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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지하드(Jihad)의 진짜 의미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3.20 23:37:26

    이 만 석 목사

4HIM 대표, 무슬림선교훈련원장

 

최근에 이슬람과 관련되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지하드(Jihad)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랍어로 투쟁(Struggle), 분투, 노력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성전(聖戰: Holy War: 거룩한 전쟁)이라고 번역하는데, 지하드라는 아랍어에는 거룩하다는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이슬람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라를 위해서 불신자들과 싸우는 전쟁을 의미한다. 지하드 전사들을 가리켜서는 아랍어로 무자히딘(Mujahideen)이라고 한다. 지하드라는 단어 앞에 즉 행위자를 의미하는 접두어를 붙이고 끝에 인(een)이라는 복수형 어미를 붙인 단어다. 지하드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무자히딘은 보통명사라기보다는 특정 단체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무자히딘이라는 그룹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방어하기 위해 극렬하게 저항하던 반군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란에서는 이라크와 전쟁하던 전사들을 무자히딘이라고 불렀다. 미얀마 혹은 필리핀에서도 무장 무슬림 전사들을 무자히딘이라고 한다.

 

보통 이슬람의 교리를 설명할 때 6()5()를 이야기한다.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6가지 믿음(알라, 천사, 사도, 경전, 최후심판, 정명)을 가져야 하고 다섯 가지 의무사항(신앙고백, 기도, 금식, 구제, 성지순례)을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알라의 길에서 지하드 하는자들의 행위에 비하면 무가치한 것들이다. 지하드는 그만큼 이슬람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교리이다.

 

그런데 무슬림들의 크고 작은 테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지하드라는 단어를 몹시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하드가 무슬림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이슬람 학자들은 지하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그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자 하였다.

 

“‘지하드에는 () 지하드() 지하드가 있다. ‘대 지하드란 자기 자신과의 투쟁, 즉 내면적인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죄악과의 전쟁, 음란과의 전쟁, 거짓과의 전쟁 등이 대지하드에 해당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될 때 그런 방어 전쟁을 소 지하드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하드의 개념뿐 아니라 이슬람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불식시키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슬람에서 어떤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전인 꾸란이나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꾸란에는 아무리 찾아도 지하드에 대 지하드와 소 지하드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다. 가장 신뢰할만한 6대 하디스와 신뢰가 떨어지는 다른 하디스들을 다 뒤져도 역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꼭 하나, 다음과 같은 하디스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타의 권위로, 그리고 아부 라바의 권위로, ‘자비르의 권위로 전하기를, “선지자(무함마드를 의미함)께서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시면서 우리에게 너희는 훌륭한 일을 해냈다. 너희는 작은 지하드에서 더 큰 지하드 즉 자신의 욕망을 거스르는 지하드로 가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Fayd alQadir volume4 P.511)

 

어떤 자료에 보면 타북(Tabuk)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무함마드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하디스는 신뢰할만한 6대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의 권위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이 하디스의 신뢰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알 카에다의 창설자 중 한 사람으로 지구촌 지하드의 아버지로 숭상을 받는 압둘라 유쑤프 아아잠은 팔레스타인 순니 이슬람 학자이면서 신학자이다. 그는 이 하디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사실 이는 전혀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조작된 거짓 하디스이다. 이는 꾸란 구절과 모순되는 내용이다. 지하드라는 말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 ‘Lesser vs Greater Jihad’)

 

또한 이슬람 개혁가이며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 학자들 중 한 사람인 이븐 타이미야는 이 하디스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어떤 이들이 선지자께서 타북 전투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는 지금 작은 지하드에서 더 큰 지하드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는데 이 하디스는 출처가 없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 중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다. 불신자들에 대한 지하드야말로 가장 숭고한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위키피디아 영문판 ‘Lesser vs Greater Jihad’ 참조)

 

하디스는 너무나 분량이 방대해서 직업적 이슬람 전문가들이 아니면 분별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대 지하드와 소 지하드에 대한 하디스는 이슬람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무슬림 학자들이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후세에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영향력 있는 무슬림학자들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권위 있는 하디스는 지하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어떤 사람이 알라의 사도(무함마드)에게 와서 “(상급에 있어서) 지하드와 동등한 행위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대답하시기를 그런 행동은 찾을 수가 없다고 대답하시면서 무슬림 전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동안 그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쌀라트(이슬람 의식에 의한 기도)를 하면서 금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했더니 아부 후라이라가 무슬림 전사는 그의 말이 긴 줄에 매어서 어슬렁거리면서 풀을 뜯을 때도 그 발자국마다 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부카리 하디스 V4, B52, No.43)

