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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을 통해 배우는 공산주의의 혁명전술- 동독 국가보위부, 슈타지(Stasi)

뉴스윈코리아 기자2017.05.11 23:33:20

 이 상 원 목사    

 

70년 동안 분단되어 냉전관계를 지속하여 온 남북관계. 북한은 국제 사회가 그렇게 반대해도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 무기를 지속개발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2003년부터는 대한민국의 국가·공공·금융기관 등에 수많은 사이버테러와 흑색선전의 사이버심리전을 전개해왔다.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을 누군가에게 말하려 하면 정치적 논리로 매도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동독의 대서독에 대한 공작활동을 통해서 대한민국에서 북한 대남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동독의 공산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가장 중요한 국가기관이 있다. 동독의 국가보위부인 슈타지이다. 이 기관의 활동을 이해하면 쉽게 북한의 대남공작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독 국가보위부를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의 약어로 MfS, 또는 ‘Staatssicherheitsdienst’

의 약어로 SSD를 사용하며 일반적으로 Stasi(슈타지)로 많이 불린다. 슈타지는 소련의 KGB,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것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위하여 국가보위부와 같은 아주 강력한 국가기관을 만들어 국민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19495월 독일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독일연방공화국(서독)으로 분단되었고 동독에는 소련군이 주둔한다. 슈타지는 19502월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가 주도하여 동독의 국가안보를 수호하고 적대국인 서독과 서독에 주둔한 연합군(미국, 영국, 프랑스)의 적대행위를 정찰하고 사전에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이다.

 

일반적인 첩보기관과는 달리 슈타지에는 자체 구금시설과 수사기관이 있고 또 판사, 검사 등이 있어 비밀정보기관, 비밀경찰기관, 사법조사기관 등의 성격을 모두 갖춘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특히 슈타지는 동독 탈출시도와 일체의 반체제 행위를 조기에 적발하고 방지하는데 집중한다. 슈타지 요원은 1989년 기준으로 공식요원은 91,000명 비공식요원은 173,000명이다.

 

슈타지의 활동은 사실상 상당 부분 서독을 겨냥하고 있다. 슈타지는 서독에도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해 놓고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통일당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판자들을 감시하고’, ‘와해시키고또는 구금할 목적으로 동독으로 납치까지 한다. 그리고 서독 국가기관에서 간첩 활동을 하거나, 노동/학생 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하기도 한다.

 

19536월 동독정부는 동독에서 발생한 노동자 봉기시 소련전차가 무장진압한 사건을 서독 스파이가 사주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선전하였다. 그 이후 슈타지는 대서독 활동을 강화하였다. 슈타지의 수장 볼베버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얻으려면 슈타지의 정보원들이 직접 적의 중심’(서독)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1950년대 중반부터 슈타지의 활동방향은 서독의 국가기관과 사회 각층으로 선회하였으며, 소련의 지시에 따라 탐문과 침투를 강화하였고 서독의 정치, 경제, 군사력에 대한 대립의 강도도 높아졌다.

 

19558월 볼베버는 회의석상에서 책임 요원들은 앞으로 전체 업무시간의 최소 반 이상을 서독의 정보기관에 침투하기 위한 활동을 강화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19582월 슈타지의 새로운 수장인 에리히 밀케는 슈타지 전체회의에서 서독에 대한 당의 활동을 강화하고 지원할 것을 지시했고 지금은 지도자급 간부들을 선발하여 서독으로 파견하여 믿을 만한 공작거점을 마련할 시기이다. 이들은 요직에 진출하는 공작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1971년에는 슈타지에서 서독에 대한 전자정찰을 하는 조직을 2배로 강화시켰다. 서독의 전화통화와 무선통신을 조직적으로 감청하고 그 내용을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모든 관련부서에게 전달한다. 슈타지의 서독활동의 중점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조직화와 정보수집

 

서독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포섭하여 다양한 정보망을 통하여 정부, 국가기관, 정당, 협회, 경제계, 군대, 안보기관 등에 관한 현황정보를 수시로 수집한다. 구체적으로는 학생운동조직, 시민운동단체, TV 등 대중매체와 언론기관, 대기업, 연구소 등의 학술분야 등 서독사회의 전 영역에 공작원과 비공식 정보원을 침투시켜 거미줄 같은 첩보공작 조직망을 형성하여 활동한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활동했던 슈타지 간첩들은 약 2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자유대학교 정치학부 오토슈어 연구소의 학장 야콥젠 교수 간첩사건이다. 저명한 국제관계 정치학자인 야콥젠 교수는 학장재직 중(1992) 동독첩자로 발각되었다. 미국 저명대학 초빙교수도 역임한 바 있는 이 교수가 21년간 동독 슈타지를 위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뜻밖의 사건이었다.

