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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다 핀 자유주의 철학의 꿈, 김형효 다시 읽기

박정희 통치에 철학적 뒷받침 작업…새마을운동-유신 지지, "그게 북한 전체주의 압도할 자유민주주의 상응혁명" 주창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3.20 22:30:18

철학자 고(故) 김형효(1940~2018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선생이 지난 달 24일 별세했다. 그가 대중적 명망가는 아니었지만, 우리 시대 주요 철학자의 한 명이다. 현대사에서 기억돼야 할 인물이기도 하다. 대부분이 강단철학자로 머무는 학계 상황에서 그는 서울대 박종홍, 연세대 이규호 교수 등과 함께 개발연대 박정희 통치에 대한 철학적 뒷받침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유주의 철학자로 분류돼야 옳을 그에 대한 자리매김이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그 작업에 한국사회는 완전히 손 놓고 있다. 지식사회 자체가 황폐화된 데다가 이념 편향으로 균형을 잃은 탓이 아니면 뭣 때문일까? 미디어펜은 김형효 철학을 자리매김하는 글을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타계한 철학자 김형효 교수 재조명 칼럼 <상>

  
철학자 김형효 교수가 타계했을 때 신문엔 1단짜리 부음기사가 거의 전부였다. 적막강산에다가 내용도 부실했다. 그가 벨기에 유학 당시 프랑스철학을 전공했으나 귀국 후 원효-퇴계 등 동서를 아우르는 철학을 펼쳤다는 소개에서 그쳤다. 물론 그는 동서양 비교철학자가 맞다.

살아생전 불교대학에서 '불교와 프랑스 철학의 만남'을 강의했고, 노자철학에도 관심 많았다. 구조주의 철학이 상륙하던 무렵인 1989년 출간한 <구조주의의 사유 체계와 사상>이란 저서는 지금도 필독서로 꼽힌다지만, 그게 김형효 철학에서 결정적인 대목은 아니다. 지식사회의 고약한 풍토 탓에 모두가 쉬쉬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외려 포인트다.

그가 스승인 서울대 박종홍 교수, 연세대 이규호 교수 등과 함께 개발연대 박정희 통치에 대한 철학적 뒷받침을 시도한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학자가 해선 안 될 일'로 규정하고, 어용 교수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지금도 수두룩하다. 그게 화근이 돼 재직하던 서강대를 나와(8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옮겨가야 했으니 그의 삶에서 큰 굴곡이었다.

이후 12대 국회의원(민정당)으로 5공에 참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단 국내 철학자 중 그만큼 뛰어난 이도 없으니 과오를 묻는 대신 조용히 외면하겠다는 분위기가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형효 철학을 옹호해줄 대찬 사람도 없다. 우선 물어보자. 우파-우익으로 사회활동하면 변절이고, 좌파-좌익으로 현실참여하면 소신일까? 그 따위 속견(俗見)을 누가 만드는가?

앞에서 밝힌 대로 그는 박종홍-이규호와 함께 박정희 통치에 대한 철학적 뒷받침을 했지만, 변절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김형효 철학의 지향점이었고, 시대와의 대화였다. 유감이 있다면, 그의 자유주의 철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시론(試論)에 그친 점이다. 그래도 소중한 흔적이 아닐 수 없는데, 김형효의 경우 당시 대한민국 차원의 상응혁명을 주창했다.

상응혁명이란 김일성의 주체사상 좌익혁명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공산혁명이 전체주의 광기에 불과한데 비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상응혁명이란 인격(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을 동시에 겨냥해야 한다고 1970년대 말 그는 당당히 밝혔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그건 밀실에서 나온 추상적 관념도 아니었다. 70년대 박정희에 의해 주도된 새마을운동, 그걸 뒷받침하는 10월 유신이야말로 상응혁명의 현장이라고 그는 규정했다. 이런 차원에서 정치교육 혁신을 요구했다. 기존의 1차원적 반공에서 벗어나 김일성주의와 대결해 그걸 압도하는 반공교육 수립이 목표였다.

"국민교육헌장 제정 전 한국국민교육은 애오라지 (피상적인) 시민교육이었다. 한반도의 특수성에 있어서 이 시민교육만 강조되는 경우에 이 나라를 지키고 보위하는 정신이 영글지 못한다. 애국가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와 같은 정신이 울려 펴지지 못한다."(78년 논문 '남북한 통일이념과 목표 비교')

당시 40대 소장 철학자 김형효의 상응혁명론은 신선했다. 그건 70년대 위기상황에서 국가 보위를 위해 너무도 당연한 지식인의 책무였으나 예나 제나 그걸 시비 삼는 속류(俗流) 지식인 그룹이 문제다. 먹물이라면 권력-세상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주자학적 명분론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크고 본격적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조선조 이후 문약(文弱)에 빠진 한국인의 집단정서를 비판하며 무(武) 우위론을 당시에 개진했는데, 지금 봐도 예사롭지 않다. 홍인인간을 들먹이며 평화애호민족이란 타령을 반복하는 것도 "거짓 섞인 민족 예찬"이란 지적(71년 논문)도 함께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김형효 철학의 패기다.

