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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느헤미야국가금식성회(6.4-6.6) 둘째날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6.06 12:05:31

65() ‘느헤미야국가금식기도성회둘째 날 집회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있었다. 첫날의 주제가 회개였다면 이 날의 주제는 회복과 승리”였.

 


이 날 김재동 목사(하늘교회), 지성호 대표(나우), 황성준 위원(문화일보), 김성욱 대표(지저스웨이브)의 강의가 있었고, 매번 강의 후 1시간씩 집중적인 합심 기도 순서가 있었다.

 

첫 강의는 김재동 목사(하늘교회)위대한 반전의 드라마,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다.

 

김재동 목사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반전의 역사라고 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구하시고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진 기적 7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 기적 일제의 한국교회 지도자 학살 계획을 막아주심

 

1942.6.13. 이승만 박사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일본이 벼락불로 패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 예언은 적중했다. 1945년 미국의 대공습과 원폭 투하로 일본은 항복했다.

 

기독교 역사가인 김인수 교수는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에서 일본은 1945.8.17에 모든 조선기독교지도자를 참살할 계획을 세웠고 후에 경찰의 목록을 보면 만 명의 교회지도자를 체포하기로 예정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박용규 교수는 <한국기독교회사>에서 일본이 1945.8.18에 한국교회지도자 2만 명 학살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하였다.

 

1946년 윌리엄 블레어 선교사는 <Gold in Korea>에서 19458월 중순경 조선인 기독교인을 모두 살해하도록 본격적으로 계획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의 예측대로 일본에 벼락불이 먼저 내려짐으로써 일본의 조선인 애국자에 대한 살해계획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유다민족 말살계획을 세운 하만과 같이 자신이 먼저 멸망당한 것이다.


 


두 번째 기적 자유민주 대한민국 건국을 가능하게 한 트루먼 독트린 선언

 

해방 후 건국을 주도한 세력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사회주의계열 정당이 60여개나 되었다. 1946년 미군청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이 78%나 되었다.

 

·소 양국은 공동회담에서 좌우합작을 통해 조선을 독립국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만약 좌우합작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었더라면 한반도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1947.3.12. 발표된 트루먼 독트린은 좌우합작 시대를 끝내는 반공, 반소 선언이었다. 트루먼 독트린은 한반도에 좌우합작에 의한 정부수립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정부수립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세워질 수 있게 됐다.

 

세번째 기적 대한민국이 합법적 정부로 유엔 승인을 받음

 

3차 유엔총회가 파리에서 1948.9.12.-12.12에 열렸다. 58개국 대표 275명이 참석하였고 대한민국대표 8명은 옵서버로만 참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승인 안건은 소련 대표 비신스키의 필리버스터로 상정되지 못했다. 12.12 폐회를 앞두고 비신스키는 갑작스런 치통과 성대결절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소련 부대표도 연설중에 심장쇠약증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1212() 새벽에 장면 박사와 모윤숙 여사는 나라 살리기 위한 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방해공작을 편 소련 대표들이 병원에 실려간 사이 안건이 총회에 상정되었다. 48.12.12 오후 58분에, 유엔총회는 찬성 48, 반대 6, 기권 1표로 극적으로 통과시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한 것이다.

    

네번째 기적 남로당의 남조선 불바다 계획무력화

 

60만 여 명의 지지자를 가진 남로당은 19494남조선 불바다계획을 세웠다. 6만 당원을 동원하여 만 개의 수류탄을 만들어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책임자 홍민표가 신실한 크리스천인 오제도 검사에 의해 검거된 후 전향하였고, 그를 통해 당원 33만 명이 전향하게 되어 결국 남조선 불바다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홍민표로 인해 거물간첩인 김상룡, 이주하, 성시백 등이 체포되어 6.25전쟁 시 박헌영의 20만 명 무장봉기 계획이 무산되었다.

 

다섯 번째 기적 6.25전쟁 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 때 원래는 미군을 파견할 생각이 없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1950.4.23. 보스턴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투루먼 대통령에게 전합니다. 평화 무드에서 깨어나 군사력을 강화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6.25 전쟁 직후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냈다.  이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미국이 절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됩니다. 남한에는 인구 밀도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습니다.”

