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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민주화투사"란 말에 동의 못하는 까닭

홍준표의 김영삼 평가는 짧은 현대사 인식 탓, 정책 실패의 차원 넘어 한국사회 해체의 장본인

뉴스윈코리아 기자2017.11.20 23:54:01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민주화의 아버지 김영삼 세 분 사진을 중앙당사에 걸겠다"고 했던 약속을 빠른 시일 안에 지켰다. 그 점 고맙다. 17일 부산에서 열린 '김영삼을 이야기하다' 토크 콘서트에서 홍 대표는 그날 부로 중앙당사에 세 분 사진을 걸었다고 밝혔으며, 국회와 전국 시도당에도 추가로 걸겠다고 말했다. 

그날 그는 김영삼(YS)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재확인했다. YS는 공직자 재산등록,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의 개혁을 했는데, 그건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업적이라는 적극적 평가였다. 당장은 외환위기 때문에 폄하되고 있지만, 자신은 그를 늘 존경해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좋다. 자유한국당에 세 분 사진을 내건 것은 보수당의 적통성 확인을 넘어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한 좋은 계기이지만, YS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 포인트는 그가 평가절하됐다는 홍 대표의 발언과 달리 과대포장된 인물이란 점이다. 그걸 주도하는 세력이 좌파란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게 새삼 드러났던 게 2년 전 YS 타계 당시 분위기였다.

왜 좌파가 'YS 끌어안기' 쇼를 하나?

당시 'YS 민주투사' 칭송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은 좌익 언론이었다. 저들은 YS가 남긴 유언이 통합-화합이라는 사실을 애써 들먹이며 박근혜 정부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고 압박했다. 그걸로 보수정부를 때리고, 김영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이중의 효과를 겨냥한 전술이다.

희한하게도 조중동이 좌파의 이런 'YS 끌어안기 쇼' 전략에 말려들어갔다. 조선일보의 경우 사망 직후 1면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독재-기득권의 벽에 부딪쳐 가며 정면승부를 펼쳐온 우파 민주화 진영의 중심축"이라고 칭송했다. 1960~70년대 개발연대가 "독재-기득권의 벽"이라고? 그런 현대사 인식부터 좌파를 따라 하는 골빈 짓이다.

더 가관은 그 날짜 사설인데, 민주화는 1987년 6.29 선언으로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YS 당선으로 사실상 완결됐다는 식이었다. 내 눈엔 최악의 평면적 인식이 아닐 수 없는데, 이 나라 언론은 물론 우익진영 전체가 87년 체제의 빛과 그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87년 체제란 무엇인가? 반복해 말하지만, 87년 체제를 사실상의 좌우합작 체제다. 민주화의 외피를 쓴 사회주의 세력이 사회 중심부에 스며들고, 여기에 부화뇌동한 위선적 시민세력이 좌경화하면서 만들어진 과도체제란 뜻이다. 상식이지만, 이 기간에 공권력 무력화와 함께 체제수호에 대한 확신이 증발했다. 민주화-문민화란 구호 자체가 문제다.

저들은 좌경화된 세력에게 섣부르게 민주화라는 포장을 씌워주기에 바빴는데, 결정적으로 5.18 특별법을 통해 광주를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둔갑시킨 사람도 김영삼이다. 그런 게 한둘이 아니다. 4.19를 혁명으로, 5.16을 군사정변으로 바꿔 부르길 제안하기도 했던 것도 그였다.

또 하나, 그는 시민단체의 협력을 얻어 국정을 수행한 첫 대통령인데, 금융실명제도 경실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참여연대도 그 시절 발족했지만, 내용은 어이없었다. 일테면 김정남을 교문수석으로 임명하여 교과서에 민중사관을 집어넣었다. 한완상을 통일부총리로 임명하여 대북 퍼주기를 개시했던 것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홍준표 현대사 인식의 한계

홍 대표가 찬양했던 금융실명제? 그것도 알고 보면 문제인데, 당시 김영삼은 "앞으로는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그게 치명적인 반기업 정서의 서막이었다. 87년 헌법에 올라간 '평등주의라는 함정'과 맞물려서 막강한 부정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그뿐이랴? 그런 걸 선진화의 길이자, 개혁이라고 당시 우리는 믿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 권위주의 정부에 질렸던 탓이지만, 이후 모두가 너무 나갔다. 그 결과 IMF 몰락까지 겪었다면, 그리고 혹독한 저성장과 빈부양극화를 20년 가까이 반복한다면, 역사의 진실을 알아챌 때가 지금 아닐까?

실은 현대사는 87년 이전과 87년 이후로 갈라진다. 구체적으로 87년 체제란 위대한 정치인 박정희가 세웠던 한국적 혁신체제가 허물어지는 계기다. 일테면 김영삼은 이전까지 해왔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집어치운 채 그걸 신경제란 걸로 바꿔치웠다. 30년 내외 고도성장을 가능케 해온 한국형 국가혁신의 장치를 스스로 허문 바보짓이었다.

경제발전의 콘트롤타워인 경제기획원을 해체하고 재정경제원으로 그때 바꿨다. 이후 5년 간 재경원 장관 7명을 교체하며 난맥상을 연출하다가 결국 IMF 파국을 맞았다. 본질은 김영삼 정부가 정책실패를 했다, 안 했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그의 등장 1993년 이후 한국사회는 해체 국면에 들어갔다는 게 포인트이다.

해체? 맞다. 개발연대에 만들어진 뒤 5공까지 유지돼왔던 국가혁신체제가 그때 확실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런 바보짓을 주도한 대통령을 민주화 투사라고 찬양한다? 그건 결코 아니다. YS는 운동권 세력에 길을 터준 허깨비였고, 그 점에서 위선적 리버럴리스트의 전형이다. 때문에 한국사회를 망가뜨린 거짓 개혁가라고 해야 온당하다.

그의 공과를 잘 새기는 것만이 보수정당이 거듭나는 계기인데,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헤맨다. 대중정치인으로 꽤 매력있는 홍준표는 결정적인 현대사 인식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게 안타깝다. 내 얘긴 YS 사진을 며칠 만에 떼어내란 주문이 아니다. 차제에 제대로 공부를 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산다는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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