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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하나 되는 평창올림픽을 어찌 볼까

핵 완성해 남한 올라타려는 게 김정은의 암수...평창 성공 이후 기습적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뉴스윈코리아 기자2018.01.22 23:36:01

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 제전이라고 하는 건 맞는 소리이지만, 공허한 캐치프레이즈일 수 있다. 머리 좋은 이들은 역시 다른데, 1984년 LA올림픽조직위원장을 지낸 피터 위버로스가 그 중 하나다. 올림픽 운용에 현대적 경영기법을 도입한 사람으로 이름 있는 그는 "올림픽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 이벤트다"라고 핵심을 찔렀다.

위버로스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영악한 이들이 따로 있는데, 그게 북한 김정은이다. 그 애송이 독재자 한 명 때문에 불과 며칠 새 평창올림픽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남북은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한 뒤 올림픽 전야제를 금강산에서 갖기로 합의했고, 개회식 공동 입장은 기본이란다.

북 선수 10여 명에 응원단 등 500명 요원이 떼 지어 몰려오는 것도 수상쩍은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대북 압박을 흔들고, 시간 벌어 핵무장을 완성하려는 꼼수이겠지만, 남과 북이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지금의 판에서 김정은 뜻대로만 척척 관철되는 꼴이다. 이게 어디까지 갈까?

평창은 한반도 문제 왜곡의 분기점?

문재인 정부가 만지고 있는 개헌안와 함께 6월 지방선거를 D데이로 해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요행히 평창 올림픽이 김정은의 뜻대로 흘러갈 경우 그 디딤돌 위에서 극적으로 성사될 수 있는 카드가 남북정상회담 성사다. 그때도 냉정한 이성 대신 ‘우리민족끼리’의 거대한 환영 물결이 일어날 것이고, 결과는 예측 불허다.

북핵 문제 해결은 입도 벙긋 못한 채 동결 수준에 만족할 경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대로 "굴종적 사이비 평화"가 형성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반문명 북한사회가 극적으로 살아나 한국사회와 합쳐지는 기형적 '괴물 체제'가 만들어진다. 훗날 평창올림픽은 한반도 문제 왜곡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악몽의 하나다.

때문에 지금 새삼 염두에 둘 건 올림픽-정치의 상관관계인데, 둘 사이가 반드시 해피한 결과를 낳는 것만도 아니다. 애써 유치하고 땀 흘려 치루는 올림픽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멍들게 하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는 점도 기억해둬야 할 시점이다. 88년 올림픽만도 그렇다.

정설은 그게 성공한 이벤트이며 나라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지만, 반대급부도 없지 않다. 80년대에 쓰나미처럼 대두됐던 운동권을 한국사회가 정리할 기회를 그때 날리고 말았는데, 물론 올림픽 때문이었다. 서울에 쏠린 세계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탓이다. 경찰봉을 휘두르는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말을 듣는 게 두려워서 움츠러들고 만 것이다.

  

그 상징이 85년 학원안정법 입법 보류다. 당시 시끄러웠던 대학 소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입법이 필요하다 해서 논의됐던 게 그 법안이었다. 운동권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면 전과자만 자꾸 양산하니 그들의 앞날을 열어주기 위해서도 6개월 격리 교육을 시키겠다는 게 당정의 입장이었다.

그때는 신군부와 전두환을 반대하는 대학가 움직임이 예전 시위 양상에서 벗어나 반대한민국, 반미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 추종으로 가파르게 흐르던 시점이었다. 학원안정법 제정은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85년 삼민투 출범 직후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주사파 등장과 자민투-민민투 결성 그리고 박종철 사망(87년 1월)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만일 학원안정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제대로 시행됐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라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운동권도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로 간주한 채 된서리에 대비해 잔뜩 긴장했다. 학교 잔류파나 군 입대파-위장취업파 등으로 분류한 채 상황을 주시하던 차에 뜻밖에도 5공은 입법 보류를 결정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두환은 철권 통치자 아닌 순진남?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보류 지시를 내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학생 훈육 문제에까지 정부가 나서서 맡는다는 게 불합리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학에 맡겨두자는 게 결심의 배경이라고 그는 밝혔다.(<회고록> 2권 129쪽) 그만큼 중요한 건 서울올림픽에 대한 배려다.

<회고록>을 보면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을 위해 정치사회적 안정이 절실했다고 그는 거듭 밝히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미봉책을 선택한 셈이다. 그건 거대한 패착이었다. 다음 인용문을 잘 들여다보시라. 철권 통치자 전두환의 이미지 대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전두환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취임 초부터 나라가 망하는 상황이 아닌 한 절대로 군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철칙을 마음속 깊이 다짐하고 있었다. 학원소요가 사회적 위기를 불러오더라도 경찰력으로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말이 안 된다. 비유컨대 그건 운동권은 대한민국을 죽이는 고단수의 바둑을 두는데, 그걸 막아야 할 통치자는 오목이나 하던 케이스였다. 되짚어보면 주사파가 창궐하던 당시는 현대사 악의 씨앗이 뿌려졌던 시기다.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상황"이 맞다. 그런데도 그는 오판했다. 올림픽 개최 때문에 미뤄뒀던 중차대한 수술 하나가 오늘날의 국가위기를 낳은 셈이다.

당시 전 대통령 머리엔 68년 멕시코올림픽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멕시코 올림픽은 개막 전 각종 정치적 시위로 몸살을 앓았고, 진압과정에서 개막 직전 260명이 죽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이에 비해 20년 뒤 서울올림픽은 전 대통령의 걱정을 씻고도 남을 만큼 깔끔하게 치러졌다.

좋은 일이다. 그래서 세계를 안심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대한민국은 속으로 멍이 들어버렸다. 그런 걸 두루 염두에 둔 채 이번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평창 올림픽이 어떤 기형적인 결과를 낳을지 유심히 지켜볼 검토해볼 일이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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