 

트루먼이 전쟁 발발 이틀 만에 파병을 결정한 이유다.

 

1950.6.2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군 한국파병안을 결정할 때 소련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이것은 스탈린의 판단 착오였다. 중공군이 개입하여 미군과 전쟁하도록 하고 그동안 소련은 동유럽 공산화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이

었던 것이다.

 


여섯 번째 기적 6.25전쟁 중 낙동강 방어, 인천상륙작전 성공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1950.8.1-9.24, 55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나님, 어찌하여 착하고 순한 우리 백성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 한 명이 적 10명을 대적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왜관 방어선이 붕괴될 위기 가운데 있을 때 8.16 경남도청에서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일기가 나빠 미군폭격기가 일주일 동안 뜨지 못하여 공산화 위기에 몰려있을 때 간절한 기도로 인해 날이 갑자기 개어서 폭격기가 출격할 수 있게 되었다. 8.16 오후 12B-29기가 출격하여 960톤의 폭탄을 왜관 방어선에 퍼부었다.

 

1950.8월 말부터 초량교회에서 구국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신사참배와 교권 다툼의 죄 등을 회개하였다. 2주간 계속된 구국기도회가 끝나고 불가능하다고 했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서울수복이 되었다.

 

일곱 번째 기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953.6.18. 이승만 대통령의 27,000명 반공포로석방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은 이 대통령 제거 작전을 펼쳤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 파견한 미국특사는 이승만의 정책을 비난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특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공포로를 공산지옥으로 보내느냐, 광명의 이 땅에 머무르게 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근 일주일 동안 기도한 끝에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 이번 조처를 감행한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위해 기도했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1953.8.8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이 조약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번 공동조치는 외부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

 

김재동 목사는 강의 후 대한민국의 위기 때마다 있었던 반전의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에도 하나님이 역사의 반전을 이루어주시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회중들은 북미정상회담이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지고, 남북분단을 고착화하는 거짓평화가 물러가고,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고,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의 망령이 떠나가도록 소리높여 기도했다.

 


이어서 탈북인 지성호 나우(NAUH) 대표의 간증이 있었다.


지성호 대표는 북한의 1990년대 대기근을 겪으면서 자랐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석탄을 훔친 뒤 이를 암시장에서 음식과 바꿔야 했다. 1996년 석탄 화물열차에 올랐으나 영양실조로 떨어져 의식을 잃은 지 대표는 열차에 치어 왼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마취도 없이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 수술을 받았다. 이후 목발을 짚고 꽃제비구걸 생활을 하던 지 대표는 2006년 탈북했다. 목발을 짚고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1만 여km의 여정 끝에 자유를 찾았다, 이후 한국땅을 밟은 뒤 의수와 의족을 지원받아 새 삶을 살고 있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이 북한 출신인 것이나 장애가 있는 것도 창피하지 않았지만, 탈북과정에서 하나님께 무사히 안착하면 북한동포들을 돕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재미교포 선교사에게 북한 주민 생활의 참상을 소개했다가, 이듬해 그가 두만강을 넘어 입북했다가 당국에 억류된 뒤 풀려나고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미국 북한인권행사에 초청 받아 그곳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고 깊이 회개하고 남북한 청년들과 북한인권단체 NAUH 결성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나님 저는 돈이 없어요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 쌓아둔 보화가 있다’, ‘구름같이 많은 무리가 함께 할 것이라고 응답해주셨다고 한다.

 

2010년 당시 수중에 단돈 200달러 밖에 없었지만 지금까지 300명의 탈북자를 구출시킬 수 있었다면서, 지 대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지난 201552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오슬로자유포럼에서 24인의 연사 중 한 명으로 초청됐다. 지씨의 탈북 스토리에 기립박수가 터졌고, 포럼이 끝난 후 주최 측인 국제인권단체 인권재단(HRF)은 나우를 돕겠다며 펀딩 사이트를 통해 사무실 임대 보증금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지 대표는 지난 1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두교서 연설 자리에 초청받았다. 백악관에서의 면담도 있었다. 김정은 체제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고 인권 개선을 호소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것은 지씨의 남다른 노력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한다. 지씨는 지난 여름 다른 탈북 청소년 등과 함께 백악관 앞 잔디밭에서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꽃제비 재연극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백악관 외곽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가운데 연극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지도층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지성호 씨는 북한을 이야기할 때 값싼 노동력’, ‘자원’, ‘실크로드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영혼들로 봐달라고 했다. 한국에 오기 원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많은 사람들이 남한으로 귀순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며 자신의 신앙 간증을 곁들였다.


