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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자유민주-시장경제 옹호한 철학 시의 등장

강위석 작품 '나는 우파', 우리문단 풍토에서 극히 이례적

어려운 세월, 마음도 어수선하다. 2017년이 저물었지만, 새해 전망도 밝지 못하다. 이렇게 뒤숭숭할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연속 칼럼 '연말연시, 시로 읽는 대한민국 자화상'을 마련했다. 상 하 두 편으로 된 글인데, 시 장르 특유의 함축미 해석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거론할 시는 30년 전 베스트셀러 <마주 보기>에 수록된 독일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의 바우리히 중사, 저널리스트 출신의 81세 시인 강위석의 '나는 우파'(문예지 <문학 공간> 수록) 두 편이다. 오늘이 두 번째 마지막 회다. [편집자 주]

 

'연말연시, 시로 읽는 대한민국 자화상' -<>

 

 

조숙한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나이 열일곱에 시집을 내고 스무 살에 절필했다. 이후 서른일곱에 요절했지만 지금도 불세출의 시인으로 통한다. 그건 19세기라서 가능했던 신화였지만, 고령화의 시대 지금은 다르다. 몸과 정신이 온전한 21세기의 노 시인은 작품을 써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1937년생 여든한 살인 강위석이 그렇다.

 

그가 <문학공간>(통권 334)에 발표한 시 다섯 편은 문학적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 중 함께 읽어볼 나는 우파는 서정시의 형태로 구현해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관한 옹호다. 이점 이례적인데, 강위석은 누구인가? 그는 한국경제-문화일보-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우리 풍토에서 보기 드물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적 기반을 가진 자기 목소리를 내온 저널리스트인데, 오래 전인 1960<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경력이 있다. 시인 데뷔는 연세대 재학 시절로 보인다. 이후 미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부탄 왕국의 경제 고문(1986~87)으로도 활동한 이색 경력도 있다.

 

그가 발표한 '나는 우파'는 앞 부분엔 자유주의와 우파에 대한 그의 철학이 가족사와 얽힌 채 모습을 드러난다. 장인어른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사망했고, 치매 앓는 아내가 지금도 그 옛일로 하루에도 몇 번 통곡하는 가정의 아픔이 있다. 그런 환경에선 좌익 성향으로 흐르기 십상인데, 그는 달랐다. 경제학 공부를 하고 오랜 세상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외려 그는 요즘 적폐 취급 받는 우파-자유란 낱말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귀한 언어라고 주창한다.


나는 우파

 

우파

작은 낱말,

반짝이는 낱말,

자유로운 낱말,

 

자유,

요새는 더 납작해진 낱말

적폐가 된 낱말

불륜이 된 낱말

 

예를 들면

나는 오른쪽 어깨를 다쳐

왼쪽잡이가 될 뻔했던

돈 없고 힘없는 우파

 

장인이 보도연맹으로

죽임을 당한 집

맏사위가 된 우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자기 아버지의 67년 전 죽음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통곡하는

 

그래도 열심히 우파인

치매를 앓는 내 늙은 사랑의

남편인 우파

 

전반부는 예고편이고, 뒷부분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의 철학이 아주 쉬운 일상어의 형태로 등장한다. 행간을 잘 살며 보면 그에겐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내지 무정부주의 기질도 간취된다. 필자인 내가 아는 강위석이란 분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국가주의자로 오해받기 딱 좋게 올해 초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를 나왔다는 사실까지를 이렇게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공자 가라사대

아는 것만 안다고 하고

찜찜한 것은 모조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모르므로

무식해지고 외톨이가 된 우파

갈 데 없이 정신장애자가 되어

아무래도 한 번은 폭력배가 될 우파

 

자기의 자유를 죽어도 지키고

남의 자유를 끔찍하게 존중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그것뿐인 우파

 

아나키스트면서

웬 태극기를 들고

당분간은 나라를 사랑해야 할

나는 길도 계절도 잃어버린 우파

 

이중 자유주의 철학이 공자의 <논어>와 하이예크 경제학을 포함한 동서양의 지혜 속에 훌륭하게 묘사된 대목으로 꼽을만한 게 "공자 가라사대/아는 것만 안다고 하고/찜찜한 것은 모조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란 대목이다. 그건 설명이 필요한데, 공자 얘기는 제자 자로(子路)와의 대화인데, <논어>의 위정 편에 등장한다.

