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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평화주의'가 전쟁 부르고 나라를 망친다

군대 출정(出征)의식 포기한 세종이 평화타령의 원조...그런 DNA의 대한민국은 전쟁 결단 못하는 거세(去勢)국가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4.06 15:03:32

구한말의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가 서경(西京) 천도를 하려던 고려시대 묘청이 유교사상가 김부식에게 패배한 걸 두고 "조선 1000년 이래 제1사건"이라고 말한 건 꽤 유명하다.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이 아닌 단재의 일방적 목소리라서 선뜻 공감키 어렵지만, 충정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그였기에 서경 천도 운동을 한 묘청을 자주의식을 앞세운 국풍파로 규정한 것이다. 황제 칭호 사용, 북진정책, 독자적 연호를 주창했으니 묘청이 단연 돋보였을 것이고, 그걸 꺾어버린 신라계 문벌 귀족인 김부식이 미웠을 것이며, 그 사건 이후 우리나라가 친중 사대주의로 전락했다고 그는 단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번 이영훈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대한 서평 '환상 속의 조선시대사…그건 미화 넘어 날조였다'를 쓴 뒤 머리를 내내 맴도는 게 단재이고, 조선시대란 망령(亡靈)이다. 단재의 진단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즉 친중 사대주의의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위인은 세종이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70년이고, 대명천지인 지금까지도 조선시대는 한국인의 집단정서로 강력하게 남아있다. 정확하게 말해 지금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로 회귀하지 못해 몸부림을 친다. 20세기 평화-번영을 담보해온 한미동맹을 흔들며, 친중-친북-반일 행보에 여념 없다.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다. 정치권과 지식사회를 포함한 흐름 전체가 그렇다.

얼마 전 바른사회시민회의 토론회 제목을 듣고 무릎을 쳤는데, 제목이 "지금 우린 노예와 가난의 길로 기어이 들어서겠다는 건가?"였다. 다른 말로  국가 자살이다. 거대한 정신착란 혹은 미망(迷妄)의 이 구조에 정신이 다 아찔한 지경이다. 나라가 문을 닫는 게 이렇게 삽시간이구나 하는 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그래서 이영훈의 신간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지적에 새삼 공감하는데, 지금의 세종 숭배란 단순한 전통 미화를 떠나 조선시대로 회귀 본능이며, 그래서 대한민국을 대놓고 부정한다. 노비제-기생제-사대주의를 창출한 봉건 임금 세종을 지금 광화문광장에 모셔놓는 풍조를 어떻게 설명할까?

세종 재평가는 호고(好古) 취미가 아니다. 한국인 정치의식 진단의 일환이 아닐 수 없는데, 지난 번 지적대로 그런 거대한 허위의식과 시민의식의 부재가 '우리민족끼리'로 연결되고, 끝내 폐쇄적인 좌익적 세계관을 낳는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하는 필자와 이영훈 같은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 청맹과니를 위해 하나 더 얘기할 참인데, 망국 풍조의 하나가 절대적 평화주의다. 한 안보 전문가가 문재인 정부의 절대적 평화주의가 외려 전쟁 위기를 촉발한다고 지적(3월 24일 조선일보)했는데 그게 상식이다.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단 낫다는 엉터리 논리 속에 묻지마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데 그 역시 원조는 세종이다.


이영훈에 따르면 고려왕조는 군사국가였다. 도덕국가를 표방했던 허깨비 문약(文弱)의 나라 조선조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도에 3만 병력의 중앙군을 보유했고 이걸 중심으로 한 거대한 군사공동체가 고려다. 그래서 거란-여진-몽고-왜구와 맞서 싸웠다. 그것의 멋진 상징이 출정(出征)의식이다.

출정의식은 군례의 꽃인데, 나라가 전쟁을 결심하면 우선 사직단에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 고한다. 대궐에선 출정군 장수에게 부월(斧鉞) 즉 도끼를 내린다. 문무백관이 배열한 가운데 왕이 자리를 잡으면 의장대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킬 즈음에 출정군을 대표한 장수가 왕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때 장수는 적을 물리칠 계략을 올리며, 화답으로 왕은 도끼를 내린다.

출정의식은 천자(天子)의 예에 속한다. 도끼는 국가의 힘과 전권 부여를 상징할텐데, 조선 초기 태조만 해도 출정의식을 잠깐 거행했다. 이걸 애써 배격한 게 소심한 임금인 세종으로 그는 1419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때 출정의식을 거행치 않았다. 그런 군례를 생략한 채 장수와 일행을 대강 전송하는 걸로 대신했다.

  

물론 세종의 그런 의지가 먼저 있었고, 이 논리를 집현전 학자들이 뒷받침한 결과다. 그리고 이런 게 선례가 되어 성종 시대 <국조오례의>에 등장하는 군례에서 출정의식은 배제됐다. 역시 세종이 문제는 문제다. "세종에게서 정치와 인륜은 구분되지 않았다. 제후(조선의 왕)가 (중국의) 천자를 성심으로 섬길진대 무슨 독자적 의지의 군국(軍國, 군사국가)가 필요하단 말인가?"(<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163쪽)

세종은 몸과 마음으로 "지성을 다해 사대하였던"(156쪽) 사람인데, 그래서 천제(天祭)를 포기했다는 건 이제 세상이 다 안다. 그렇게 천자 앞에 바짝 얼었던 세종은 근대 이전 절대적 평화주의 철학의 지지자라고 규정하는 게 맞다. 중요한 건 그런 세종의 망령이 600년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는 발견이다.

'세종 빙의'란 오버가 아니다. 한국현대사를 관찰하며 나는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단 못하는 거세(去勢)된 수컷의 나라라고 판단해왔다. 국가란 '전쟁하는 조직'에 다름 아니며, 그래서 협회와 구분된다는 게 국제정치학의 상식이 아니던가?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묻자. 대한민국은 과연 전쟁을 결단할 각오가 되어있는 나라인가? 앞으로 1년 대한민국은 거듭 그 엄숙한 질문 앞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 앞에 "노!"를 할 것인가, "예스!"를 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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