 

좌익 학생운동이 발흥할 무렵인 1968, 학생이었던 야콥젠은 슈타지와 접촉해 첩보임무를 부여받고 수집한 정보를 동독에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가로 장학금과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한 자료를 제공받았다. 그 후 그는 박사학위와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자유대학교 정치학부 교수로 초빙되었고 독일정부에 자문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했다. 그는 독일연방정부의 자문기관인 국제정치 안보연구소(뮌헨)와 학술정치재단의 연구보고서와 자료들을 동독에 빼 돌렸고 82,000마르크의 공작금도 받았던 것이다. 53개의 연구보고서를 포함해 총 440개에 달하는 자료를 넘겨준 공로로 그는 동독 공훈메달과 인민과 조국의 투쟁훈장을 수여받기까지 했다.

 

슈타지는 서독의 여러 비공식 라인에 기반을 둔 안정적인 정보망을 갖고 있다. 당시 책임자였던 호르스트 맨헨의 증언에 따르면 표적감시의 목적으로 서독 내에서 상시 감청했던 전화회선의 숫자만 약 30,000개에서 40,000개에 달한다.

 

비공식 정보원에 의한 정보망의 지속적인 확충과 보호를 위해 슈타지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동독 대사관들은 합법적인 보호거점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보다 많은 정보망 확충을 위해 가족, 친구 또는 직업상의 관계를 집요하게 활용하거나 소위 로미오’(예를 들어 주요인물의 여비서에게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멋진 남성을 접근시키는 방식-편집자)를 잠재적인 여성 정보원에게 접근시키기도 한다.

 

특히 모집거점으로는 서독의 대학들이 활용되었는데 1971년 이후 대학교를 면밀히 조사하여 대학생들을 비공식 정보원들로 무장시켰으며, 미래의 비공식 정보원들이 주요 직업 분야로 침투를 위해 요원 확보에 적합하다. 서독 외교부의 참사관 하겔 블라우와 같은 다수의 고위 정보원들이 이미 대학시절부터 포섭되었다.

 

서독으로부터 광범위한 정보 수집은 막대한 이익을 가져온다. 산업 스파이 활동으로 동독 경제에 수십 억 마르크의 절감효과를 가져온 동시에 80년대 동독의 붕괴시점을 수 년 간 연기시키는 효과가 있고, 군사 첩보활동으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서독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고 확보한 정치 및 사회분야의 정보들은 개인과 기관, 제도 등에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2. 정계 영향력

 

공산당의 방패와 칼의 역할을 하는 슈타지의 서독에서 활동 목적은 모든 정보수단을 동원하여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슈타지는 서독의 정당, 협회, 언론, 운동, 기타 사회기관 등에서 혁명 전술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고 비공식 정보원들을 통해 사회주의통일당의 혁명 전략에 따른 구체적인 작전지침을 하달한다.

 

이때 그 작전지침은 의도적인 명예훼손이나 정치적 반대세력의 동요 유발, 불화와 갈등의 조장 등이다. 1960년대 서독 정치권에 대한 슈타지의 영향력 행사는 사회주의통일당(동독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정치국 선전선동부의 알버트 노르덴 위원과 긴밀한 공조로 진행되었다. 서독 정치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 우선 나치 정권과의 개인적인 연루에 대한 단서를 추적하였다. 이를 위해 슈타지 요원들은 나치 시절의 인물 서류를 문서고에 요청하여 관련자료를 검색하였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작성한 문서를 통해 정도를 조절하여 완성하였다. 그 문서의 내용을 서독 언론에 공개하거나 동 베를린의 국민전선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였다.

 

슈타지가 1953년에 나치관련 문서들을 확보한 이후에 기민당의 거의 모든 지도자급 정치인들은 나치 과거와 관련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에 나치시절 강제수용소 막사를 설계한 죄를 뒤집어 쓴 하인리히 뤼프케 전직 서독연방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은 슈타지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

 

1969년 사민자민당 연합정부의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는 동독이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는 데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다. 기민당을 포함한 대부분의 야당들은 이 정책을 반대하였다. 게다가 사민자민당에서도 반대하는 의원들은 탈당하여 기민당으로 옮겨갔다. 결국에는 연방하원에서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었다. 모두가 불신임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투표결과가 2표가 모자라서 브란트는 재신임이 되었다.

