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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신상옥이 좌파 DJ를 맹공격한 까닭은?

생전 기록 통해 "김대중은 북한 통일놀이의 파트너" 공격, "연방제도 내전 낳는다" 경고…한국의 대북인식도 걱정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4.21 23:59:00

우리 시대 가장 혹독한 체제인 북한에서의 삶을 제대로 다룬 기록물이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인류사적 성취가 될 것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아서 쾨슬러 <한낮의 어둠>,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조지 오웰 <1984>에 견주거나, 그 이상인 작품 말이다. 지금 겪는 이 고통-환란(患亂)을 그렇게라도 승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린 정말 억울해서 못 산다.

그 기준엔 못 미치더라도 강한 인상을 남긴 탈북문학 베스트4를 내 나름으로 꼽아왔다. 그중 셋은 황장엽의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1999), 김정일의 동거녀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등나무집>(2001),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 등이다.

황장엽의 책에는 별 이견이 없겠지만, 성혜랑-김현희에 대한 높은 평가는 좀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물의 가치란 읽어본 이는 모두 아는데, 성혜랑의 헌책은 요즘 인터넷에서 3~4만원에 호가한다. 쉽게 말해 김정일의 숨소리와 속내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그에 비해 김현희 책은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였으나 그 때문에 외려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다시 읽어보라. 뛰어난 글로 묘사된 60~70년대 북한 생활상과 공작원 교육과정 기록, 그리고 전향 과정 고백은 역시 매력적이다. (김현희 가짜설을 유포시켜온 좌익들의 무식함-뻔뻔함은 정말 천벌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탈북문학 베스트4에 반드시 합류시켜야 할 오늘의 텍스트는 최은희-신상옥 커플의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2001)이다.




 


한마디로 보석 같은 기록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알린다는 게 내 판단이다. 최은희의 16일 타계 소식을 듣고, 그 커플이 남긴 기록을 알리고 싶은 마음부터 들었는데,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는 북한 탈출 이후 둘이 교대로 쓴 <내레 김정일입네다>(1994)를 비롯해 신상옥이 김정일-김대중에게 각각 보내는 편지를 합본해 월간조선에서 펴냈다.

왜 이 기록이 걸출한가? 까칠한 자유주의자, 요즘 말로 강남 좌파 원조 격인 신-최 커플이 가장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드라마틱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알듯 신상옥은 본래 박정희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며 창작의 자유를 갈구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만일 납북되는 사태만 겪지 않았어도 신상옥은 영화계의 영원한 리버럴리스트로 남았으리라. 그런 그는 납북 직후 사상범만 수용한 정치보위부 수용소 생활을 하며 전체주의 사회의 참담한 현실에 눈을 떴다. 일주일에 돼지비계 한 점씩을 얻어먹으려고 석탄 채굴을 자원하는 1800명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전체주의 체험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연출했던 작품들도 흥미롭다. '철길 따라 삼만리'란 영화의 경우 의도적으로 남녀간 키스 장면을 삽입하는데, 그건 북한영화 사상 처음이라 해서 화제였고, '사랑 사랑 내 사랑'이란 영화는 인간적 온기가 배어있는 제목만으로 꽉 막힌 북한을 달뜨게 했다. 북한사회 처음으로 암표가 등장했던 작품이 그것이었다.

평양의 독재자들의 뒷모습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기록물의 덤이다.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한 파티에 갔을 때 무대의 남녀 연주자들이 "지도자 만세"를 외치며 깡충깡충 뛸 때 김정일이 신상옥의 손을 붙잡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저건 전부 가짜요. 거짓으로 하는 소리요."

김일성의 업적을 그린 영화 '조선의 별'에 대해서도 "저건 영화가 아니다."라고 넌지시 귀띔했다. 훗날 탈출에 성공한 뒤 김정일을 향해 공개편지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김정일은 독재자가 분명하지만, 현실감각이 살아있고, 때문에 '북한의 등소평'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대담하게 돌려 북한 개혁개방에 나설 것을 그 글에서 권고했다.

  
 
이걸 어떻게 볼까? 그 끔찍한 체제를 겪고서도 여전히 이상주의자로 남아있던 신상옥의 나이브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신상옥은 한 번 더 진화를 하는데, 제대로 된 반공주의자로 탈바꿈한다. 계기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었다. 당시 노골화된 한국의 통일 지상주의 물결에 놀란 것이다.

김정일이 김대중을 유혹하는데 성공하는 희한한 사태 진전을 지켜보며 신상옥은 경악했다. 그래서 김대중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쓰는데 "김대중은 김정일 통일놀이의 남쪽 파트너"라고 맹공을 가했다. 2000년 6.15 선언을 지켜본 뒤 쓴 편지는 지금 읽어도 생생하다. 이달 말 문재인-김정은 회담을 앞두고 더욱 리얼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대통령께서는 어떤 통일을 원하십니까? 통일만 된다면 어떤 세상이 오든 상관이 없습니까? 아니면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 아래서의 통일을 원합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북한식 통일이 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시 신상옥의 사상적 각성은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의 편지 글은 실로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는데, 당시 김대중이 추구하던 낮은 차원의 연방제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패권 다툼에 이어 끝내 내전으로 갈 것을 그는 예견했다. 그의 타계(2006년) 12년 뒤인 지금 벌어지는 더욱 더 안 좋아진 남북관계를 보면 그가 뭐라고 일갈을 할까?

당시 최은희-신상옥 커플이 두 사람 이름으로 된 책을 펴낸 것도 한국 사람들의 점점 나빠지는 대북인식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궁금한 게 또 있다. 지금 영화판의 그의 새까만 후배녀석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소재로 영화-드라마를 양산하고 있다. 그런데 왜 최은희-신상옥 커플의 그 놀라운 스토리는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지 않는 거지?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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