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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건국 70주년의 영적 의미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8.13 22:34:23

오화평 목사   
(‘로마서 9~11장과 이스라엘’저자)


2018년은 한국과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동일하게 70년이 되는 해이다. 지리적으로 먼 두 나라의 건국 연도가 같다는 것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지나온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나라이다. 많은 나라들 중 하나를 택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2: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손수 만들기 시작하신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국민을 만드시고, 시내산에서 주권(법)을 주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땅을 주심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친히 만드신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때가 묻은 나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헬라의 지배를 받으며 AD 70년에는 로마에 나라를 빼앗기고 결국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된다. 세계지도상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은 특별한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삼하7: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창17:8),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향한 많은 축복의 말씀들을 어디에 적용시킨다는 말인가?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들이 도입한 개념이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저스틴 마르터(AD100~165년)는 유대인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은 더 이상 효력이 없고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대신한다고 했다. 철학과 신학의 대가였던 오리겐 (AD185~253년)은 헬라 철학의 해석방법인 비유법을 성경해석에 적용시켜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한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라는 발상을 최초로 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친히 만드신 이스라엘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의 꿈은 나라의 재건이었다. 그래서 행1:6절에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예수님의 답변은 ‘이스라엘의 회복은 없다’, ‘이스라엘은 끝났다’가 아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그 문제보다는, 먼저는 성령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행1:7~8).
 
이후 유대인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헌신한다. 복음이 땅 끝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이 서진(西進)하기 시작한다. 복음이 서진하여 한국에는 누가 최초로 복음을 전했을까? 알렌선교사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보다 약 50년 전에 복음을 들고 조선 땅을 찾은 분이 있다.

1832년에 충남 고대도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한 유대인, 귀츨라프 선교사이다. 그는 약 한 달 정도 고대도에 머물며 주민들에서 성경책을 전해주고, 주기도문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당시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그는 ‘조선서해안항해기’라는 책을 쓴다. 그리고 그 책을 영국 런던대학에 재학 중이던 한 청년이 읽고 조선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는다.



그가 바로 평양 대동강 양각도에서 배가 좌초되어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이다. 당시 토마스 선교사는 죽는 순간까지 성경을 전해주며 전도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에게서 성경을 받은 이들 중 그를 죽였던 평양교회의 박춘권 장로를 비롯하여 평양의 유력한 신앙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다.
 
우리에게 구약성경은 누가 최초로 번역해 주었을까? 유대인, 알렉산더 피터스이다. 그는 1895년에 조선에 왔다. 와서 보니 한국 성서위원회가 신약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구약이 번역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정통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며 매일 히브리어 기도문과 시편을 읽었던 그는, 조선 사람들에게 빨리 축복의 시편들을 전해주고 싶어서 시편 152편 중 62편을 담은‘시편촬요’를 출간했으며 수요가 폭발했다.
 
이처럼 한반도 교회의 시작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유대인의 한반도를 향한 사랑과 헌신, 순교가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고 오늘날 한국교회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유대인에게 영적인 빚을 진 민족이다.
 
로마서 11:1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AD 70년에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스라엘의 끝이 아니었다. 이방인에게, 더 멀리는 한반도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을 잘 몰랐다. 그래서 중동의 이스라엘은 끝났다고 선언했고, 대신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한편으로 보면 이 주장을 수긍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없어졌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셨다. 행 1: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시기”가 되어 이스라엘이 회복된 것이다. AD 70년 이후, 무려 1878년만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따라서 이제는 중동의 이스라엘이 재건되었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중동의 이스라엘이 완전한 나라는 아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치고 다듬으셔서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로 회복하실 것이다.
 
1948년 한국의 건국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1948년 5월 31일에 있었던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당시 이승만 임시의장은, 개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리며 이윤영 의원(목사)에게 기도를 하게 했다. 공식 순서에도 없는 기도를 하게 했을 때 참석의원 198명은 모두 기립했다. 그 중에는 4명의 목사와 50여명의 성도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도로 제헌국회를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윤영 의원은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사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다.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 은혜와 동포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는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서합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1948년, 같은 해에 일어난 한국과 이스라엘의 건국은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이며 은혜이다. 이제 건국 후 70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교회는 세계선교 2위의 나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듯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차츰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미전도 종족이다.
 
‘70년’ 하면 예레미야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이처럼 70년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해이다. 왜 돌아왔을까? 단지 돌아오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돌아옴의 목적은 성전 재건이다. 즉 영적회복이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스1:1~2).  
 
성서학자인 E.W 벌링거는 그의 책 ‘성경에 나타난 숫자 해설’에서 ‘70’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칠십은 완전수 두 개-일곱(7)과 십(10)-의 다른 조합이다. 7×10은 모든 영적 능력과 영적 의미로 성취한 완전한 영적질서를 상징한다. 영과 권세, 이 둘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돌려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때에 성전 재건이라는 새로운 영적질서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것의 시작도 야곱의 몸에서 난 70명에서 시작이 되었다.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창46:27, 출1:7). 그리고 예수님도 70인을 보내며 영적능력을 주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이처럼 70은 새로운 영적 질서의 시작이요, 영적 권세가 강조되는 숫자로서의 의미가 있다.
 
