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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김준곤 목사님과 함께 한 40일간 금식기도

김 안 신 목사

한국CCC파송 일본선교사

 

노예서약서를 쓰고 탄생한 국제CCC

 

CCC30대에 억만장자가 된 빌 브라이트(Bill Bright)라는 분이 인생의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거듭난 그는 사영리(四靈理)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고1년에 수백 명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것을 목격하고 감동했다. 그는 어느 날 하나님! 저와 제 아내와 두 아들과 전 재산, 그리고 지금 타고 다니는 승용차까지 모두 바치고 오늘부터 주님의 노예가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노예서약서를 작성하였다. 그 후 1951년에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그리스도를 위한 학원 십자군)라는 대학생 선교 단체를 세워 미국 내의 여러 지역에서 전도를 시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표어를 만들었다.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

Win the campus today, win the world tomorrow!

 

빌 브라이트 박사와 김준곤 목사의 숙명적 만남

 

6.25 한국 전쟁 당시에 21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김준곤 목사는 인생의 비극을 글로 써서 인류에게 호소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1957, 럭키산맥에 있는 한 수양관에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목회자들 앞에서 김준곤 목사가 간증을 했다. 그 자리에서 감동을 받은 빌 브라이트는 악수를 청하며 미래의 소망인 대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에 나와 함께하자!”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김준곤 목사는 귀국한 후 195810월에 광주에서 한국CCC 창립 준비 모임을 가졌다. 국제CCC 역사상 최초의 해외지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현재 CCC는 세계 190여 개 나라에서 전임 사역자 25천 명과 협력사역자 28만 명이 전도자로 일하고 있다. 빌 브라이트와 김준곤 목사는 40일 금식을 여러 번 하신 분들이다. 두 리더가 금식하면서 국제전화로 긴 시간 대화식 기도를 하는 장면을 나는 몇 번 목격하였다.

      

나의 헌신의 계기가 된 김준곤 목사의 한 마디

 

한국CCC가 창립된 해인 583월에 나는 전남대학교에 입학했다. 김 목사는 대학 내는 물론 광주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밀알회창립 멤버 7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나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다. 이후로 김 목사의 영성을 닮아가려고 애쓰면서 제자의 삶을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5.16 이후 학보병으로 입대하여 544일 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4급 공무원에 합격하였다. 발령장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셔서 취직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이 말을 들은 김 목사는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 취직? 김 군은 전도해야 돼!”라고 한 마디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판단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 자리를 버린 채 춥고 떨리고 배고픈 과라고 일컬어지던 CCC 간사가 되었다. 631130일 간사 발령장을 받고 15년간 전임 사역자로 학생 전도와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70년 연말에 서울대 수원농과대학 캠퍼스에서 초급대학 졸업 이상의 전국교회 젊은이들 424명을 56일 합숙훈련을 통해 민족복음화 요원으로 무장시켜 한국 교회 부흥의 불씨가 되게 하였는데, 이 합숙훈련을 시작하기 전에도 모든 간사들은 금식기도로 준비하였다. 이 훈련이 71년 여름에는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1만 명 요원훈련으로 확산되었고, 72년에는 8,600명이 춘천성시화 운동에 참여하여 합숙 훈련을 받았다.

 

40일 금식기도를 공적으로 시작

 

당시 월남과 크메르가 공산화(19754, 편집자 주) 되었다. “도미노 이론에 의하면 다음에 무너질 곳은 서울이다라는 소문이 국내는 물론 지구촌 전체에 회자되었었다. 김준곤 목사는 비상구국 금식기도회를 선포하신 후 1976123일부터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27명의 간사들이 참여했으나 마지막까지 마친 간사는 19명이었다. 처음에는 예수원에서 시작했고, 얼마 있다가 오산리 금식기도원으로 장소를 옮겨 하다가 후반부는 당시 정동 15번지에 건축 중이던 CCC센터 5층에 임시 숙소를 마련하여 거기에서 마지막까지 금식하였다.

 

당시 우리 간사들은 40일 간 수백 개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했다. 금식 기도회가 끝난 후 확인해 보니 그 제목들이 모두 응답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문제로부터 섬기는 교회 문제, 담당하고 있는 캠퍼스 전도와 육성 문제 등은 물론,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국가적인 난제 및 국제 정세까지도 신묘한 방법으로 해결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금식 기도는 칼을 쓰지 않고 하는 수술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금식기도를 일상다반사로 하신 김준곤 목사

 

김준곤 목사는 76123일에서 77112일까지 진행된 40일 금식기도 이외에도 여러 번 금식기도를 하셨다. 주스만 마시면서 40일 금식하기도 하시고 11식만 하시면서 기도하신 일도 수없이 많으셨다.

 

요나의 경고를 듣고 니느웨 백성들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금식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 받았고, 다니엘의 금식 기도로 인하여 바사 나라가 망하지 않았고, 에스더가 동족들과 더불어 수산성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을 때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남김없이 구원받았던 역사적 사실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김준곤 목사가 목숨을 걸고 드린 금식기도가 오늘날의 우리 조국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자랑스럽게 간증하고 있다.