 


황성준 위원은 지난 주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곳엔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교사 140여 명이 묻혀있다. 한 살 미만의 아기들의 무덤도 65기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황 위원은 19세기 말 조선 사회는 한마디로 빛이 없었다고 했다. 복음 전하러 왔던 토마스 선교사가 참수 당했고(1866, 제너럴셔먼호 사건), 천주교인 수천 명이 학살됐다(1866, 병인사옥). 요즘의 IS를 보는 듯하다. 복음을 접할 수 없는 암흑 시대였다.

 

황성준 위원은 유교적인 조선사회에 자유나 인권이란 그 개념조차 없었다고 했다. 노비가 구성원의 절반이고, 게다가 세계에 유례없는,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사회였다.

 

이런 나라에 자유와 인권 개념을 처음 알려준 것이 기독교 선교사였다고 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고 가르쳤다.

 

황 위원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다. 3.1운동의 여파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 1917년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 때 수천 명이 기독교를 믿고, 강도 살인자들이 변화됐다. , 담배, 노름, 마작, 인신매매 등이 멎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의회는 회의 첫날 기도로 회의를 시작했고, 그 기도문이 국회 속기록에 남아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복 주셔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황 위원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간증했다.

 

황 위원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대학생 시절 마르크스주의 인본주의 이념에 빠져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미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구로공단의 여공들과 함께 울어주지 않는 교회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소련과의 연락책으로 소련에 거주하게 됐는데, 월급은 작았고, 배급에 의존해야 했다. 고작 한 달에 돼지고기 250g, 계란 10개 등이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면 일단 뒤에 서고 본다고 했다. 하루는 운 좋게 줄 서서 계란을 배급받았다. 그의 뒤에서 배급이 끊어졌다. 배급 못 받은 사람들은 욕하거나 화내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황 위원은 좋아라 하며 집에 가는 중 넘어져 계란이 몽땅 깨졌다. 집에 도착하니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신봉했던 이념이 무너지고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졌다고 한다. 죽음도 삶도 별 의미 없게 여겨졌고, 단지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종군기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전쟁터를 다녔다. 그러던 중 자신의 영혼을 가엽게 여긴 선교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게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회심하게 됐다.

 

그가 2002년 귀국해서 서울역 노숙자들을 보고는 한국이 정말 잘 사는 나라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들은 영양상태가 좋아 보였다. 예전에 전쟁터에 돌아다니며 보았던, 소말리아, 보스니아, 짐바브웨, 남수단 등의 굶주린 사람들과 비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황 위원은 북한 핵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김정은이 체제 보장을 요구하지만, 만약 북한 동포들이 복음 들을 자유가 없는 체제를 보장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평화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하신 이유는 세계 복음화의 기지로 삼고자 하심이라며, 그것을 위해서 북한이 열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지금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다. 북한을 위로하고 북한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김성욱 대표(지저스웨이브)하나님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김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은 통일한국을 출산하기 위한 산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북한 동포의 해방과 구원을 이루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물맷돌을 들 때라고 했다.

 

김 대표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23만 명이 갇혀있고, 다수가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각 교회와 학교에서 한 두 사람이라도 모여 북한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할 것을 권면했다.

 

마지막으로 이용희 국가기도연합 공동대표는 북미정상회담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6.13 지방선거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른 지도자가 선출되게 해달라는 제목으로 기도 인도했다. 아울러 6일 성회에서 국가를 위한 기도자 5만 명이 세워지도록 기도했다.


 

6()에는 황교안 전 총리의 간증, 이정훈 교수(울산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도운동)의 강의와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의 설교가 차례대로 진행되고, 강의 중간마다 기도시간을 갖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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