한·이 건국 70년! 한국과 이스라엘에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고 있다. 먼저 한반도에서는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다. 북한이라는 여리고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한국교회는 북한을 위해,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의 영적 회복을 위해 더욱 뜨거운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다.
 
이스라엘과 관련하여서 미국은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를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행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회복 50년이던 2017년 12월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천명하고, 대사관의 이전도 약속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 70년인 2018년 5월 14일에 약속대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반대를 무릅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뒤에는 기도하는 무명의 성도들이 있었다. 기도의 힘, 영적인 담대함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일을 감당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발언과 대사관을 옮긴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가려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의 중요성은 이미 하나님께서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다.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렘3:17).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도시이다”(마5:35, 현대인의 성경).
 
이처럼 이스라엘과 북한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전면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세상의 지도자들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특별히 이스라엘과 북한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여기서 ‘이북’은 이스라엘과 북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북’을 향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한·이 건국 70년에 한국과 이스라엘에 동시에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일까? 그것은 세계선교의 마지막 종점과 마지막 주자를 온 열방에 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속사의 마지막 종점은 이스라엘이다. 이 마지막 종점인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해야 할 마지막 주자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서진하여 한국까지 왔다. 한국교회의 시작에는 유대인 귀츨라프 선교사와 구약을 번역한 유대인 알렉산더 피터스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복음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다. 한국교회는 복음의 마침표인 이스라엘에 영적인 빚을 진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도와야 한다. 유럽과 서구교회는 홀로코스트, 종교재판, 십자군 전쟁 등으로 유대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사야서 46:11절에는 동방을 부르시는 말씀이 나온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고,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불렀다.”(표준새번역) 불러서 무엇을 하실까? 곧 이은 13절에 해답이 있다. “내가 시온을 구원하고 이스라엘 안에서 나의 영광을 나타내겠다.”(표준새번역). 이 동방의 독수리가 혹 우리나라는 아닐까?


그리고 이사야 55:5절에는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근거와 논리를 들며 한국일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 지명이 분명하게 한국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방의 독수리’,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는 나라’가 한국을 뜻하는 것으로 말씀을 받고 쓰임 받으면 좋겠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하다가 문제를 발견했다. 네가 알지 못하는, 즉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르겠다고 하셨는데, 한국은 이스라엘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나라이다. 한편으로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보며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바로 ‘통일한국’이라는 것이다. ‘통일한국’은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는 나라이다. 우리도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이것을 깨닫고 헌신하도록 하나님께서 한·이 건국 70년에 예루살렘에 관심을 집중시키시는 동시에 한반도를 깨우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일한국’을 속히 이루어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향하여 달려 나가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한·이 건국 70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몇 가지 영적 메시지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이스라엘에 영적으로 빚진 민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빚진 자의 겸손으로 이스라엘의 영적회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 갓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연약한 메시아닉 쥬 교회를 돕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가난한 정통 유대인들 등을 도와야 한다. 이방인들이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롬15:27).
 
두 번째는 회개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 죽인 민족이라는 편견으로 교회사 가운데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홀로코스트 등으로 많은 상처를 주었다. 오늘 우리가 회개하면 내일 유대인들이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이 끝났다고 했던 것도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생기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37:8)와 같은 상태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통일한국’이 되어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겔37:9)고 선포하는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한반도에서 외치는 생기가 예루살렘까지 닿으려면 얼마나 뜨거운 중보기도가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중국, 중앙아시아, 무슬림을 뚫고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이 땅에 다시 한 번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민족은 동방의 독수리로 비상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는 예배이다. 왜 북한이고 왜 이스라엘인가? 그곳에 예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없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의 영, 유대교의 영이 아니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북한과 이스라엘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돌아와서 한 일도 성전 재건이다. 곧 예배의 회복이다. 그 땅이 중동이어서 사막이 아니라 영적으로 바싹 말라서 사막이라는 것을 보고 와야 한다. 그리고 메시아닉 쥬 예배에도 참석하고, 유대인들을 보고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던(눅19:41) 것처럼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인의 사도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가 동족 유대인의 구원(롬9:3)이라고 했다. 이 절박함으로 유대인들이 구원받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도록 헌신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왕의 귀환이다. 주님은 세계선교가 완성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다시 오실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에는 왕의 귀환을 환영할 왕의 백성들이 너무 적다. 왕이 오시는데 백성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55:5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말씀을 ‘통일한국’으로 받자. 그리고 속히 남북통일을 이루고 다시 한 번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에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도록 간구하자. 그래서 처음에는 성령 받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했다면, 이제 마지막 때인 지금은 ‘통일한국’이 온 한반도와 중국과 무슬림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달려가 유대인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이루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선포하며 왕의 귀환을 준비하자. 이 부르심에 기름 부음을 받는 한·이 건국 70주년이 되면 좋겠다.


[이 글은 '월간 JESUS ARMY' 2018년 8월호에서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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