대 조선산업을 일으킨 배경도 그러했다.

  

박정희 정부의 불같은 성화에 등 떠밀려 정주영이 차관을 얻는답시고 외국을 백방으로 돌아다녔는데, 웬걸 미친 사람 취급만 받았다. 결국 현대는 손 떼겠다는 뜻을 청와대 미팅에서 박정희에게 전달했다. 이번엔 대통령이 펄펄 뛰었다. "어디 쉬운 줄 알고 정 사장에게 맡긴 줄 아쇼?"

화난 박정희는 앞으로 정부는 현대에 무슨 일에도 협조 말라고 참모들에게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버렸다. 정주영은 바늘방석에서 죽을 맛인데,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박정희가 문득 일어나 담뱃불을 붙여 정주영 입에 물려주고 자신도 피워 물었다. 그리곤 한마디 했다. "화내서 미안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해봅시다."

대반전이었다. 최고 권력자가 그렇게 소탈하게 나오는 판에 못하겠다고 뻗댈 사람이 있을까? 조선산업뿐인가? 자동차에서 석유화학-전자산업까지 그렇게 일으켰다. 오해 말자. 박정희는 권력을 휘두른 게 아니었다. 특유의 소탈한 인간미로 남을 설득해 죽도록 일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포철 박태준의 사례가 그러했다. 박태준은 92년 10월 박정희 묘소에서 감동적인 고유문(告由文)을 읽었다.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의 대역사를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 드립니다." 고유문의 뒷부분이 이렇다. "이것이 어찌 제 힘입니까? '임자 뒤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붙여봐' 하신  말씀이 전부입니다."

실제로 박태준은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포철 회장은 제가 아닙니다. 돌아가신 각하입니다." 현대, 포철뿐인가?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박정희기념관이 아니던가? 분명 박정희는 걸출한 대한민국의 지도자였다. 동시에 인간으로도 참 멋졌다.

사람들이 모두 자잘해지고, 신뢰할만한 정치지도자가 사라졌으며 대한민국이 국가해체가 눈앞인 위기상황에서 그를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만큼은 안 된다며 흥분하는 얼간이도 주위에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도 진실을 알릴 의무로 나는 이 글을 썼다. 사람 박정희, 그가 새삼 그립다. 그걸 환기시켜준 13일 박정희재단 포럼은 그래서 의미 있었다. /조우석 언론인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8월 20일자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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