 

이것은 가장 신뢰도가 높은 부카리의 하디스이다. 한 번 전쟁이 시작되면 그 전쟁이 몇 주 안에 끝나기도 하지만 몇 개월씩 걸리는 전쟁도 있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쉬지 않고 금식하면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는 이슬람식 기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나 금식도 중요하지만 지하드의 중요성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카리의 하디스에서 지하드와 관련된 것을 하나만 더 확인해 보면

안나스 빈 말릭이 전하기를: 사도(무함마드)알라를 위해서 오후나 정오에 한 번 나가서 싸우는 것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훌륭하다.”(부카리 하디스V4, B52, No.53)

 

이슬람학자들은 하디스보다 꾸란의 권위가 훨씬 높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그렇다면 꾸란은 지하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같은 무슬림일지라도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불구자를 제외하고 알라를 위해서 생명과 재산을 바쳐서 싸우는 자들과 집에 앉아 있는 자와는 동등하지 않다. 알라께서는 재산과 생명을 바쳐가며 싸우는 자들에게는 집에 남아 있는 자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실 것이다.(꾸란 4:95)

   

 

  

다음도 꾸란에 기록된 내용이다.

너희가 비록 싸우기 싫어도 전쟁은 너희에게 부과된 의무이니라. 너희는 유익한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해로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느니라.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라는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꾸란 2:216)

 

최영길 역 한글 꾸란에는 싸움은 너희에게 부과된 의무니라라는 말을 너희에게 성전이 허락되었노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영문과 이란어로 번역된 어떤 번역본도 ‘Kutiba AAalaykumu alqitalu’성전이 허락되었다고 번역한 것은 없다. ‘Kutiba’는 법령에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무엇이 의무사항으로 기록되었느냐 하면 ‘alqitalu’ 즉 전투, 전쟁이 의무사항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qatala’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qatala’죽이다 살해하다외에 다른 뜻이 없다. 즉 무슬림들이 의무사항으로 이행해야 할 싸움은 상대의 멱살이나 잡고 흔들면서 고함이나 질러대는 싸움이 아니라 목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싸움(꾸란 8:12)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최영길 역 한글 꾸란에는 목을 때리고 손가락을 때리라고 미화시켜 번역해 놓았다.

 

우리나라처럼 무슬림 숫자가 적은 나라에서는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부각시키기 위해 소위 교수님 혹은 박사님으로 불리는 이슬람 학자들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이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을 할지라도 용서가 된다는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꾸란의 구절도 원래 뜻과는 다르게 번역해서 그 의미를 미화 시키거나 덜 혐오스럽게 바꾼다. 실력이 없거나 단어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아랍어 사전을 만든 사람이 단어의 뜻을 몰라서 실수로 오역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지하드불신자들과 싸우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이슬람 교리에 의해서 무슬림들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동이 지하드라면, 그리고 그 지하드가 알라를 위해서 불신자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 주변에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무슬림들이 꾸란대로 실천하며 살지는 않는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꾸란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무슬림이 된 것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헌신된 무슬림들이나 학자나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진짜 이슬람 교리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속고 있든지 아니면 알면서도 속이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을 어디서 만나든지 살해하라”(꾸란 9:5)고 명하고 있으며, “세상에 이슬람을 안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우라”(꾸란 8:39),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자들만이 진정한 무슬림이다.”(꾸란 49:15)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꾸란의 가르침에 의해서 그들은 비무슬림들을 적으로 여기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개헌특위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는 것은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이슬람의 교리는 이를 거부한다. OIC(이슬람협력기구)회원국들은 비록 유엔인권선언문에 서명을 했지만 그 선언문의 조항들이 이슬람 율법과 충돌이 될 경우에는 이슬람의 샤리아에 우선권을 둔다는 카이로 선언문을 채택했다(199085).

 

무슬림들은 그들의 교리 때문에 비무슬림들이나 여성들을 차별할 수밖에 없다. 이슬람을 배신한 자를 살려둘 수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우리 국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은 유럽이 망한 길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다문화 정책에서 이슬람은 제외시키는 것이 국익을 위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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