자신의 이런 자유주의 철학의 뿌리엔 대학생 시절 스승이던 박종홍 선생의 영향이 있었다고 그는 2005년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그건 매우 자연스럽다. 박종홍은 누구인가? 68년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주도했고, 박정희의 교육 특보로 활동했던 거물 지식인이다.

물론 유학 시절 전공했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 마르셀은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때문에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광기를 크게 경계했다. 70년대에 발표한 논문에서 김형효는 "내 안에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열광된 의식(광기)에 경고해온 마르셀의 영향이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래서 공산주의 이념을 내내 경계한 것이다.

그 광기의 전형이 김일성 집단이고, 그걸 압도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던 게 결국 대한민국 차원의 상응혁명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상응혁명론이 시론에 그친 채 중단된 것은 그가 재직 중이던 서강대를 쫓겨난 사태와 무관치 않다고 나는 본다.

그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세태에 염증과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모두 10개 장(章)으로 된 책을 쓰다가 서문에서 멈춘 셈이다. 지금 보면 상응혁명론은 시야가 넓지 않으며, 동어반복의 혐의도 없지 않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혁명인데, 그런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김형효 철학은 실패했는가? 그건 아니다.

이 땅에 근대철학이 전개된 1920년 이래 대한민국 건국 전후까지 마르크시즘이 주류였다. 철학자 신남철, 경제학자 백남운 등이 그걸 대표했다. 6.25를 계기로 실존주의가 유입돼 마르크시즘을 잠시 물타기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고대하던 자유주의 철학은 미처 등장치 못한 상황이었다.

  

60~70년대 박정희의 등장, 그걸 뒷바침하는 박종홍-이규호-김형효 철학은 그래서 의미 있다. 또 김형효 자유주의 철학이 완전 실종된 건 아니다. 그가 만년까지 붙잡고 있던 한국인 무의식으로서의 신바람에 대한 관심, 원효(妙合의 중도사상)와 의상(하나 사상) 연구 그리고 퇴계-율곡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다만 세상의 시선을 피해 보다 현학적인 쪽으로 전개했고, 현실 발언을 극력 삼갔을 따름이다. 그 대목은 다음 회에 언급할 것이지만, 어쨌거나 아쉬운 게 사실이다. 자생적 자유주의 철학이 1970~80년대 일찍 꽃 피우고 그게 이 나라의 뼈대를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작업에 멋지게 성공했더라면,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겠는가? 2000년대 초반 상황은 어떠한가? 올바른 사상, 정확한 이념을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지 않던가? 김형효 식으로 말해 상응혁명이 미진한 탓이다. 이런 국면에서 엉뚱한 세력이 집권해 국가정체성을 바꾸려고 하고, 여기에 동조하는 대중은 '분노하는 신'으로 돌변해 광우병-촛불 집회 때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나라 전체가 폭민(暴民)정치의 아수라장으로 어지러운데, 그 이유는 역시 하나다. 견고한 자유주의 철학의 부재가 문제다. 아무리 대한민국 건국이 연합국 승리에 따른 선물로 주어졌다 해도 나라 세운 지 70년인 지금껏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지금이다.

반복하지만 대한민국이 내세운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가 왜 인류 대의에 부합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가 명쾌하게 규명돼 전체주의 이념을 오래 전부터 압도했더라면, 지금의 혼란과 국가위기는 그래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래서 못 다 핀 꽃 한 송이 김형효 철학이 나는 지금도 아쉽다.

지금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지금도 덜떨어진 철학자들은 김형효의 70~80년대 철학을 두고 권력 추수주의라고 비판한다. '반공주의=안보주의=군사주의'라는 등식은 안 되며, 그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시야 좁은 비판(김석수 지음 <현대한국 실천철학>)을 저들은 반복한다.

예전도 그랬지만 지금도 주자학적 관념놀음과 명분론에 빠져 사는 지식인들의 몽유병은 도무지 깨어날 조짐조차 없다. 다음 회에는 김형효 철학이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를 정리할 생각이다. 한국인이 왜 지금 정치적 광기에 휘둘리며 사는지, 그것의 역사문화적 뿌리는 무엇인지, 그걸 벗어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에 대한 처방인데, 독자들의 관심 바란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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