 

"참된 지식이란 모른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란 요지의 공자의 말은 성격 괄괄하고 주먹 잘 쓰던 자로에게 쉽게 설명해준 맞춤형 답이지만, 실은 그게 현대 인식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엔 입을 닫아야 한다"고 했던 현대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뜻과도 상통한다.

 



결정적으로 그게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이다. 하이예크의 경우 인간 능력은 세상 경제상황에 관한 제한된 정보밖에 가지지 못하며, 그건 중앙정부 역시 마찬가지라고 봤다. 단 전체주의 국가는 정반대다. 중앙 정부가 모든 걸 안다는 전제 아래 틀어쥔 채 통제하고 감시한다. 그래서 명령경제(command economy)이고 계획경제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예크와 미제스 등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장들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정경쟁이 이뤄지도록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주창했다. 정부가 나서서 상품과 서비스를 분배할 경우 개인은 결국 정부 은총에 종속되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하이예크는 그걸 1944<노예의 길>에서 정식화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큰 시장과 작은 정부를 옹호하기 마련이지만, 요즘 세상은 자유-자유주의를 적폐로 몰거나 숫제 죄악 내지 불륜 취급을 하니 세상이 미쳤다. 시인 강위석의 눈에 명령경제의 망령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와 역주행이 기도 차지 않을 것이다.

 

단 현상적으론 자신과 같은 사람이 극소수이며 코너에 몰려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이런 상황을 그는 "그래서 모르는 것은 모르므로/무식해지고 외톨이가 된 우파"라고 자학적으로 표현했다. 그걸 좀 더 강하게 표현한 게 뒤이은 "갈 데 없이 정신장애자가 되어/아무래도 한 번은 폭력배가 될 우파"란 대목이다.

 

이중 "폭력배가 될 우파"란 표현이 좀 걸리는데, 그 말은 최악의 경우 내전 발생을 포함한 불길한 징후를 언급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럴 수도 있는 게 현재의 위험천만한 대한민국 상황이 아니던가? 단 말 자체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나는 우파'는 신선한 작품이란 점이다.

 

일테면 오래 전부터 시-소설의 문학판은 모두 난장이들의 놀이터다. 그만큼 시시하다. 대부분 평론가 백낙청 스타일의 민중시 아류를 끄적이거나, "아프다 아파"를 반복하는 자의식 과잉의 작은 문학을 하는데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이런 더러운 풍토에서 강위석은 유례없던 자유주의 철학시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반갑다.

 

'나는 우파'를 두고 나는 빼어난 작품, 문학사에 남을 시라고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신년 칼럼으로 너끈히 소개할만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하나 더. 자유주의를 더 극단으로 밀어 붙이면 자유지상주의 내지 무정부주의가 되는데, 강위석은 그런 기질이 다분히 있다.

 

필자가 이 시에 끌리는 것은 고백하지만 내게도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형편없는 홍위병의 세상은 나를 두고 극우 논객이네 뭐네 하고 헛소리하지만, 택도 없다. 과속질주와 역주행 끝에 국가정체성이 흔들리는 국가위기의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목소리를 내는 게 웬 극우란 말인가? 태극기를 든 것도 그 맥락이다. 어쨌거나 올해도 성찰과 애국의 칼럼을 쓰는 게 내게 주어진 사회적 소명이다.

 

며칠 전 송년(送年)칼럼에서 나는 "올 한 해는 대한민국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훼손당한 대한민국 끝내 쓰러지고 마느냐, 대반전의 힘을 모아 권토중래를 하는 계기를 만드느냐."라고 말했지만 그 판단 변함없다. 그런 심정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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