 

일본 목사들을 감동시킨 금식기도의 주인공

 

나는 만 50세이던 19911월 일본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당시 김준곤 목사는 동양 3국 즉 일본, 중국, 한국의 복음화 없이 세계선교는 불가능하다. 우선 문이 열려있는 일본부터 시작하자!”고 말씀하신 후 그 해 7월에 ‘New Life Japan 2000’이라는 단기선교 프로젝트를 오사카에서 시작하였다. 400명의 대학생들을 자비량으로 33교회에 보내어 2주간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이 단기선교는 계속되었다. 참가교회들의 연합대회가 열릴 때마다 김 목사를 대회의 강사로 초빙했는데 일본에 오실 때마나 김 목사는 금식 중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일본 목사들은 기절할 만큼 놀라워했다. “어떻게 긴 날들을 금식하시면서 감동적인 말씀을 이토록 힘 있게 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일본 교회지도자들의 이러한 반응을 목도하면서 새삼스럽게 김 목사의 영성의 근원을 살필 수가 있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통해 사탄의 권세를 깨뜨린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지도자들이 장기간 금식기도를 하면서 봉착한 난제들을 해결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 평양에서 시작된 금식기도는 조국을 살리는 대 역사를 이루었다.

 

대학생들도 졸업생들도 금식기도를 생활화 해

 

김준곤 목사가 대학생 전도의 기수로 세움 받으신 후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동역하는 간사들과 더불어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다. 한국CCC 대학생들은 매년 전국적으로 1만 명 이상이 모여 4일간씩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졸업생들의 모임인 나사렛형제들도 해마다 함께 모여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국가와 민족의 문제들을 놓고 금식하며 간구한다.

 

특히 남북의 복음통일, 평화적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간구하고 있다. 만일 우리 조국의 통일이 이뤄지면 한국은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값있고 영광스럽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20099월에 영원한 그 나라로 옮겨가신 김준곤 목사는 지금도 우리 조국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간구하고 계실 것이다.

   

  

오늘의 이 상황은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할 때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 안에서 보는 조국과 나라 밖에서 보는 조국은 너무도 다르다. 한국의 매스컴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건들을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누가 이 위기를 면할 수 있는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심장이 파열하는 심정으로 오 하나님이시여 나의 사랑하는 조국을 이 위기에서 건져내 주시옵소서!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세움 받은 우리 조국이 복음으로 통일되게 하옵소서! 공산화 되는 일은 결단코 없게 하여 주소서!”라고 간구한다.

   

80 세계복음화대성회는 나는 찾았네, 새생명 예수라는 표어를 내걸고 여의도 광장에서 매일 밤 220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마지막 날 밤 헌신예배에서 김준곤 목사는 한국 주도의 선교사 시대를 열자고 도전했고 참석자 중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장단기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때의 헌신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금식하고 철야하면서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종들과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조국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와 헌신이 턱 없이 부족하다면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 나가기가 결단코 쉽지 않을 것이다.

 

JESUS ARMY의 애독자 여러분께서도 장단기 금식기도를 주님께 드림으로써 하늘 보좌를 흔드는 기도의 용장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월간 JESUS ARMY 2018년 1월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한국교회, 왜 기독교 통일 교육이 필요한가?
임 창 호 교수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1. 들어가면서 철학자 칸트는 그의 교육학강의(1801) 첫 페이지에서 “인간은 교육되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기대되는 인간상이 있다면 사람을 교육해야 하며, 기대되는 사회공동체상이 있다면 역시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이상과 목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교육 없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시키거나 발전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동시에 교육은 미래를 향한 보험이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하신 사역은 12명의 제자를 모아 3년간 교육하신 일이다. 그들이 70명의 제자로 확장되었고, 3,000명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초석이 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선교명령이라기보다, 사실 교육명령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 가운데 주동사가 “제자 삼으라”라는 교육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 민족의 회복을 준비하자
강 철 호 목사 북한기독교총연합회장, 새터교회할렐루야! 2018년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이 땅에 평화의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팎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온 남과 북이 진정한 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분단 속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통일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가 평화에 들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평화와 함께 복음통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외쳐온 평화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북민의 한사람으로 대한민국으로 자유를 찾아 온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자유가 나를 평화롭게 함을 신앙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시편 126편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은혜를 받아 안고 얼마나 기뻤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아마도 오늘 이들의 이 고백을 저 같은 탈북민들이 제일 실감을 할 겁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인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복음통일을 위한 탈북민 교회의 역할
김 성 근 목사 노원한나라은혜교회지금까지 남한 교회들의 북한 선교의 주역은 남한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북한 선교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들과 어떻게 손잡고 어떤 일들을 진행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1. 탈북민 선교에서 탈북민 목회자의 위치탈북민 목회자들의 사역 배경 1990년대 말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탈북민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면서 북한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한 많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지대한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반해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신앙을 유지하거나 성장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서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갈 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한 교회는 탈북민들이 같은 민족이기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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