 

통일 후 밝혀진 사실은 슈타지 해외공작총국(HVA)의 고위간부가 기민당 하원의원을 매수하여 브란트 살리기작전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이 사건에 볼 수 있듯이 슈타지는 서독의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이다. 슈타지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브란트 총리는 자기보좌관 귄터 기욤이 슈타지가 1957년에 사민당에 침투시킨 간첩으로 판명됨에 따라 19745월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된다.

 



3. 동독에 비판적인 사람 제거

 

동독에 비판적인 서독의 기관과 사람들에게 침투하여 파괴하는 것은 처음부터 슈타지의 핵심과제이다. 19785월에 슈타지가 작성한 자료에는 총 113개의 서독기관들이 정치적, 이념적 일탈기관 또는 조직’(반동세력=편집자 주)으로 수록되었다. 1985년에는 150개 이상의 그룹과 기관들에 각각 전담팀이 배정되었다. 이들이 벌인 공작은 원칙적으로 모든 분야의 감시와 추적 등이 포함된다. 우편물 검색, 전화 감청, 비공식 정보원들을 통한 탐색, 직업 관찰, 입국 및 환승금지, 의도적인 험담을 통한 파괴, 직업상 타격 또는 특별 조치 등이다.

 

예를 들면 의도적인 험담을 통한 파괴 조치의 피해자로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시민운동가 롤란트 얀을 들 수 있다. 슈타지는 언론, 친구, 정치단체에 그가 동독 관련 비판활동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에 대한 욕심때문이라는 소문을 냈다(작전명 카일’). 그가 사용하는 전화는 24시간 도청 당했고 그의 단골 까페는 슈타지가 그를 제거하려는 작전 수행하는 장소가 되었다.

 

동독 공산당은 서독의 지도자들을 나치스트(혹은 파시스트)로 몰아붙이는 전술을 매우 애용했다. 이러한 선동적인 캠페인을 통해 동독 정권은 서독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정당함을 알리고 서독이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막대한 영향력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또한 이러한 수법을 통해 동독 스스로는 나치로 대변되는 독일의 과거로부터 멀어지고 나치의 독재를 연장선상에 두어 공산주의의 독재를 필연적인 것으로 호도하기에도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서, 반나치주의는 동독 내 질서를 다지는 효과 뿐 아니라 서독에 끼치는 영향력에도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기관도 역시 슈타지이다.

 

이 글은 평화문제연구소가 주최한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2012년 한독 심포지엄중에서 독일 호엔쉔하우젠 슈타지기념관의 후베르투스 크나베 관장의 글, “간첩을 이용한 서독의 동독 슈타지의 서독사회에 대한 공작 실태독 심포지엄 성균관대 박광작 명예교수의 글, “독일총리 빌리 브란트와 서베를린 자유대학 사례를 참고하여 편집하였음.

 

지금부터는 동독 공산주의자들의 대서독 첩보활동과 대한민국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비교해 본다.

 

1. 조직화와 정보수집

 

먼저 우리나라 공산주의 역사를 잠깐 본다. 일제시대에 조선 독립운동을 위해서 공산주의에 가담한 사람들도 있지만 공산주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공산당에서 대부분 탈퇴한다. 1918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러시아에 공산당 한인조직을 결성한다. 국내의 공산당 조직은 1921년 서울청년회로부터 시작, 1922년 무산자동맹회, 1924년에 화요회, 북풍회, 1925년에 조선공산당 등. 1926년에는 무려 338개의 공산주의 조직이 생긴다. 이들 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치안유지법이 제정되어 공산당은 지하로 잠적한다.

 

해방되자마자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지상으로 출현, 1948820일 조선공산당을 재창당하며 830일 건국준비위원회 중앙회와 145개 지부를 결성하였고 96일 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미국은 미군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산주의 국가로 선포한 것을 불법화하였다.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미군정과 민족주의자들과의 치열한 대결을 한다. 신탁통치에 대해 좌익과 우익의 충돌이 발생한다. 19465월 남로당의 위조지폐 사건, 9월 전국총파업 선동, 10월 대구폭동. 1948년 제주4.3폭동, 여수순천 14연대반란사건 등으로 이어진 남로당의 무장폭동으로 인해 194812국가보안법이 제정된다.

 

6.25남침전쟁 이후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친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공산주의 활동이 없다가 4.19후부터 지하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1961년 통일혁명당, 1962년 인민혁명당 등의 지하당이 구축되었다.

 


 

일년 후 5.16 군사혁명은 반공을 국시로 정하며 반공법을 제정하여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친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남한 내의 공산주의 지하활동이 별로 없었으나 북한의 무장공비, 간첩선, 피랍사건 등의 대남도발이 끝없이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1980년대부터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공산주의 조직이 대거 결성되기 시작한다. 1981년 학림, 부림사건, 1984년 민주화추진위원회/깃발, 1986년 제헌의회CA, 1989년 사노맹 등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뿐만 아니라 주사파(김일성주의) 조직이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결성된다. 1986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자민투, 애학투 1987 전대협 1988 고려대 반미학생회, 1989 반제청년동맹, 자민통그룹 등이 그것이다.

 

대학교는 학생, 연구원, 교수, 교직원 등의 선후배, 동료, 사제 간의 인간적 관계를 통해 의식화와 조직화가 쉽고 대학연구소를 통해 고급정보를 쉽게 확보할 수 있어 대학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전략적 거점이 된다.

 

공산주의 활동에 깊이 관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등학생, 대학생 때 의식화되어 공산주의에 깊이 빠지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오래 살아도 그 이념과 사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급투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봄으로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다. 특히 권위에 대해서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19876.29선언으로 대통령 단임직선제, 헌법 개정 등으로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좌경화된 시민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조직화된다. 1986년 역사계, 1987년 교육계, 1988년 법조계, 언론계 1990년 노동계, 농민단체 등이 결성된다.

 

2. 정계 영향력

 

1990년대는 민주화로 인한 치안공백으로 대한민국 내의 공산주의 지하당이 활발히 구축된다. 1991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선노동당 구국전위 구축,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 구축, 1998년 사상전향제도가 폐지되고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생기면서 소위 좌경화된 운동권 세력들은 수감된 좌익, 공안 사범들과 함께 대부분 석방되어 사면복권 된다. 또한 민주인사, 양심수로 불리며 보상금과 함께 정계, 학계, 언론계로 진출한다.

 

2000년부터 운동권이 국회에 입성,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의 대선후보가 2002년에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전국 유세한다. 그 여파로 2004년에는 진보정당이 10석으로 당당히 국회에 진입한다. 운동권 출신들이 19대 국회에는 77, 20대 국회에는 72명이 입성한다. 이들은 국가안보와 치안에 관련된 법들을 개정하여 대북정보망과 공권력을 약화시킨다.

 

3. 북한에 비판적인 사람 제거

 

좌경화된 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은 우파의 애국세력들을 친일프레임으로 매도한다. 그들이 친일로 매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반공주의자이며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소중히 여기는 애국시민과 단체이다. 또한 그들은 반공이념을 가진 공직 후보자에

게도 또 다른 거짓을 유포하여 해명하기도 전에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언론을 통해 선동한다. 특히 기독교 인사로서 반공이념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공격대상이 된다.

 

좌경화된 학회, 협회, 조합, 연합회 등은 회원들이 근무하는 기관과 직장에서 같은 이념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묵시적으로 승진과 인사에 불이익을 주며 그 조직을 장악한다.

 

동독 슈타지에 의해 서독에서 발생된 사건들과 북한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발생된 사건들이 거의 똑같음을 알 수 있다. 동독은 슈타지가 그런 일을 총괄하고 북한은 대남혁명전술에 대해서는 통일전선부가, 북한 내 보안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전담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혁명전술이 같은 것은 공산주의 11당의 원칙과, 모든 공산주의 통치방식과 적화전략전술은 국제공산당조직인 코민테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괴벨스의 이야기에서처럼,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어혼란전술을 펼친다. 공산주의자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선동되어 분노하는 대중이 되어 정권을 타도한다(러시아 2월 혁명). 이틈을 타서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쟁취한다(러시아 10월 혁명). 이들은 민주, 평화, 인권, 평등, 진보등의 단어를 선점하여 다른 의미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 애국시민들은 지난 30년 동안 그들의 언어전술에 속아 온 것에 대하여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산주의자들과 좌경화된 세력들은 시민조직, 학생조직, 노동조직 등을 통하여 국민들과 다음세대들에 대한 의식화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사회전체가 좌경화된 사회가 되었다.(기울어진 운동장 이론)

 

체제변혁운동에서 유래한 운동권이라는 말이 단순한 사회개혁운동이 아닌 국가체제를 바꾸는 사회주의혁명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빠른 것이라고,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지배하고 남한을 좌경화시키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이념과, 하나님이 세우신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헌법적 가치들을 우리들이 바로 알고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세워주는 책임이 우리세대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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